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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박사 20명을 상주로 불러들인 지방 강소기업

중앙일보 2014.12.17 01:58 종합 1면 지면보기
외환위기가 절정이던 1999년 초. 당시 경상대 교수로 있던 신동우(53) 나노 대표는 절망감에 빠졌다. 자신이 가르친 석사 졸업생이 나왔지만 직장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핸디캡 앞에선 석사 졸업장도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젊은이에게 길은 있다
친환경설비 최강 업체 '나노'
기술·복지 갖추자 인재 몰려
수도권·지방 일자리 미스매치
지방 강소기업 키워야 풀려

 그는 “제자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하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아예 제자들이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자고 결심했다”며 “그해 가을 캠퍼스 안에 졸업생 1명, 재학생 3명과 함께 창업했다”고 회고했다. 현재 경북 상주시에 본사를 둔 탈질 촉매(SCR) 전문기업 ‘나노’의 시작이다.



 신 대표는 지방대 출신을 채용하고, 각종 비용이 저렴한 입지 여건을 활용해 회사를 키워갔다. 현재 나노는 직원 100여 명에, 연매출 360억원을 올리는 강소기업으로 컸다. 국내 SCR의 90%를 나노가 공급한다. 지역경제 발전과 일자리 창출 등에 기여한 공로로 ‘상주 시민상’ ‘경북 기술대상’도 받았다. 지방에서 뿌린 창업의 ‘씨앗’이 중견기업으로 ‘열매’를 맺고, 나아가 지역에서 육성한 인재들이 지역 산업현장에서 활약하게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 셈이다.



 회사가 경쟁력을 갖추자 인재가 모이기 시작했다. 직원 가운데 20명 정도가 석·박사 출신이다. 국내 명문대는 물론 해외 유학파 인력도 있다. 미국 오리건주립대를 졸업한 곽주섭(31) 대리는 "틀에 박힌 대기업보다 미래가 밝은 중소기업에서 날개를 펴겠다”며 이 회사를 택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청년은 여전히 수도권 일자리에 목을 맨다. 16일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에 따르면 ‘대졸 취업생의 타 지역 이탈률’은 수도권의 경우 12.1%에 불과하지만 충청권은 71.9%, 호남·강원권은 이 비율이 50%를 넘는다. 대졸자 절반이 자신이 기반을 둔 곳을 벗어나 수도권 등에서 일자리를 찾는다는 의미다.



 신용한 청년위원장은 “취업준비생은 수도권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반대로 지방 기업은 젊은 인력을 구하지 못하는 서울·지방 간 ‘일자리 미스매치’가 심각하다”며 “이런 인재 유출은 지역 산업현장의 창의성을 떨어뜨리고 잠재성장률을 악화시킨다”고 우려했다.



 희망의 싹은 자라고 있다. 탄탄한 지방 강소기업이 늘면서 여기에서 자신만의 성공 스토리를 써내려가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의 가정용 전열기기 기업 보국전자에서는 여름이 되면 2m 높이의 ‘수출용 박스’에 양모·섬유 같은 원재료를 넣어 보관한다. 종이로 된 박스가 습기를 흡수해 원재료의 상태를 유지해주는 데다, 박스를 재활용할 수 있어 1석2조다.



아이디어를 낸 주인공은 2011년 입사한 박상준(31) 대리. 그는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빠르게 의사결정을 하는 회사의 열린 문화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스펙’이 나쁘지 않은 그 역시 수도권 대기업 입사를 꿈꿨다. 하지만 편찮으신 아버지를 두고 떠날 수 없어 가까운 지방 강소기업에 취업했다. 그는 "지방 강소기업이 많아지면 지역 인재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 강소기업은 대기업 하청업체가 아니다. 앞선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규모는 작지만 강한 경쟁력을 갖춘 알짜기업들이다. 중소기업진흥공단 박철규 이사장은 “지방 중소기업 지원 정책이 한계기업을 돕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성장성 높은 기업을 강소기업으로 키우는 혁신 주도형으로 바뀌어야 한다” 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손해용·이현택·채윤경·김영민, 뉴욕=중앙데일리 송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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