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용직의 바둑 산책] 김지석 "우주 다룬 다큐 보면서 승부 부담감 극복했다"

중앙일보 2014.12.18 00:18 종합 27면 지면보기
승부는 긴장되고 힘든 일이다. 김지석 9단은 자연 속 생명의 경외를 느끼면서 승부의 부담감을 극복했다. 사진은 지난해 GS칼텍스배 결승 종국 장면. [중앙포토]


프로기사 김지석(25) 9단의 기세가 놀랍다. 올해 세계대회에서만 16승 1패다. 그중 두 판은 지난 10일 끝난 삼성화재배 결승전에서 얻은 승점이다. 김 9단의 세계대회 첫 우승이었다. 그는 어디까지 뻗어나갈 것인가. 25일 춘란배 세계대회 8강전에 출전하는 그는, 2015년 2월 LG배 결승전에서 박정환(21) 9단과 승부를 겨룬다. 14일 서울 홍익대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마음 관조해라" 아버지 조언 도움
매일 8시간 공부 '사활' 많이 봐
유도 이어 배드민턴으로 체력 단련



  - 우승을 축하한다. 특히 2국의 마지막 싸움이 대단했다. 수를 다 읽었나.



 “고맙다. 수를 끝까지 다 읽은 건 아니었다. 그리 두어야 한다고 결단했다. 때로는 감(感)을 따라야 한다.”



  - 승부는 고생길이다. 언제 가장 힘들었나.



 “초등학교 1~3학년 부모를 떠나 서울에 와 있을 때다. 입단 후 2009년 첫 번째 타이틀인 물가정보배를 거머쥔 직후 천원전 결승에서 박정환(21·9단)에게 3대0으로 지는 등 몇 번 연속 패배했을 때도 힘겨웠다. 주변에서 바보라고 하는 듯했다. 후배에게 무릎을 꿇어 자괴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정환이와 함께 복기도 하고, 스스로 돌아보면서 이겨냈다. 지금 돌아보면 정환이에게 참 많이 배웠다.”



 - 어릴 때부터 황태자로 불리는 등 천재 소리를 들었다. 예부터 소년등과(少年登科·소년 때 과거 합격하는 일)는 고약한 일이라고 할 정도로 부담이 큰 일이다. 어떻게 이겨냈나.



 “물론 어려웠다. 자연 다큐멘터리나 생명의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우주를 바라보면서 힘을 얻었다. 칼 세이건 원작의 ‘코스모스’도 봤다. 우주의 너비를 보면서 인간의 한계를 생각했다. 승부를 바라보는 데 큰 힘을 얻었다. 조급함을 벗어나는 계기였다.”



  - 10년 전부터 세계대회에 나가도 기껏해야 8강이고 4강도 겨우 두 번 올랐다. 징크스인가.



 “예전엔 세계대회 8강이나 4강에 올라가면 뭔가 완벽한 바둑을 두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어깨가 무거웠다. 아버지(김호성·55·전남대 공대 교수)가 대국 전에 마음을 관조해보라고 하셨다. 불안하면 불안을, 조급하면 조급함을, 집중이 안 되면 안 되는 것을, 다만 관조만 하라고 하셨다. 도움이 컸다.”



  - 바둑이란 게 하룻밤에 문득 느는 건가.



 “실력은 천천히, 점진적으로 는다. 하지만 승부를 바라보는 안목 같은 것은 문득 뛰어넘을 수 있다. ”



  - 한계를 알면 마음이 편해진다. 대신에 대충 둘 수도 있는데.



 “그건 아니다. 3시간 바둑을 두면 약간 빨리 두는 편인데, 답이 꼭 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속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속기는 아무래도 실수가 많다.”



  - 기풍과도 관련이 있다. 자신의 기풍은.



 “ 적극적이다. 공격적인 것과는 다르다. 어릴 적에는 더 적극적이었던 거 같다.”



 - 거북한 상대가 있다면 누구일까.



 “적극적인 기풍을 가진 상대다. 예를 들어 스웨(時越·23·중국 랭킹 1위) 9단이다. 하지만 이번 준결승에선 스웨가 부담을 가졌던 듯하다(준결승에서 김 9단은 스웨를 2대0으로 눌렀다). 랭킹 1위는 무서운 책임감이 따르는 고약한 자리다. 정환이도 랭킹 1위라 부담이 있을 것이다. 형(선배)들이 앞서 잘해 주었다면 정환이도 힘이 덜 들 텐데 미안하다.”



 김 9단은 어울리는 선후배의 폭이 넓다. 박정환은 21살이고, 이번 결승전이 열린 중국 시안(西安)까지 따라간 목진석 9단은 34살이다. 선후배와 가까이 지내는 일은 여유가 있어야 한다. 김 9단은 결승 직후 인터뷰에서 “탕웨이싱(唐韋星·21) 9단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했다. 대국 중 생기는 적개심 은 시합이 끝나도 당장 사라지지 않는다.



 - 바둑 공부는 어떻게 하나.



 “사활 문제를 많이 본다. 사활을 보면 초반 감각도 좋아진다. 좋은 모양과 나쁜 모양에 대해 감각이 발달한다. ”



 - 닮고 싶은 기사가 있나.



 “최철한(29) 9단이다. 바둑의 내용에서나 일상생활에서나 참 따르고 싶은 선배다. 감화되는 게 많다.”



  - 하루 일과를 소개한다면.



 “매일 오전 10시 한국기원 국가대표 연구회에 나간다. 오후 5시까지 공부하고 약 1시간 더 기원에 머문다. 집은 기원 근처 황학동이다. 집에 오면 6시쯤, 7시 정도까지 저녁식사를 한다. 집에서는 바둑 공부하지 않는다. 밤 10시까지 이것저것 마음 놓고 지낸다. 잠은 7시간 정도 잔다.”



  - 몸이 탄탄한데 운동은 뭘 하나.



 “배드민턴을 시작한 지 1년쯤 됐다. 예전엔 문득 하고 싶어 유도를 2년가량 했다.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됐다. 기회가 되면 다시 하고 싶다.”



  - 아무거나 잘 먹는 거 같은데.



 “무엇이든 잘 먹고 어디서나 잘 지낸다. 살림을 맡은 아내의 내조가 고맙다. 다만 카페인 들어간 음료는 뭔가 싫다. 커피는 안 한다. 아내는 약간 다르다. ”



  - 연애 얘기도 궁금하다.



 “약 2년 했다. 결혼은 자연스럽게 했다. 내가 먼저 하자고 했던 듯하다. ”



 - 앞으로의 희망은.



 “ 나중에 승부에서 벗어날 나이가 되면 수학을 공부해보고 싶다.”



문용직 객원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