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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철벽 수비 정수빈·김상수는 못 낀다, 골든글러브

중앙일보 2014.12.16 00:15 종합 33면 지면보기
1994년 한 야구 주간지는 ‘최고 유격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이종범(해태)과 유지현(LG)을 비교하는 기사를 실었다. 그해 이종범은 타율 0.393, 19홈런, 196안타, 84도루를 기록하며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공격만 잘하는 게 아니었다. 스프린터처럼 빠른 발로 타구를 쫓았고, 시속 140㎞ 가까운 빠른 송구를 했다.


공격력 뛰어난 선수에게만 초점
최고 수비수 뽑는 새로운 상 필요
수비율 중심으로 수상자 선정하니
강민호·채태인 등 8명이 새 얼굴

※골드글러브는 9개 구단 수비 코치 설문(75%)+수비율, 레인지팩터(수비 범위), 도루저지율 등 합산한 수비기록(25%)으로 선정.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종범은 93년부터 5년 동안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golden glove)를 네 차례 차지했다. 최고 선수였으니 포지션별 최고를 뽑는 골든글러브는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당시 주간지 기사의 결론은 달랐다. 이종범의 수비가 화려하지만 안정성은 유지현이 낫다는 의견이 꽤 많았다. ‘ 이종범과 유지현이 있다면 누구를 유격수로 쓰겠는가’는 질문에 감독·코치의 절반 정도가 유지현을 선택했다.



 그러나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유지현이 이종범을 이긴 적은 없다. 이종범이 1998년 일본에 진출한 뒤에야 유지현이 2년 연속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받았다. 미국·일본과 달리 한국의 골든글러브는 최고 수비수에게 주는 상이 아니다. 프로야구 골든글러브는 정규시즌 성적을 바탕으로 후보를 뽑고, 기자단 투표로 수상자를 선정한다. 수비력이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글러브를 끼지 않는 지명타자도 골든글러브를 받는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포지션별 최고 수비수들에게 골드글러브(gold glove)를 시상한다. 선수의 수비기록을 바탕으로 감독과 코치들이 투표한다. 포지션별로 최고의 타격을 보인 선수에게는 ‘실버 슬러거’를 준다. 골드글러브는 일본에서 ‘골든글러브’로 둔갑했다. 일본 역시 수비 잘하는 선수에게 골든글러브를 준다. 한국도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수비율(실책을 하지 않을 확률)을 기준으로 골든글러브를 시상했다. 포지션별 최고 선수는 지명타자를 포함해 ‘베스트10’으로 선정했다.



 1984년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베스트10’을 폐지한 뒤 포지션별 최고 선수들에게 골든글러브를 주고 있다. 골든글러브 후보 명단에는 정규시즌 성적이 기재돼 있다. 수비율 항목도 있지만 편차가 거의 없어 공격(투수는 투구) 성적으로 수상자가 결정된다.



 2014년 골든글러브 수상자는 밴헤켄(넥센 투수)·양의지(두산 포수)·박병호(넥센 1루수)·서건창(넥센 2루수)·박석민(삼성 3루수)·강정호(넥센 유격수)·최형우(삼성 외야수)·나성범(NC 외야수)·손아섭(롯데 외야수)·이승엽(삼성 지명타자)이었다.



 본지는 메이저리그 방식을 따라 2014년 골드글러브 주인공을 선정했다. 9개 구단 수비코치에게 포지션별 최고 수비수를 물었고(75%), 수비율과 레인지팩터(수비범위) 기록(25%)을 반영했다. 그 결과 손아섭을 제외한 8명의 얼굴이 바뀌었다. 봉중근(LG 투수)·강민호(롯데 포수)·채태인(삼성 1루수)·정근우(한화 2루수)·최정(SK 3루수)·김상수(삼성 유격수)·김강민(SK 외야수)·정수빈(두산 외야수)이다. 강민호·정근우·최정은 골든글러브 후보에도 들지 못했던 선수들이다.



 최고 수비수를 가리는 데에도 고민은 있다. 감독·코치가 다른 팀 경기를 모두 챙겨 볼 수 없어 편향된 의견을 낼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수비력은 기복이 없어 한 선수가 장기집권할 확률도 높다. 2008년 은퇴한 그렉 매덕스(48)는 19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뛰면서 내셔널리그 투수 골드글러브를 18차례 수상했다. 공격력을 어느 정도 갖춰야 수비 기회(주전이 될 기회)를 잡는 것도 간과할 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수비수에 대한 평가는 필요하다.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는 좋은 기록을 남기고, 인기가 오른다. 이를 근거로 높은 연봉을 받고, 올스타전에도 나가며, MVP에도 도전할 수 있다. 같은 기준으로 골든글러브까지 받는다면 과한 것 아닐까.



 KBO 류대환 사무차장은 “과거엔 수비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아 팬들이 수비력을 기준으로 한 골든글러브를 낯설어 했다. 그래서 ‘베스트10’이 골든글러브로 이름을 바꾼 셈이 됐다. 언젠가는 최고 수비수들에 대한 시상을 따로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구 팬들의 수준이 높아진 걸 보면 진짜 골든글러브(혹은 골드글러브) 수상자를 가릴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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