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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우리는 뱁새, 통진당은 뻐꾸기"

중앙일보 2014.12.22 00:02 종합 38면 지면보기
이철호
논설위원실장
347쪽의 헌법재판소 결정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마지막 문단이다. 통합진보당 해산과 의원직 박탈에 대한 의지가 묻어난다. “뻐꾸기 알을 그대로 둔 뱁새는 자기 새끼를 모두 잃고 만다…통진당의 행위는 우리의 존립과 생존의 기반을 파괴하는 소위 대역(大逆) 행위로서 불사(不赦)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와 본질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초 떨떠름했던 헌재 재판관들은 13개월 동안 20여 차례의 ‘평의’를 거듭하면서 한쪽으로 쏠렸다고 한다. 통진당 핵심과 내란회합 참석자들이 대부분 종북 조직사건에 연루됐었다는 점, 그리고 이석기의 강연이 큰 충격을 주었다는 것이다. 헌재 결정문에도 강연 녹취록이 길게 인용돼 있다. “우리가 미국놈들 하고 붙는 대민족사의 결전기에서…우리가 선두에서 저놈들의 모략책동을 분쇄하고 군사적 파열음을 끝내야 하는데, 여기 동지들은 명령만 떨어지면 즉각 전투 태세에 들어갈 준비가 됐습니까?”



 헌재 결정에 양 극단의 반응은 불편하다. 좌파 쪽은 ‘민주주의의 죽음’이라 한다. 이명박 당선 때도, 박근혜 당선 때도 “민주주의는 죽었다”고 했다. 이런 논리라면 한국 민주주의는 백골이 된 지 오래다. 박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란 언급도 너무 나갔다. 주사파는 정치판에서 퇴출됐을 뿐, 이 땅에서 축출된 건 아니다.



 사실 주사파는 급격히 도태되는 중이었다. 머리끄덩이녀와 공중부양, 국회 최루탄 사건으로 괴물이 되어 갔다. 어차피 유권자들의 손에 심판받을 운명이었다. 무엇보다 세 가지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하나는 김정은 세습이다. 김정일로 세습됐을 때는 “ 주체 사상을 체계화했기 때문에 후계자가 되는 게 맞다”고 근사하게 포장했다. 하지만 3대 세습엔 주사파도 인지 부조화에 빠졌다. 봉건시대나 다름없는 ‘백두 혈통’을 빼놓고는 말문이 막혔다.



 그다음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도발은 20대의 심장을 저격했다. 주사파도 새 피를 충원해야 하는데, 대학생들의 반북 정서로 사실상 불임(不妊) 상태였다. 남은 조직원은 이제 40대 후반~50대의 생계형 주사파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뒤늦게 자신의 신념을 부정하기도 어렵고 변절자의 손가락질도 두려워 그냥 광신도로 남아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탈북자와 북한 인권이다. 주사파는 지금까지 “자본주의의 눈으로 북한을 재단하지 말라”고 우겼다. 하지만 탈북자 증언으로 북한의 실상이 드러났고, 잔혹한 탄압은 국제 문제화됐다. 정부의 추산에 따르면 국내 주사파가 3만여 명이지만 이미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도 3만 명에 육박한다. 여기에다 통진당의 말장난도 바닥을 보이고 있다. 이번에도 통진당은 “이석기의 내란음모는 무죄였다”고 했지만, 내란 선동은 유죄였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다.



 개인적으로 헌재가 너무 해산 결정을 서두른 게 아니냐는 아쉬움은 남는다. 서독은 5년간의 심리 끝에 공산당을 해산시켰다. 1953년 총선에서 공산당이 지지율 2.2%, 의석수 ‘0’의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은 뒤에야 관 뚜껑에 못질을 했다. 우리 헌재도 2016년 총선에서 우리 사회의 면역능력을 지켜본 뒤 해산 결정을 내렸어도 늦지 않았다.



 주사파는 시대착오적인 수령론·품성론을 믿고 있다. 어버이날에 이석기의 페이스북에 카네이션을 바치고, 졸업앨범 제작·대학축제·무상급식 재료 공급 등의 앵벌이로 기생하는 정파다. 민혁당→군자산의 약속→통진당의 패권을 추구하면서 온갖 무리수·자충수로 민낯을 노출했다. 이런 일그러진 자해행위로 미운 털이 박힌 지 오래다.



 헌재를 최종 종결자로 믿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길게 보면 통진당 해산은 지난 100여 년간 지속돼온 좌우 공방 역사의 한 과정일 뿐이다. 이제 주사파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다시 지하로 숨어들 것이다. 결국 최종 심판자는 우리 공동체다. 둥지 속의 뻐꾸기 알을 밀어내는 건 어미 뱁새의 몫이다.



이철호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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