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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군 성범죄와 힘겨운 전쟁 벌이는 미국

중앙일보 2014.12.16 00:02 종합 38면 지면보기
이상복
워싱턴 특파원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군 성범죄는 심각한 문제다. 오죽하면 대통령까지 나서 국가 차원의 전쟁을 선언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5월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성범죄는 나라를 배신한 행위라고 규정했다. 미군 내 성범죄 발생 건수가 매년 40% 늘고 있다는 보고서가 발표된 직후였다. 대통령 연설 후 국방장관이 직접 병영 개혁을 진두지휘해 왔다.



 그 1년의 결과물이 최근 공개됐다. 미 국방부가 이달 초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2014년 회계연도(2013년 10월 1일~ 2014년 9월 30일) 군 당국에 신고된 성폭력 피해 건수는 5983건. 직전 회계연도의 5518건보다 8% 늘어난 수치다. 증가된 건수만 놓고 보면 개혁의 효과가 별로 없었다고 결론 내리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이번 통계는 성범죄 발생 건수가 줄고 신고 비율은 늘었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별도 조사에선 2년 전 피해자 10명 중 한 명이 신고를 했다면, 올해는 4명 중 한 명이 용기를 냈다고 분석됐다. 현역 군인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 비율이 2년 전에 비해 1.8%포인트 감소했다. 이를 종합할 때 지난 1년간 실제 성범죄 건수는 1만9000여 건으로 2012년 2만6000건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미 국방부는 지난해와 올해 다양한 처방전을 도입했다. 핵심은 피해자들이 자유스럽게 신고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전용 신고 전화를 개설했고 변호사 서비스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사상 처음으로 제3의 기관에 군 실태 조사를 맡기기도 했다. 올해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랜드 코퍼레이션이 14만5000명의 현역 군인들을 접촉해 성범죄 실태를 조사했다. 군 외부 기관에 속살을 보이는 건 부담이고 모험일 수밖에 없다. 동시에 지휘관이 성범죄 조사 내용을 뒤집지 못하게 재량권을 축소했다. 범죄 사실이 확인되면 가혹할 정도의 책임도 물었다. 몇 달 전 부하 성범죄에 대한 수사를 지연시킨 육군 소장이 한 계급 아래로 강등당해 옷까지 벗었다.



 척 헤이글 국방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갈 길이 멀지만, 피해 신고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보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성범죄와의 전쟁이 더 강도 높게, 지속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일회성으로 대책을 내놨던 과거 방식으론 군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차원이었다.



 이처럼 국가 차원에서 총력전을 펼치는 미국의 사례는 군 성범죄를 줄이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시급한지를 보여준다. 개선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매년 2만 건 가까운 성범죄가 일어나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개혁은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오바마의 말이 더 다가온다. 그 점에서 우리의 현실은 어떤지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



이상복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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