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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대신 '스페셜티' … 커피 시장도 제3의 물결

중앙일보 2014.12.20 01:11 종합 22면 지면보기
지난 17일 서울 서소문로에서 뮤지컬 배우 출신 이동재 #52 로스터스 랩 대표가 커피잔을 쌓은 막대를 이용해 춤을 추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 뮤지컬 ‘맘마미아’에 출연했던 배우 이동재(32)씨는 지난 3월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 7평 남짓한 카페를 냈다. 넥타이 부대가 많아 분위기가 딱딱했던 서소문로에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청국장’ 같은 커피를 만들고 싶었다. 이씨는 커피콩을 가게 안에서 직접 볶았다. 골목에 커피 향을 퍼뜨리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벽을 없애고 클럽 음악을 쩌렁쩌렁하게 틀어댔다. 인근 회사 고위 간부에게도 주저 없이 “형, 오랜만이야”라며 손을 흔든다. 이씨는 “뮤지컬에서도 촌스러운 시골마을을 춤추고 노래하는 곳으로 바꿔 놓는 배역을 맡은 적이 있다”며 “뮤지컬에서처럼 커피 하나로도 동네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밥보다 자주 먹는 커피, 변화 바람
체인점, 압축 공기로 빨리 내려 쓴맛
스페셜티는 천천히 우려 신맛·단맛
어느 농장 원두 썼는지 '스토리' 팔아
획일적 군대 짬밥과 가정식의 차이



 #2. 서필훈(37) 커피 리브레 대표는 조만간 중앙아메리카로 떠날 채비에 눈코 뜰 새가 없다. 고려대에서 서양사학을 전공한 뒤 석사과정을 밟던 그는 10년 전 학교 후문 앞 카페에서 커피를 배우기 시작했다. 취미는 직업으로 이어졌다. 세계의 커피 농장을 다니며 그가 직접 가져온 생두(커피 날 콩)에 주문이 쏟아진다. 1년 중 3분의 1은 해외로 나가 중남미·인도·아프리카의 농장들과 커피를 직거래하는 유통 경로를 뚫었다. 서씨는 “커피는 요리라고 생각한다. 요리에서 재료가 중요하듯 신선한 커피를 얻기 위해 재배되는 농장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 체인점 위주로 흘러왔던 커피 시장이 변화를 맞고 있다.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대형 커피 체인점에서 천편일률적인 커피만 주문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 색을 강조한 ‘골목 커피’나 원산지와의 직거래를 통해 보다 ‘신선한 커피’를 찾는 이가 늘고 있다.



 변화는 지난 10여 년간 스타벅스를 경험한 3040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미국 커피 회사 스타벅스는 1999년 이화여대 정문 앞에 국내 첫 매장을 냈다. 여학생 사이에서 초록색 스타벅스 로고가 박힌 종이컵을 한 손에 들고 다니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타벅스 매장을 가진 도시로 성장했다. 스타벅스의 고향인 미국 시애틀보다 두 배가량 많다. 국내 스타벅스 매장은 지난 5월 기준 649개. 인구 100만 명당 매장 수가 12.55개로 캐나다(39.54개)와 미국(36.25개)에 이어 세계 3위다.



 커피는 한국인의 주식까지 바꿔 놨다. ‘밥과 김치’를 밀어냈다. 정부의 지난해 조사 결과 일주일당 음식 섭취 빈도로 커피(12.3회)가 가장 높았고 쌀밥(7회)과 배추김치(11.8회)가 뒤를 이었다.



 밥보다 커피를 많이 먹는 3040세대는 패스트푸드 같은 원두커피 시장을 바꿔 보려 한다. 서울 양재동 뒷골목에서 ‘커피볶는 미스터김 영다방’을 운영하는 김일영(38)씨. 그는 시골 할머니가 타주는 봉지 커피 맛을 느낄 수 있는 원두커피 상품을 개발했다. 구수한 원두에 생크림과 시럽을 넣어 설탕과 프림이 섞인 ‘옛날 커피’ 맛을 재현해 낸 것이다. 점심시간에는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인기다. 김씨는 “그동안은 대형 체인점이 만든 커피 맛을 기준으로 삼고, 그에 맞추려는 분위기가 업계에도 있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대중이 먼저 차별화한 상품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점과 차별화하려는 시도는 미국에서 10여 년 전 먼저 시작됐다. 그런 커피들은 ‘스페셜티 커피’라고 불렸다. 김태정 우리커피연구회 연구이사는 “대형 커피 체인점의 커피는 군대의 짬밥처럼 맛이 획일적”이라며 “제작 과정이 느리고 다소 비싸지만 돈을 지불할 가치를 느끼게 하는 커피가 바로 스페셜티 커피”라고 설명했다.



미국 3대 스페셜티 커피 회사 메트로폴리스의 제프 드레이퍼스(69) 대표가 스페셜티로 커피를 내리고 있다. 스페셜티 커피는 생두의 품질, 커피의 향과 질감 등이 점수로 평가된다. [사진 어라운지]


 미국 3대 스페셜티 커피 회사 메트로폴리스의 제프 드레이퍼스(69) 대표는 지난달 한국을 방문해 “커피시장에 제3의 물결이 몰려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값싼 인스턴트 제품이 주도한 제1의 물결, 스타벅스와 같은 거대 회사가 불러온 제2의 물결이 지나가고, 스페셜티 커피를 중심으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기존 원두커피는 에스프레소 기계를 이용해 짧은 시간 안에 압축된 공기로 커피액을 뽑아내는 방식이었다. 저렴한 원두 맛을 감추기 위해 강한 불에 볶아 쓴맛을 강조했다. 하지만 스페셜티 커피는 원두를 천천히 우려내면서 신맛과 단맛이 어우러지도록 만드는 게 특징이다. 드레이퍼스 대표는 “이 원두가 어느 농장에서 나왔고 어떤 농부가 재배했는지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결국 사람을 존중하고 커피에 ‘스토리’를 입히는 게 새로운 커피시장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스페셜티 커피의 등장은 대형 커피 전문점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올해 3월 국내 스타벅스 일부 매장은 하와이나 페루와 같은 고급 커피의 원산지에서 생산되는 원두를 사용한 제품을 선보였다. 가장 비싼 커피는 한 잔당 1만2000원에 이른다. 전용 좌석에 앉으면 바리스타가 원두를 갈고 맞춤 기계로 커피를 내려준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바리스타는 원두의 생산지와 지역 특성을 고객에게 설명해준다. 커피에 ‘스토리’까지 얹어 파는 것이다. 탐앤탐스·앤젤리너스 등 국내 커피 업체들도 속속 스페셜티 커피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미국에선 스페셜티 커피만 파는 전용 매장이 이달 초 문을 열 만큼 호응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차별화를 빌미로 가격을 올리는 상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한 30대 카페 창업자는 “‘미국스페셜티협회’ ‘유럽스페셜티협회’처럼 각 나라에 스페셜티 커피의 질을 인증하는 단체가 있다. 그 단체가 발급하는 자격증을 받으려면 300만~400만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맛의 기준이 불분명하고 자격증을 주는 기준도 허술하다”고 말했다. 맛을 강조한 스페셜티 커피가 국내 카페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장사 잘 되는 카페』의 저자 전기홍(38)씨는 “카페의 성공 요건 중 커피 맛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사람에게 다른 음료도 내놔야 한다. 비싸기까지 한 스페셜티 커피만 강조해서는 국내에서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했다.



 국내 커피 업계의 차별화 바람은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청백전(청년 백수 전성시대)’을 맛본 3040세대가 거대한 골리앗 기업에 맞서 싸우는 ‘다윗’의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정부가 지난 3월 발표한 ‘12개 주요 도시 음식점 5년 이상 생존율’ 자료에서 카페는 26%로 업종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 카페 운영자에 따르면 요즘 도심 외곽 지대에 10명 미만이 앉을 수 있는 작은 카페를 만들기 위해선 임대료, 커피머신 구입비, 인테리어 비용 등으로 최소 7000만원에 가까운 돈이 필요하다. 커피 한 잔 3000원으로 계산해 하루 100잔을 팔면 20일 기준 한 달 매출이 600만원 남짓이다. 여기에 원두·종이컵 구입비 등 제조원가 180만원, 직원 월급 130만원, 월세 100만원, 관리비 30만원, 세금 등을 제외하면 손에 들어올 수 있는 돈은 200만원이 채 안 된다. 30대 카페 주인들은 “두 손도 모자라 두 발로 기구를 만질 정도로 바쁘게 움직여 봐야 직장 다니는 것만 못하다”고 말한다.



은행원 출신으로 전국 9개 카페 지점을 운영하는 김용덕(54) 테라로사 대표는 “나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으며, 포기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작은 규모의 커피전문점은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다루기보다 그 가게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품목에 집중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스페셜티(specialty) 커피=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SCAA)에서 만든 평가 기준에서 80점 이상 점수를 얻은 커피. 생두의 품질, 커피의 향과 질감 등이 점수로 평가된다.



글=김민상 기자 stephan@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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