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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언제까지 배추·감 갈아엎을 건가

중앙일보 2014.12.18 00:01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정재
논설위원
나라마다 어휘가 특히 풍부한 분야가 따로 있다. 중국 말엔 먹는 쪽이 그렇다. 못 먹겠다는 표현도 가지가지다. ‘츠부관(吃不<60EF>)’은 ‘습관이 안 돼서 못 먹겠다’는 뜻이다. 과연 나이 들수록 어릴 때 먹거리가 입에 당기고 낯선 음식은 삼가게 된다. 곱씹어볼수록 참 절묘한 표현이지 싶다. 나는 그렇다 치고 어려서부터 피자·햄버거 먹고 큰 우리 아이들은 어른이 된 뒤 어떤 음식을 ‘츠부관’하게 될까. 혹 배추·무·감, 우리 채소·과일이 아닐까. 보름 전쯤 TV에 감·배추 갈아엎는 장면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가격 폭락에 따른 농가 손실을 줄이려 하는 일이라지만, 그 말을 뒤집으면 도시민들은 늘 비싼 값에 과일·채소를 먹어야 한다는 얘기 아닌가. 흉년 땐 흉년이라 비싸고, 풍년 땐 갈아 엎어 비싸니 가뜩이나 입 짧아진 우리 아이들이 언제 우리 과일·채소를 맘껏 먹어보겠나. 그러니 어른이 된 후 우리 과일·채소를 보고 ‘츠부관’이라고 하지는 않겠냐는 말이다.



 그렇다고 농심(農心)은 편할까. 안타깝기론 농가가 더하다. 풍작이면 갈아 엎어 손해요, 흉작 땐 정부가 중국산 긴급 수입이다 뭐다 해서 가격을 끌어내리는 통에 어느 한 해 돈 푼 만져보기 어렵다. 오래된 고질병 ‘유통의 역설’이 부른 참사다. 방법이 없을까. 꼬리를 물던 생각이 무상급식에 미쳤다. 갈아 엎는 배추·감을 무상 급식에 주면 어떨까. 400만 명 학생에게 감 하나씩만 먹여도 400만 개다. 어차피 보상금만 받고 폐기하는 것, 공짜로 무상급식에 넘겨주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국가 자원 낭비도 막는 것 아닌가. 이런 순진한 발상이 얼마나 세상물정 모른 것인지 알아채는 데는 2주일이면 충분했다.



 농림축산식품부부터 수소문했다. 안호근 대변인에게 먼저 물었다. “무상 급식과 연계?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누가 하겠나. 나보다 전문가인 유통국장에게 물어보라.” 이재욱 유통국장은 더 많은 정보를 알려줬다. “올해 배추 폐기물량은 15만t이다. 사상 최대다. 7만5000t의 김치를 담글 수 있는 분량이다. 1kg을 4인분으로 치면 약 3억 명 분량이다. 사상 최대다.” 그는 “이 많은 물량을 어떻게 처리하겠나. 우리는 공짜로 넘겨줄 수 있지만 무상급식을 담당하는 (교육청) 쪽에서 가져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폐기 비용보다 포장·배달 등 유통 비용이 더 비싼 데다 유통채널도 다르다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농협망을 활용해 유통한다. 반면 무상급식은 각 시·도의 친환경유통센터가 맡는다.



 서울교육청을 수소문했다. 김관복 서울시 부교육감은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친환경센터가 공급업체를 선정한다. 우선 이들 (급식재료) 공급업체가 갈아 엎는 배추·감 같은 것을 가져다 쓰겠다고 해야 한다. 또 안전성 등 품질 검사 문제가 해결돼야 하고, 학교 교장들이 받아줘야 한다. 공짜라도 쉽게 받아쓰기 어려울 것이다.”



 서울시 친환경유통센터는 어떨까. 송태섭 차장은 아주 곤란해했다. “공급업체들은 민간기업이다. 기본적으로 사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갈아 엎을 배추를 가져오면 미리 계약한 농가와 계약 위반이 될 수 있다. 또 무상급식은 친환경 농산물만 공급한다. 급식 체계 전반을 손 보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한 서울시 교육위원은 올 초 이들 공급업체가 친환경을 이유로 유통구조를 복잡하게 만든 뒤 30~50%를 더 비싸게 받는 수법으로 지난 3년간 400억원 이상의 부당 이익을 취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논란이 커지자 지난해까지 친환경센터에서 식재료를 공급받던 867개의 학교 중 828곳이 거래를 중단했다.)



 결국 따로 따로가 문제였다. 그렇다면 총괄 시스템을 만들면 해결될 것 아닌가. 과거 경제수석이나 경제부총리를 지낸 지인 몇몇에게 물었다. “농식품부·농협·농가·교육청·학교·학부모·공급업체, 각각 이해 관계가 다르다. 부처간 칸막이 하나 허물기도 어려운데, 온갖 이해집단이 얽힌 이런 사안이라면 더 불가항력이다. 섣불리 손댔다간 더 큰 갈등과 비용만 치를 것이다. 한마디로 조정불가다.”



 이제 어쩐다. 어차피 내 일도 아닌데, 여기서 포기해? 그럼 우리 아이들의 ‘츠부관’만 늘어날 텐데…. 부질없이 걱정만 하나 늘려놓고 말았다.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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