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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사랑할 줄 알아야 음악에도 힘이 있습니다

중앙선데이 2014.12.13 02:28 405호 6면 지면보기
1992년 나온 책 『줄리어드 스토리』를 보면 숨이 막힌다. 뉴욕의 줄리아드 스쿨 졸업생이 쓴 학교 이야기다. 우정을 나누던 친구가 이튿날 콩쿠르에서 차가운 경쟁자로 바뀐다. 천재는 더 뛰어난 천재를 보고 좌절한다. 전세계에서 날고 기는 예술가 지망생들이 모이는 곳. 조셉 폴리시 총장은 2010년 인터뷰에서 “줄리아드와 의과대학 둘 다 거친 졸업생이 ‘줄리아드가 더 어렵다’고 하더라”는 일화를 전한다.

세종솔로이스츠 20주년…줄리아드 음대 강효 교수

세종솔로이스츠는 여기에서 탄생했다. 아니, ‘그래서’ 탄생했다는 표현이 맞다. 94년 이 악단을 만든 강효(69) 줄리아드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85년부터 줄리아드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모든 학생에게 ‘친구들 연주를 최대한 많이 듣고 격려하라’고 했죠.” 그는 치열한 경쟁이 좋은 연주자를 완성할 수는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른 사람을 응원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음악에도 힘이 있습니다.”

강 교수는 92년부터 줄리아드 출신의 쟁쟁한 현악기 연주자들을 모았다. 좁은 관문을 뚫고 학교를 입학ㆍ졸업하고, 게다가 국제 콩쿠르 입상까지 거머쥔 이들로 골랐다. “하나하나 주인공인 연주자들이지만, 세종솔로이스츠 안에서는 태도가 조금 달라요. 어느 한 명이 솔로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힘껏 반주해주거든요. 또 연주하러 나갈 때는 무대 뒤에서 서로 등을 두드려줍니다.”

처음에는 8개국 출신 11명이 모인 현악 앙상블이었다. 한국계 학생들을 중심으로 94년 크리스마스에 뉴욕의 한 작은 교회에서 소박한 출발을 했다. 강 교수는 “울림이 좋은 교회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칠 수는 없었다. 한국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이름도 ‘세종’이라고 붙인 참이었다.

강 교수는 연주를 테이프에 녹음해서 ‘세일즈’를 다녔다고 한다. 미국 아스펜 음악제 매니저에게 이 테이프를 들려준 후 역전이 시작됐다. 95년 아스펜 음악제에서 유명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펠츠만과 협연한 후 세종솔로이스츠는 국제 무대를 누비기 시작했다. 97년부터 8년 동안 아스펜 음악제의 상주 실내악단이 됐다.

그렇게 20년 동안 쑥쑥 자랐다. 미국ㆍ유럽ㆍ아시아 등 세계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400회가 넘게 연주했다. 현재 단원은 26명이고 거쳐간 연주자는 62명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ㆍ백주영ㆍ이유라,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첼리스트 송영훈 등 오비(OB) 명단이 화려하다.

강 교수는 서울대 음대 바이올린 전공 1학년 때 미국 교수에게 발탁돼 줄리아드로 유학을 떠났다. 세계적 명스승인 도로시 딜레이에게 연주뿐 아니라 교수법에 대한 교훈도 얻었다. “학생의 삶과 생각까지 들여다보고, 잘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다. 이후 85년 이 학교 최초의 동양인 교수로 임용됐다. 길 샤함, 사라 장, 김지연 등 1000여 명을 줄리아드에서 가르쳤다.

15일 열리는 세종솔로이스츠 20주년 기념 음악회는 강 교수의 음악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의 옛 제자들이 한꺼번에 출연한다. 리처드 용재 오닐, 클라라 주미 강, 송영훈, 이경선과 일본의 료 사사키, 중국의 첸 시 등이 무대에 선다. 마침 내년은 강 교수가 칠순이다. “연주자 길을 포기하면서 선택한 교육자의 길이 좋다”던 그의 행복을 확인할 무대다.


글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사진 세종솔로이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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