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간결한 디자인 놀라운 소리 밖에서 더 유명

중앙선데이 2014.12.20 00:51 406호 22면 지면보기
‘오덕후’ 집념으로 만든 명품 오디오
좋은 음(音)을 들을 수 있다면 쥐약이라도 먹을 태세로 사는 이들이 있다. 폼 나게 말하면 오디오 파일, 폄훼의 의미를 담으면 오디오 매니어나 오덕후(오디오 오타쿠)로 불린다. 영어와 일어로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우리말로 옮기면 ‘오디오에 미친 사람’이다. 오디오가 얼마나 좋으면 미쳐버릴까. 오디오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해보지 않은 이들은 모른다. 인간이 만든 기계가 내주는 음악의 아름답고 오묘한 세계를….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8> 오디오 AURA NOTE V2


오디오는 색채로 치면 넘쳐서 천박하고 모자라 군색해지는 보라색이다. 제대로 배합된 보라는 다른 색이 따라오지 못하는 기품과 신비를 풍긴다. 이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알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화가의 답답함을 떠올려보라. 다가서면 잡힐 듯하고 가까이 가 보면 저 멀리 물러나 있는 신기루의 환영 같기도 하다. 오디오란 끝내 손에 쥐지 못할 이상의 실체를 좇는 게임이 아닐까. 인간은 빤히 보이는 결말의 게임엔 결코 미치는 법이 없다.

오덕후(요즘 유행어인 덕후가 제일 어울린다)들은 좋은 음의 완성이 목표다. 섬세함이 힘을 갖추고 날카로움이 불쾌의 자극으로 여겨지지 않는 모순의 양립을 시도한다. 무슨 짓이던 충족의 지점에 다다를 때까지 해봐야 끝이다. 지난한 시간과 발품을 팔고 많은 돈까지 퍼부어도 바라던 음은 호락호락 다가오지 않는다.

현실감 넘치는 여자들은 실체가 애매한 오디오에 빠져들지 않는다. 손에 만져지는 명품 백에 더 열광하는 게 당연하다. 좋은 음은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만져지지도 않는다. 세상의 모든 오덕후들은 모호한 실체의 이상에 목을 맨 순진한 남자들이다. 기어코 끝을 보아야 직성 풀리는 이들은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오디오 아니더라도 다른 대상에 빠져 허우적거릴 게 뻔할 테니.

에이프릴 뮤직의 주재자 이광일이 여기에 해당된다. 오랜 경력의 오덕후이자 한 단계 더 나아가 자신의 오디오 회사를 차린 인물이다. 오디오 판에선 흔히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의사나 교수, 사진가들이 세운 유명 오디오 메이커들의 숫자가 이를 잘 말해준다. 오디오는 만드는 사람과 쓰는 사람의 팽팽한 긴장으로 성장한다. 주관적 판정으로 유지되는 오디오 기기는 긍정과 부정의 줄타기를 통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숙명을 지녔다.

이광일은 수재로 불리던 엔지니어였다. 잘나가던 사업체의 경영자이기도 했다. 오디오의 열정은 직접 해외 오디오를 수입하는 수입상으로 발전했다. 뭔가 성에 차지 않았다. 제 손으로 만든 오디오 기기의 희열을 느끼고 싶었다. 경험으로 익힌 안목과 40년 생사고락을 함께 한 전자 엔지니어 친구가 곁에 있다. 기세를 몰아 에이프릴 뮤직을 창업했다. 이후 16년 가까이 꽤 좋은 물건들을 지치지도 않고 만들어냈다. 칭찬에 인색한 오덕후들의 호응이 따랐다. 에이프릴 뮤직의 오디오는 말만 무성한 대한민국에 머무르지 않았다. 나라 밖에서 더 알아주는 명기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보통사람이 살 수 있는 적당한 가격
에이프릴 뮤직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오디오 브랜드가 됐다. 갈 데까지 가 본 오덕후가 이끄는 회사란 점이 중요하다. 자신의 기준이 설득력을 지녔다면 성공이다. 초 고가의 해외 유명 오디오 기기에 맞먹는 좋은 제품들을 만들어냈다. 자부심 넘쳐도 인정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없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독일과 캐나다, 미국, 일본의 오디오 저널들이다. 그들이 무시할 수 없는 에이프릴 뮤직이 한 인간의 열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주목했다.

이광일의 오기와 집념이 이것으로 끝났다면 싱겁다. 진면목은 이제부터다. 그의 연구실엔 여전히 세상의 좋다는 오디오 기기들이 즐비하다. 오덕후로서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히말라야를 오른 산악인과 끝을 본 오디오 파일의 극한 체험은 공통점이 있다. 의외의 담담함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뿐이란 보편타당의 진실이 비로소 수긍된 변화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도 산이었고 극치의 쾌감에 떨었던 음도 결국 소리일 뿐이다. 생각과 행동의 균형은 미친 짓의 정점에 도달해서야 겨우 알게 되는 선물이다.

오덕후가 체험했던 좋은 음의 독점은 죄악이다. 저릿한 감동을 나누어야 도리다. 자신이 만든 오디오가 누구를 향해야 할지 선명해 졌다. 에이프릴 뮤직 창업 당시의 꿈을 떠올렸다. 삭막한 콘크리트 숲에 싸인 학교의 학생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다. 음악의 감동과 아름다움을 아는 이들이 열어갈 세상의 기대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가격에 최고의 음을 내주는 오디오를 만들기로 했다. 평생의 공력은 이럴 때 발휘하는 것이다.

세상의 인정을 끌어낸 AURA NOTE V2가 꿈의 실천이다. 제품 이름인 노트는 상징이다. 살아온 시간과 체험을 담아두는 그릇이란 의미일 것이다. 요즘 뜨고 있는 스마트 폰, 노트의 작명도 우연은 아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 줄 물건은 실제 노트를 포개 놓은 듯하다.

좋은 음을 만드는 기술은 이미 확보해 두었다. 이를 담는 외형의 디자인이 떨어지면 안 된다. 영국의 세계적 산업디자이너 ‘케네스 그랜지’의 힘을 빌렸다. 현대 디자인사에 굵직한 업적을 남긴 노장이다. 금속광채의 스테인리스 강판으로 둘러싸인 AURA NOTE V2는 간결하고 강렬하다. 장식 없이 본질만의 디자인으로 익숙한 ‘디터 람스’의 브라운 제품이 연상된다.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동시대의 거물들이다.

눈이 귀를 믿지 못하는 놀라운 신세계
8년 전 처음 선보인 AURA NOTE는 세월을 더해 V2 버전으로 진화했다. 이 작은 오디오 기기는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커다란 덩치의 앰프들이 내는 출력을 우습게 낸다. 라디오와 CD플레이어가 기본으로 탑재되고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동되어 음악을 들려준다. 일체형의 단점이라 할 음질의 우려는 접어두어도 좋다. 여러 스피커를 실제 연결해 보았다. 눈이 귀를 믿지 못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해외 오디오 저널의 감탄이 거짓 아님을 확인했다.

내 작업실 비원의 오디오를 보면 문득 질릴 때가 있다. 음악을 듣기 위해 이토록 번거로운 장치와 복잡한 연결이 필요한 지의 회의다. 나만 그런 줄 알았다. 온갖 오디오 질을 해 본 이들의 숨겨진 반성도 비슷했다. 모든 것 싸악 치우고 좋은 음을 내주는 단출한 오디오 시스템이 절실했다. 바라던 오디오가 나왔다. 너무 작아 존재감마저 묻혀버릴 듯한 AURA NOTE V2다.

헤드폰으로 듣는 디지털 시대의 가벼운 음악 감상은 아쉽다. 본격적 음악 감상을 위한 시스템이 필요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오덕후까지 가려면 길이 험난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선배 오덕후의 결론만을 취하는 일도 나쁘지 않다. 언제나 성질 급한 사람들이 먼저 사고 치게 마련이다. 후학의 이점은 가만히 앉아 이들의 진실을 빨대 꽂아 빨아먹는 얍삽함이다.


윤광준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