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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의 시시각각] '착각의 자유' 불허한 헌재

중앙일보 2014.12.23 00:02 종합 38면 지면보기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사실 선고(宣告)는 진작 나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 이전에 통합진보당은 심하게 말하면 이미 완전히 맛이 간 상태였다.



 그 방증이 국민 60% 이상이 통진당 해산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다. 헌재 결정과 여론은 유리되지 않았다. 어느 게 먼저냐 선후의 차이였을 뿐이다. 그건 온전히 통진당의 ‘오만’과 ‘편견’이 부른 결과다.



 통진당은 민심 앞에 오만했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이 한국을 조준할 수도 있는 핵실험을 했는데 은근히 ‘자위적 수단’이라 두둔할 순 없었을 거다.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는 여론에 맞서 ‘내정간섭’이란 식으로 접근할 순 없었을 거다. 북한이 광명성 3호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인공위성’이라고 할 순 없었을 거다. 민심 앞에 오만하지 않았다면, 그런 말장난으로 역사를 뒤로 당기려 했겠는가.



 통진당은 북한에 대해 편견을 가져선 안 된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편견을 갖고 있는 건 그들이었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편견이었다.



 통진당을 만들기 위해 민노당 계열과 유시민 계열이 협상할 때의 쟁점 중 하나가 태극기 게양과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느냐, 애국가를 부르느냐 마느냐였다. 세상 어느 나라 정당이 국가를 부르는 걸 놓고 협상하는가.



 그나마 통진당에서 좀 유연하다는 이상규 전 의원은 언젠가 ‘애국가 안 부르는 정당’이 논란이 되자 “서민의 행복과 더 나은 국가 권력을 위해 애국가를 부를 수 있다”고 마치 선심 쓰듯 말했다. 애국가 부르는 게 왜 무슨 대단한 결단이자 선심이어야 하는가. 도대체 대한민국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길래.



 이런 ‘오만’과 ‘편견’을 가지고 제도권 정당으로서 뭘 도모해 보려 했다면 그건 ‘착각’일 뿐이다. 통진당 주축인 주사·NL계열이 제도권에 진입하게 된 계기는 2001년 9월 ‘군자산의 약속’(‘10년 내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연방통일조국 건설’)이었다. 그들의 착각은 ‘군자산’에서부터 기반한, 뿌리가 오래면서도 허망한 것이었다. 그러니 국민 60% 이상이 헌재의 해산 결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거다. 그러나…. 헌재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 게 아니라 헌재가 ‘착각의 자유’를 불허한 데 대한 유산(遺産)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헌재는 그들의 착각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단순 저촉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 위험성을 갖고 있다고 봤다.



 하지만 과연 통진당 해산이 대한민국에 더 이익이냐는 관점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해산 결정에 소수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은 통진당 해산으로 포기할 수도 있는 가치를 ‘헌정질서에 대한 의연한 신뢰’와 ‘사상의 다양성 훼손’으로 나누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가 일고의 가치도 없고, 심지어 유해하기까지 한 그들의 착각 정도에 위협받을 정도로 ‘성숙성’이 떨어진다고 보진 않은 거다.



 오히려 정당해산 결정이 “이젠 비합법적인 수단밖에 남지 않았다”는 신호로 들릴 수 있고, 그것이 극단적인 선택을 부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기우만은 아니다. 독일에서 공산당 해산 결정이 이뤄진 뒤 12만5000여 명에 이르는 공산당 관련자가 수사를 받았고, 그중 6000~7000명이 형사처벌을 받은 실례가 있다.



 만약 종북 논란이 통진당 해산으로 사라진다면 대한민국은 분명 한걸음 나아간 거다. 그러나 과연 ‘굿바이 통진당’을 한다고 반성문 쓰고 곱게 물러날 통진당일까. 그렇다면 새누리당은 더 이상 선거 때 종북이란 말은 입도 뻥끗 안 해도 되겠다.



 그래서 오히려 안타깝다. 종북은 선거로 심판하는 게 이상적이었다.



 물불 안 가리던 통진당은 2012년 총선 땐 10.5%를 득표했다. 그러나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난 뒤인 지난 6월 4일 지방선거에선 4.3% 득표율로 쪼그라들었다. 서울시장 후보는 0.48%를 얻었다. 꺼지기 직전 깜박깜박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던 스마트폰의 배터리 충전율과 비슷한 득표율아닌가.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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