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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경위 "한경위,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 … 이해한다"

중앙일보 2014.12.15 02:13 종합 4면 지면보기
자살한 최모 경위의 유서 14쪽 중 일부가 1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성당에서 공개됐다. [김경빈 기자]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서 너에게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당연히 흔들리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청와대 회유 암시한 유서 논란
민정비서관실이 모종 제의 통해
한 경위에게 거짓 자백 유도 암시
"우리 회사 명예 지키려 이런 결정"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수사를 받아온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소속 최모(45) 경위가 자필로 작성한 14쪽 분량의 유서에 남긴 내용이다. 최 경위는 앞서 지난 13일 자신의 고향인 경기도 이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들은 14일 오후 서울 명일동성당에 차려진 빈소 옆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서 14쪽 중 가족에게 남긴 글을 제외한 8쪽 분량을 공개했다.



 최 경위의 유서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로 함께 수사를 받아오던 한모 경위에게 남긴 2쪽 분량의 글이다. 최 경위와 한 경위는 지난달 28일 세계일보의 ‘정윤회 동향’ 문건 보도 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감찰보고서·동향보고서 등을 복사해 ‘2차 유출’시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아왔다.



 최 경위는 유서에서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 나는 너(한 경위)를 이해한다’며 민정비서관실 제의설을 제기했다. 민정비서관실에서 한 경위에게 모종의 제의를 통해 거짓 자백을 유도했음을 암시한 것이다.



 앞서 최 경위는 지난 11일 구속영장 실질심사 때 이 같은 의혹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당시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영장이 청구된 두 사람 중 한 경위는 자백을 하는데 최 경위는 왜 부인하느냐”고 묻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검찰에 체포되기 전날인 8일 민정수석실 파견 경찰관이 한 경위에게 선처 얘기를 했다고 한 경위가 내게 알려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경위는 “체포되기 전 최 경위를 만난 적이 있느냐”는 판사의 물음에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유족들은 “한 경위도 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 조사 때 했던 자백을 뒤집었다. 한 경위가 양심선언을 하면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는 얘길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 경위는 또 한 경위에게 보내는 유서에서 ‘이제 내가 이런 선택(자살)을 하게 된 것은 너와 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회사 차원의 문제이다’ ‘이제라도 우리 회사의 명예를 지키고 싶어 이런 결정을 한다’고 덧붙였다.



 유서에는 언론과 기자들에 대한 언급도 담겼다. 최 경위는 기자 2명의 실명을 언급하며 ‘좋아하고 진정성 있던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정윤회 문건’을 처음 보도한 세계일보의 조모 기자에 대해 ‘BH(청와대)의 국정 농단’은 자신과 상관없고 단지 조 기자가 쓴 기사로 자신이 힘든 지경에 오게 됐다고 했다. 또 조선일보의 김모 기자에 대해서도 ‘제가 좋아했던 동생인데 조선에서 저를 문건 유출의 주범으로 몰고 가 너무 힘들게 됐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이날 조선일보는 ‘보도 참고 자료’를 내고 “문건의 진실 여부와 유출 경위에 대한 검찰의 수사 진행 상황을 어떠한 예단도 없이 객관적이고도 공정하게 보도해왔다”고 주장했다.



최 경위의 형 낙기씨는 “동생은 ‘세계일보 기자에게 청와대 문건을 전달한 게 아니라 거꾸로 기자가 내게 문건 내용을 알려줬다’고 했다”며 “세계일보 기자가 진실을 밝혀줄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또 “동생은 수사 방향을 보며 ‘세상이 더럽다’는 생각을 하고 인간에 대한 배신감을 느껴 그런(목숨을 끊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유족들은 “정치권이 최 경위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면서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글=윤호진·안효성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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