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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通新 사용설명서] 차라리 쇼를 하라

중앙일보 2014.12.17 00:01 강남통신 19면 지면보기
연말이면 신문에 늘 등장하는 사진이 있습니다. 대기업 오너를 비롯해 수많은 사회 지도층 인사의 연탄 나르기 장면이죠. 얼굴만 바뀔 뿐 매번 구도까지 똑같은 사진이 신문에 실리기 시작할 즈음이면 아, 이렇게 또 연말연시가 지나가는구나 싶을 정도입니다.



 아무리 저소득층이라고 해도 이제는 연탄 때는 집 못지않게 기름 보일러 쓰는 집이 많을텐데 왜 다들 그렇게 연탄만 나르는 걸까요. 답은 다들 아는 대로 사진 효과가 좋기 때문입니다. 봉사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보여주기용 이벤트라는 비판을 종종 받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말로는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면서 실은 자기 실속(홍보효과)만 차리는 위선적 행동이라는 인식이 독자들 머릿속에 깔려있는 거죠.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성 자선이나 기부가 꼭 욕을 먹어야만 하는 걸까요. 때때로 얼굴없는 천사가 등장하긴 하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칭찬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좋은 일을 합니다. 또 꼭 칭찬받으려고 한 일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알아주면 더 기분이 좋기도 하죠.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이 언젠가 미국과 한국의 기부문화에 대해서 한 말이 있습니다. 현대카드는 잘 알려진 대로 국내외에서 다양한 형태의 기부를 합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Museum of Modern Art) 후원도 그중 하나죠. 모마 측은 정 사장을 초청해 미술관에서 성대한 파티를 열어줬답니다. 쟁쟁한 인사들을 모두 불러모으고는 현대카드 후원에 대해 어찌나 치켜세워주는지 얼마든지 계속해서 돈을 내고 싶더랍니다. 하지만 현대카드가 자사 인력과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도와준 한국의 어떤 단체는 관련 내용을 담은 책에서조차 현대카드에 대해 아무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군요. 말을 아꼈지만 누구라도 이쯤 되면 더 이상 후원하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연탄 나르기나 모마 얘기를 장황하게 한 건 한국의 기부문화에 대해 다룬 이번 주 江南通新 커버 스토리 때문입니다. 왜 한국 부자는 미국 부자만큼 자선활동이나 기부에 인색한지 안타까워만 할 게 아니라, 이처럼 돈 있는 사람들이 맘껏 기부한 티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정치에서부터 가수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요즘은 너도나도 진정성을 찾습니다. 진정성 있는 행동, 물론 좋습니다. 하지만 때론 그저 쇼라도 하는 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참, ‘구민을 위한 행정’ 같은 쇼를 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강남구는 대놓고 구청 공무원의 배낭여행에 수억원의 세금을 썼더군요. 기막힌 출장 내역서를 4면 이슈클릭에서 확인해보시죠. 감사합니다.



메트로G팀장=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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