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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2015년 동북아 삼국지

중앙일보 2014.12.18 00:08 종합 32면 지면보기
오영환
논설위원
동북아에 외교의 도넛 현상이 생긴 지 오래다. 한국은 북한·일본과의 관계가 뻥 뚫려 있다. 일본은 중국과 정상회담을 하고 북한과 납치 문제를 논의 중이지만 메워야 할 구멍이 크다. 중국은 북한과 냉랭하다. 한·중·일 모두 글로벌 외교를 펼치지만 정작 일의대수(一衣帶水)는 넘나들지 못한다. 영토와 역사 인식을 둘러싼 불신과 대립의 장벽은 높다. 역내 경제적 의존이 높아지고 1일 생활권이 정착됐지만 정치·안보는 거꾸로다. 도넛 외교는 이 동북아 패러독스를 상징한다. 미국과 일본의 상대적 퇴조, 중국의 급부상, 한국의 상대적 부상과 얽혀 있을지 모른다. 각국 정치 지도자의 2세들이 동시에 집권하는 시기에 갈등이 깊어진 것은 아이러니다. 선대(先代)의 유산이나 그 평가에 대한 구애가 유연성을 막을 수 있다.



 내년에 동북아 기상도는 바뀔 것인가. 여기에 영향을 줄 각국의 국내 정치에 적잖은 변화가 잇따라 생겨났다. 민주주의든 그렇지 않든 대외 정책은 국내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달 초 정치적 난제를 매듭지었다. 석유방(幇) 저우융캉 전 정법위원회 서기의 당적을 박탈했다. 지난해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를 법정에 세운 데 이은 조치다. 보시라이·저우융캉 처벌은 표면적으론 부패 척결 차원이지만 권력투쟁의 산물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대항 세력을 정리하면서 시진핑의 권력은 반석에 올랐다. ‘황제 시진핑’이 비로소 탄생했다. 중국의 대일 자세가 유연해질 수 있다. 시진핑의 일본 때리기는 당·군, 여론 결속 때문이라는 시각이 적잖았다. 지난달 열린 중·일 정상회담 당시 시진핑의 굳은 표정만으로 중국의 대일 정책을 짚으면 오판하기 십상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 1비서는 3년 탈상을 했다. 그 사이 북한은 죽은 김정일과 김정은의 공동 정권이었다. 초기엔 김정일 유훈(遺訓)이 통치했다. 지금 김정은은 유일 영도체계를 다지고 있다.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고 권력 엘리트들을 물갈이했다. 인민무력부장을 다섯 번, 총참모장을 네 번이나 교체했다. 장성 계급장에 별 하나를 더 붙였다 뗐다 하는 일이 다반사다. 정책적으론 경제와 핵개발의 병진 노선을 채택했다. 19개 경제개발구(특구)도 설치했다. 외교도 다변화하고 있다. 내년엔 대내외 정책에서 김정은의 색채가 더 짙어질 듯하다. 외교 무대로 데뷔할 수도 있다. 러시아를 방문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해 북·중 관계 복원을 꾀할지도 모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재신임을 받았다. 중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공명당이 압승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2001~2006년) 이래 지속된 리더십 적자(赤字)를 털어냈다. 연립여당은 참의원도 과반을 넘는다. 법안 통과가 탄탄대로다. 2012년 아베 집권 전까지 총리 수명이 약 1년밖에 안 된 데는 중·참의원의 여야 역전이 한몫했다. 아베가 4년 더 집권하면 임기가 6년이다. 시진핑의 10년보다 짧지만 한국 대통령보다 1년 길다. 자민당도 파벌의 연합체가 아니다. 당 집행부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자민당 총보수의 구조다. 아베는 당분간 경기회복에 주력하겠지만 전후 일본의 숙원인 안보 체제 정비를 서두를 것이다. 역사 수정주의는 그대로일 듯하다. 대외적으론 대중 관계 정상화에 적극적일 것이란 시각이 많다.



 내년은 국내적으로 선거가 없는 해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도 반환점을 돈다. 광복 70주년과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다. 동북아 국가 관계는 원심력과 구심력이 교차한다. 자칫 난기류에 빠질 수 있다. 거꾸로 우리가 동북아 도넛 외교의 공백을 채워나가는 주도자가 될 수 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나 동북아 평화구상도 결국은 이 작업이다. 우리는 동북아에서 유일하게 과거사, 정치 체제로부터 자유롭다. 이제 구상을 현실로 만들 때가 됐다. 역사 근본주의와 북핵 우선 해결주의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일, 남북 관계 개선은 외교 공간을 넓히고 경제적 기회를 창출한다. 대외 전략은 일반 여론과 다를 수 있어야 한다. 국익의 관점에서 전략적 결단을 내리고 후세의 평가를 받는 자세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시간은 한국 편이 아니다.



오영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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