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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상처의 말'로부터의 회복

중앙일보 2014.12.19 00:03 종합 32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강일구 ilgoo@joongang.co.kr]


혜민 스님
누군가로부터 나를 공격하는 말을 듣게 되면 참으로 아프다. 그 상처의 말이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직장동료로부터 나왔건, 아니면 잘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나왔건 비수가 되어 내 마음을 찌르기는 매한 가지다. 미움이 담긴 공격적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은 마음의 평정을 한순간에 깨트리고 자칫하면 분노와 슬픔, 자책의 늪으로까지 빠져들게 만든다. 그냥 그 사람을 피하고 안 보면 좋겠지만 가족이나 직장동료인 경우에는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설사 그 사람을 보지 않는다고 해도 한번 들은 상처의 말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공격적인 말로 인해 상처를 받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지혜롭게 처신하고 다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



 먼저 집안에서 혼자 가만히 있지만 말고 몸을 좀 움직이자. 마음이 충격을 받으면 몸도 같이 충격을 받아 함께 엉망이 된다. 힘든 마음을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다면 가벼운 운동과 따뜻한 목욕으로 어깨에 뭉친 근육, 긴장한 장기부터 풀어주고 잠도 한 시간 일찍 자자. 몸과 마음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둘 중에 하나가 좋아지면 나머지 하나도 좋아질 수 있다. 어느 정도 내 몸을 먼저 아껴준 다음 이번엔 내 이야기를 따뜻하게 들어줄 수 있는 인생 선배를 만나 다 털어놓고 이야기를 해 보자. 기쁨은 나누면 두 배로 커지고 아픔은 나누면 절반으로 줄어든다. 말로써 조곤조곤 풀다보면 선배의 따뜻한 시선에서 위로받고 지금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머릿속에서 정리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급한 대로 마음에 난 상처의 응급처치를 마쳤다면 이번엔 이 한 가지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상대가 나에게 화를 내고 비수를 꽂는 말을 하는 것은 상대의 자유지만, 그것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내 자유라는 점이다. 반응에 대한 나의 선택이 있다는 점을 잊고 무의식적으로 화를 화로써, 미움을 미움으로써 대응하기 때문에 문제가 커지고 서로의 상처가 오래간다. 우리가 힘든 이유는 상대의 탓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이유는 내 안에서 키우고 있는 상대를 향한 미움 때문이기도 하다. 그 미움에서 비롯된 자기 방어용 이유들이 마음속에서 쳇바퀴 돌듯 계속 맴돌기 때문에 내 자신이 기억의 포로가 되어 상처로부터 탈출하지 못한다.



 이와 관련되어서 어느 티베트 스님의 말이 생각이 난다. 수행이 깊으신 한 스님이 계셨는데 어쩌다 티베트 독립운동에 연루되어 20여 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셨다. 여러 차례 고문까지 당하셨던 스님은 가까스로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하게 되었다. 망명 후 티베트 불교의 가장 큰 어른이신 달라이 라마 존자님을 친견하게 되었는데 달라이 라마 존자께서 감옥에서 고생이 심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 스님은 이렇게 답하셨다고 한다. “감옥에서 생활하면서 정말로 두려웠던 것은 고문당하는 것이 아니라, 고문하는 사람을 제가 미워하게 될까봐, 그것이 두려웠습니다.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되면 그 미움이 제 자신을 서서히 파괴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내 자신을 파괴하게 만드는 미움, 그 미움을 키우는 대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것은 바로 상대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왜 상대가 저렇게밖에 이야기하지 못하는지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의 예를 들면 몇 달 전쯤 트위터에서 나를 심하게 비꼬며 욕하는 분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좀 충격을 받았는데 그분이 쓴 다른 글들을 보니 그분은 나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정치인, 종교인, 연예인, 문학인들에게 다 비꼬는 욕을 하고 있었다. 결국 그가 나에게 던진 상처의 말은 자신의 상처가 세상에 대고 하는 말이었지, 꼭 나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처럼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면 내 마음속 미움의 불길이 많이 줄어든다.



 하지만 살다 보면 정말로 내가 잘못해서 공격을 받는 경우도 있다. 깊이 생각해보고 내가 잘못한 점을 깨달았을 때는 바로 그 사람을 만나서 사과를 하자. 만나서는 내 변명을 하려고 하지 말고 상대가 그동안 나로 인해 아팠던 심경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 주자. 쌓아놓았던 그 이야기를 다 쏟아놓고 나면 상대도 내 사과를 받아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진심을 담아 사과를 하는데도 상대가 나를 피하면서 만나주지 않는다면 마음을 모아 이렇게 기도를 해보자. ‘그가 행복해지기를. 그가 아픔으로부터 치유받기를. 그의 마음이 평온해지기를.’ 이 기도문은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내는 미움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안정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글=혜민 스님

일러스트=강일구 ilg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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