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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 ‘무한질주’는 노력과 타인 배려 전력질주의 선물

중앙선데이 2014.12.20 01:29 406호 34면 지면보기
유재석이 2014년을 빛낸 개그맨 1위(갤럽 조사)로 뽑혔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무한도전’이 시작된 2005년 이후 딱 두 해만 빼놓고 1위다. 10년간 굳건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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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 그에게 반한 때가 있다. 나에게도 결정적인 순간이 몇몇 있다. 먼저 나무 기둥에 뒤통수를 부딪히며 박명수 흉내를 기막히게 해낼 때였다. 10년 동안 무명이었던 그가 개그맨의 왕좌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니었다. 코미디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 세심하게 타인을 관찰하는 눈과 그걸 몸으로 재현해내는 것이다. 그건 인간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늘 ‘자기밖에 모르고 남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구박받는 박명수가 1인자 유재석을 넘어서지 못하는 지점일지도 모른다.

‘도전 달력 모델’에서 유재석은 초반 1, 2월에 그저 착하기만 한 모범생 표정을 계속 유지한다는 이유로 최하위로 내몰린다. 전문가들의 지적을 받자마자 그는 터프 가이 모델에서 내면의 강인함을 드러내고 클림트의 명화를 재현하면서 세심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저 사람 좋은 웃음을 남발하는 이미지 속에 가둬둔 자신에서 벗어나 깊숙이 숨어있는 자신을 드러낸 것이다. 그에게 반한 두 번째 순간이었다.

쑥스럽고 평범한 사람이지만 꼭 필요할 때면 마음을 열어 다른 이들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무한도전 가요제 가수 선정에서 정형돈의 진상 춤과 노래에 자극받은 그는 지난해 과감하게 드러누워 아랫도리를 들썩들썩하는 섹시 댄스로 모든 이의 주목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

1인자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은 과정보다는 결과로 말하는 자세다. 봅슬레이,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 프로레슬링 등 멤버들이 한 번씩은 포기했던 어려운 도전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늘 앞섰다. 그가 유난한 유전자를 가진 천재이기 때문일까? 아니, 그는 겨우 ‘메뚜기’라는 약해빠진 초식남에 카메라 울렁증으로 시작해 암울한 시간을 겪었던, 타고나지 않은 사람이다. “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될 수 있단 걸 믿지 않았”던 자기 불신 시대를 거치며 그는 완벽한 결과물을 내놓아야 여기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고 그러면서도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성공의 열쇠를 실천한 사람이다. 과거를 돌아보는 그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던 이유다.

“그때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딱 한 번만 개그맨으로 기회를 주시면 나중에 성공해서 초심을 잃고 모든 것이 혼자 얻은 것이라고 단 한번이라도 내가 생각한다면 그때는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큰 아픔을 줘도 한마디 원망도 하지 않겠다” (무한도전 팬미팅 편에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뒤에 그는 밤샘 촬영 후 사람들이 30분 동안 쪽잠을 잘 때도 ‘혼자 잠들지 않는 거인’이었으며, 오르막길에서 주저앉으려는 멤버 길을 위해 그에게 손을 내밀며 감동의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줬다. 이쯤 되면 그 매력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위대한 자리에 올랐다 하더라도 그도 유한한 한 사람일 뿐이다. 말레이시아 F1카레이싱 훈련에서 석양 속에서 목숨을 걸고 혼자 끝까지 남아 스핀을 돌고 온 유재석은 “나 저 노을을 보며 울 뻔했어. 노을이 저렇게 아름답게 지고 있는데 나 혼자 여기서 달리고 있는 거야. 정말 울 뻔했어”라며 사람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건 목숨을 걸면서 무언가에 한번 진심으로 몸과 마음을 던져 보았던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과 아련한 슬픔이다. 모든 걸 걸어 쌓아 올린 자신의 업적은 찰나 속에 사라질 수 있지만 자연은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름다울 테니까. 그것이 맞닿아 있는 순간을 그는 경험한 것이다. 유재석처럼 최선을 다해서 치열하게 살아본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다.

인생에서 우리가 성공하기 위해선, 어려운 시절을 견디기 위해선, 또 성공한 뒤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유재석과 나누는 시간이 좀더 길어졌으면 좋겠다.


이윤정 칼럼니스트.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관한 비평 활동을 하고 있으며 중앙SUNDAY와 창간부터 인연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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