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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15세 여중생 임신시킨 40대 남성이 사랑이라고?

중앙일보 2014.12.19 00:03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현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
  최근 보도된 여중생 성폭력 사건으로 사회가 시끄럽다. 15세 여중생을 상습 성폭행하고 임신까지 시킨 40대 연예기획사 대표에게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사건을 고법에 돌려보냈다는 기사 때문이다. 성폭력이 아니라 여중생과 성인 남성이 ‘사랑’을 했다는 취지다. 15세는 성보호 대상이다. 그런데 성폭행을 하고 임신·출산까지 하게 만든 가해자에게 무죄 판결한 법원의 성인식에 대해 정말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보호할 마음이 있는 건지 의구심마저 생긴다.

 이 사건을 두고 많은 사람이 갑론을박하고 있다. 피해 여중생이 문제라는 내용의 댓글도 보인다. 하지만 성폭력의 핵심보다는 드러난 여중생의 행동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왜 대법원이 강간이 아닌 ‘사랑’이라고 판단을 했을까, 15세 중학생의 심리적 특성을 충분히 이해한 상황에서 사건을 심리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러한 의문들을 하나씩 짚어보자.

첫째, 이 중년 남성의 행위는 사랑이 아니라 성폭행이다. 연예기획사 대표라는 지위를 이용해 연예인을 시켜 주겠다고 접근한 뒤 다음날 강제 키스를 했다. 만난 지 며칠 만에 환자복을 입은 여학생을 유인해 차 안에서 반항하는 피해자를 억압한 후 강제로 성관계를 한 것이 어떻게 성폭력이 아니라는 말인가. 더욱이 피해자는 교통사고로 인해 무릎 부위에 통증이 있어 제대로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것은 명백한 ‘강간’이다.

 절대로 이해할 수 없지만 대법원의 판결 내용처럼 첫눈에 반해 사랑했다고 치자. 그럼에도 처음 만난 아버지뻘 되는 남자를 이성적으로 좋아해 며칠 만에 성관계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게 과연 상식적인지 묻고 싶다. 우리 사회는 이번 사건처럼 첫 성폭행 후 지속적인 성관계가 있는 경우에는 성폭력이 아니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성폭력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해자는 성폭력을 하기 전에는 피해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다양한 행동을 시도한다. 하지만 성폭력 후에는 폭력, 협박 등을 통해 만남을 지속시킨다. 가해자가 간음을 목적으로 접근하고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 시도하는 다양한 행동을 그루밍(grooming·길들이기)이라고 한다. 이러한 길들이기 과정이 지속되면 피해자는 거부도,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도 어렵게 된다. 이것을 가해자들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둘째, 피해 여학생의 심리와 상황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피해 여중생의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임신과 임신 사실이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죄책감, 불안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댈 수 있는 사람은 가해자뿐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가해자는 학교, 가족상황 등 피해 학생의 개인정보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욕설과 폭언을 수시로 하는 가해자를 보면서 피해 학생은 가해자가 원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길들이기의 결과이며 성폭력 후유증이다. 1, 2심에서는 이러한 피해 여중생의 특성을 고려해 가해자에게 중형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왜 대법원에서는 이 중요한 심리적 특성을 보지 않은 것일까. 가출을 하고, 동거를 하고, 교도소를 찾아가고, 수많은 문자를 보낸 여중생의 행위에만 초점을 두지 말고 여중생이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된 원인과 심리적 특성, 판단능력, 맥락을 좀 더 면밀하게 파악해 판결했어야 한다.

 1, 2심 재판부 모두 피해자 진술의 신뢰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피해 여중생의 상황과 진술의 신뢰성이 높음에도 어린 여중생 피해자의 드러난 행동에만 초점을 두고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가해자가 어떻게 피해 학생에게 접근하고 길들이기를 했는지, 피해 여중생과 사랑하는 관계라고 하는데 여중생을 그동안 어떻게 대했는지, 어떤 상황에서 성관계가 이루어졌는지 등 가해 행위를 면밀히 분석하고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여중생이 임신해 가출을 한 상태에서도 또 다른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유인하려고 한 가해자의 행위를 사랑이라고 볼 수 있는가.

 피해 여학생이 ‘여성’인 것이 너무 싫다고 머리를 짧게 잘라 버렸다는 기사는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법원은 성폭력 무죄 판결 이후 피해 학생의 삶에 미칠 영향까지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15세에 성폭행 피해를 보고 임신과 출산까지 했지만 가해자가 처벌되지 않는다면 이 여성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또 현재 시설에 맡겨진 아이는 어떻게 될까. 피해 여중생에게 우리 사회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사회는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 특히 대법원 판결이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 보라. 대다수의 국민은 대법원을 정의와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믿고 있다. 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에선 피해 학생의 상황과 미래까지 고려한 공정한 판결이 다시 내려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현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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