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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눈빛 속에 ‘낀 세대’의 애환 그래! 저 모습이야

중앙선데이 2014.12.20 00:10 406호 6면 지면보기
이성민(46)을 드라마 ‘마왕’(2007)에서 처음 보았을 때 ‘미친 존재감’ 비스무레한 느낌을 받았었다. 홈페이지에 이름조차 뜨지 않는 단역, 피의자로 멜빵 바지 같은 차림에 경찰서 조사실로 끌려 들어오는 그는, 아주 강렬했다. 물론 역할에 비해 과도하게 강렬했다고나 할까. 그러니 ‘미친’ 존재감이란 표현이 딱 맞다. 그 강렬함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일단 그가 풍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연극 배우의 느낌을 꼽아야겠다.

20일 종영 드라마 ‘미생’의 이성민

하지만 나는 그 장면에서 배우 이성민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눈이었고, 그 눈 때문에 연기가 더 과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복잡한 느낌을 담고 있는 눈 말이다. 얼굴 클로즈업이 가능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대성하는 배우의 특징 중 하나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아주 복잡한 느낌의 눈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물론 송강호처럼 평범한 눈을 가진 배우도 있긴 하다).

고집스러우면서도 선한 그의 눈은, 악역을 연기할 때에도 관객의 호감을 이끌어내는 가장 중요한 근거다.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 그는, 한글창제에 반대한 합리적·보수적인 원칙주의자로 최만리를 맡았다. 그의 마지막 장면은 시력을 잃으면서까지 한글창제에 몰두하는 세종을 보고 그 열정에 굴복하는 장면이었는데, 최만리가 자칫 단순한 악역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세종의 열정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그 행동에 설득력을 부여한 것도, 바로 그 눈이었다.

그가 드라마 ‘파스타’나 영화 ‘밀양’, ‘관능의 법칙’ 등 코믹 캐릭터로 쏠쏠한 재미를 줄 때에는, 그 복잡한 눈에 장난기를 담으면서 비대한 뱃살을 출렁일 경우다. 하지만 그 복잡한 눈에 깊은 진정성을 담는 집중력이 제대로 빛나려면, 드라마 ‘골든타임’의 최인혁 교수나 ‘미생’의 오 차장처럼 고집스러우면서 선하고 다소 수줍기도 한 캐릭터를 맡아야 한다.

‘미생’에서 제 1주인공 장그래 못지않게 제 2주인공 오 차장이 큰 공감을 얻은 것은, 아마 오 차장이 중간관리자로서 지닌 복잡한 위치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제 1주인공은 이제 막 성장하려는 젊은 인물로 설정되게 마련이지만, 이런 인물에게는 온갖 어려움을 뚫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길만 주어져 있다. 아직 세상을 보는 눈이 단순하여 생각과 행동도 단순하다. 그래서 그는 더 좌충우돌하며 힘들게 극적 성공을 이룰 수 있다.

그에 비해 중간관리자란, 조직이란 게 뭔지 알 만큼 알아 상급자와 하급자를 조정하며 일을 실질적으로 끌어가는 위치에 있다. 그만큼 머릿속은 복잡하고, 위에서 누르고 아래에서 치받는 것을 다 감당해야 하니, 그저 단순하게 착하고 정의로울 수만은 없는 복잡한 위치인 것이다. 드라마 ‘대장금’에서도 주인공인 장금이 못지않게 한 상궁·최 상궁이 빛났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고, 배우 이성민의 이름을 알렸던 드라마 ‘골든타임’에서도 이선균·황정음이 맡은 두 젊은 주인공들보다 중증외상 전문의 최인혁이 빛났던 이유도, 경영자와 환자에게 치이고 인턴·전공의들을 추슬러가면서 복잡한 판단을 내려야 했던 고달픈 중간관리자 캐릭터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미생’에서도 이성민은 또 이 안쓰럽고 힘든 인물을 감당했고, 그의 고집스러우면서 선하고 복잡한 느낌의 눈이 이번에도 또 한 몫을 했다.


글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 ymlee0216@hanmail.net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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