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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부양, 국회 최루탄, 머리끄덩이녀 … 숱한 논란 15년

중앙일보 2014.12.20 02:01 종합 6면 지면보기
애국가를 거부하고,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뜨리고, 당 대표는 ‘공중부양’ 발차기를 했다. 당원이 대표의 머리채를 잡아당겨 ‘머리끄덩이녀’라는 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숱한 어두운 장면을 남기고 19일 통합진보당이 강제해산됐다. 전신인 민주노동당을 포함, 15년 만이다.


민노당 창당서 통진당 해산까지
종북 갈등에 합당·분당 반복
부정경선 논란 뒤 내분 휩싸여
"이정희·이석기 업보"시각도

 통진당의 출발은 새천년(2000년)의 시작과 같았다. 당시 민중·민주(PD) 계열이 주도하는 민노당에 진보·좌파 세력이 결집했다. 민족해방(NL) 계열과 민노총도 참여했다. 목표는 제도권 진입이었다. 하지만 그해 총선에서 한 석도 얻지 못했다. 그래도 가능성을 보인 게 2002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의 선전이다. 진보진영의 표가 노무현 후보에게 몰렸지만 권 후보는 3.98%(3위)를 얻었다. 당시 권 후보가 던진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말은 유행어가 됐다.



 그리고 2년 뒤 민노당은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이때 진보진영의 스타급 정치인이라 할 권영길·심상정·노회찬·강기갑 의원 등이 국회에 입성했다.





 세를 불려가던 민노당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게 종북 논란이었다. 2006년 ‘일심회’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민노당의 중앙위원과 재야 인사 2명이 북한과 접촉해 당직자 수백 명의 신상을 유출한 사건이 일심회 사건이다. 검찰은 민노당 당직자 일부가 북한에 ‘충성서약’을 하고 북한 노동당에 가입했다고 발표했다. 민노당은 “야당탄압”이라고 맞섰지만, 대선 직전인 2007년 12월 대법원은 유죄를 확정했다.



이에 PD 계열인 심상정 대표는 ‘종북노선 청산’을 주장하며 일심회 관련자 제명안이 포함된 당 혁신안을 냈다. 그러나 대의원을 장악한 NL 세력은 “국가보안법에 대한 굴복”이라며 혁신안을 반대했고, 심상정·노회찬·조승수 의원 등이 민노당을 탈당해 ‘진보신당’을 차렸다. 민노당엔 NL계만 남았다. 2008년 총선에선 의석이 절반인 5석으로 쪼그라들었다. 이정희 대표는 이때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출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2011년 말 이정희 대표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만났다. 둘은 진보대통합에 합의했다. ‘민노당+유시민당(국민참여당)’에 ‘진보신당’이 다시 가세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지금의 통합진보당이다.



 합당 과정에서 진보신당 측이 “북한의 3대 세습 반대 입장을 정책으로 채택하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민노당 측이 “분단의 이분법”이라며 반대해 채택되지 않았다. 이 무렵 민노당 소속 김선동 전 의원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에 반대하며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일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2012년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13석을 얻었다. 제1야당 민주당과의 야권연대에 힘입은 결과였다.



 그러나 총석 직후 잡음이 불거져나왔다.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논란이었다. 사실상 민노당을 장악한 당권파가 ‘경기동부연합’이며, 이들이 이석기 전 의원을 비례대표로 당선시키기 위해 부정선거를 했다는 폭로가 잇따랐다. ‘뭉텅이 투표용지’ 같은 수많은 증거가 제시됐다. 하지만 이 전 의원을 비롯해 당권파는 궤변으로 부정적 여론을 키웠다.



 김선동 전 의원은 ‘뭉텅이 투표용지’ 의혹에 대해 “풀이 살아나 다시 붙어서 그렇다”고 주장했다. 이 전 의원은 “100% 완벽한 선거가 어디 있나. 70%나 50%는 돼야 부정”이라고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스스로 종북논란에 불을 질렀다. 이 전 의원은 과거 북한 지하당 조직 민혁당의 핵심 간부였다는 혐의로 복역했다. 그런 이 전 의원이 “종북 운운하는데 종미(從美)가 훨씬 심각하다”고 주장하면서 부정경선 논란은 종북논란으로 확산됐다. 이 과정에서 유시민 전 장관에 의해 통진당은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정당’이란 사실이 공개됐다.



 공방을 벌이던 당권파와 비당권파는 폭행사태까지 일으켰다. 일명 ‘머리끄덩이녀’로 불리게 된 20대 여성당원이 조준호 당시 공동대표의 머리채를 잡으면서다.



 통진당은 결국 다시 분열했다. 심상정·노회찬 그룹과 유시민·천호선 그룹은 탈당해 진보정의당(정의당)을 창당했다. 통진당엔 다시 NL계만 남았다. 그해 대선에 이정희 대표를 출마시켜 반전을 노렸지만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는 그의 발언은 거부감만 키웠다.



 결국 2013년 8월 30일 이 전 의원과 ‘RO(지하혁명조직)회합’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해체 수순을 밟았다. 야권 관계자는 “이정희와 이석기의 업보” 라고 말했다.



강태화·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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