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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이라더니…36년만에 전모 공개된 군 의문사 조작

중앙일보 2014.12.17 12:09
군부대에서 자살로 위장됐던 36년 전 죽음의 진실이 17일 공개된 판결문을 통해 낱낱이 드러났다. 판결문엔 죽음을 자살로 은폐하기 위해 부대 전체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과정이 상세히 적혀있다.


자살이라더니…36년 만에 전모 밝혀진 군 의문사
위병소 경계 근무 중 선임 총 맞고 숨져
법원 "가해자는 국가에 손해배상금 지급해야"

1978년 육군에 입대한 심모씨는 육군 제5사단에 배치받아 1년여간 복무했다. 이듬해 8월 심씨(당시 상병)가 대대본부의 위병소에서 경계근무를 하던 중 비극이 벌어졌다. 함께 경계근무를 나갔던 고모씨(당시 하사)와의 말다툼이 시작된 것이다. 가벼운 말싸움은 욕설이 오가다 험악해지고 결국 고씨는 자신의 소총을 심씨에게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심씨의 입술부위를 지나 머리를 관통했다. 심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사고 직후 부대 대대장과 대대 작전참모, 인사참모 등 부대 지휘관 및 간부들의 긴급회의가 열렸고, 곧 결론이 내려졌다. '가정문제를 비관한 자살'



이후 이들은 군 헌병대나 의무대가 사고 현장에 도착하기 전 심씨의 시신을 세면장으로 끌고 가 씻겼다. 다음날엔 의무대로 후송했다. 심씨의 죽음을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부대원들끼리 입을 맞췄고, 심씨의 총을 고씨의 총과 바꾸었다. 전산상의 총기번호까지 수정했다. 화약흔이 남아있던 고씨의 전투복을 심씨의 전투복이라고 속여 수사기관에 제출해 '총기피복감정'이 이뤄지게 하기도 했다.



심씨의 가족들은 "가족간의 갈등을 비관해 자살했다"는 통보를 믿지 못했다. 이에 가족들은 시신을 사설 병원으로 옮겨 검안한 뒤 매장할 수 있도록 인도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같은 요청을 묵살되고 시신은 부대 주도로 화장됐다.



영원히 묻힐 것 같던 진실은 심씨의 어머니가 2006년 12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아들의 사망 원인을 규명해달라"며 진정을 내면서 밝혀지기 시작했다. 위원회는 2008년 "부대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 결과 심씨가 고씨가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통보했다. 심씨의 가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죽음을 조작·은폐해 유족보상금을 못 받게 하고, 심씨의 사망에 대해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는 등 정신적 고통을 받게 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2010년 가족들은 국가로부터 총 4억6000여만원을 받았다.



이후 국가는 심씨를 죽인후 이를 조작·은폐한 고씨 등 관계자 6명을 상대로 "고씨 등의 불법행위로 인해 국가가 대신 배상한 손해배상금을 물어내라"며 구상금 청구소송을 냈다. 서울고법 민사15부(부장 김우진)는 "국가에게 1억890만원을 지급하라"며 국가 측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고 17일 밝혔다. 재판부는 "6명 모두 자살로 은폐·조작하는 불법행위를 고의로 저질렀고, 국가가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했으므로 구상요구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유족연금은 이들의 불법행위와 무관하게 국가가 지급 책임을 져야한다고 보고 이에 대한 배상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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