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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튜브형 기둥 덕에 공간 활용의 자유를 얻다

중앙선데이 2014.12.13 03:19 405호 23면 지면보기
도서관의 7개 바닥은 나무기둥 같은 튜브로 지탱되어 밤이 되어 내부에 빛이 켜지면 건물의 구축 원리가 도시로 들어난다.
1층은 튜브를 제외한 모든 공간이 자유로운 평면으로 계획되어 다양한 규모의 시민 행사에 유연하게 활용된다.
도서관 외부
일본을 방문할 때면 두세 끼 정도는 도시락으로 해결하곤 한다. 이번엔 첫 식사를 편의점에서 마쳤다. 놀랄만큼 다양한 일본 편의점의 도시락을 볼 때면 빠르고 미분화된 일본 사회의 현대적 삶이 자연스레 이해가 된다. 반조리 건조식품의 단순한 패스트푸드를 넘어 간단한 가열로 막 요리해 먹는 느낌을 내기도 하는데, 이런 사소한 요구를 다양하고 섬세한 상품으로 해결해내는 일본의 문화에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매혹되는 것이리라.

강예린·이치훈의 세상의 멋진 도서관 <4> 일본 센다이 미디어테크

비단 도시락 뿐이겠는가. 건축하는 사람들에게 일본은 기술적·미학적 차원에서 많은 참조점을 제공하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토 도요(伊東豊雄)의 건축 몇 가지를 보기 위해 교통이 좋은 도쿄의 중심에 숙소를 마련했다.

우에노역에서 신칸센으로 두시간 반 정도 올라가면 센다이(仙臺)라는 도시가 나온다. 일본에서 12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크기 만큼 혼란스럽지 않다. 코토다이코엔역 삼거리로부터 서쪽 방향으로 이어진 조젠지길을 따라가다 보면 넓은 도로 중간에 백 년은 족히 넘어보이는 울창한 나무들이 열 지어 서있다. 중앙분리대 역할도 하고 있는 이 기다란 공원의 나무 아래를 따라 5분 정도를 걸으면 길 오른편으로 전면이 유리로 된 도서관과 만나게 된다.

공원에서 보자면 길건너 도서관은 나무에 가려 그 모습 전체가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건물 전면의 유리가 또 나무를 반사해 건물 자체는 마치 나무들 사이로 숨어버린 듯한다. ‘나무의 도시’라는 별칭처럼 도시는 어딜 가나 울창한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그것은 센다이 도서관도 마찬가지였다.

건물은 투명한 유리 두 겹으로 둘러싸여 빛을 들이되 차가운 공기가 내부로 전달되지 않게 설계됐다.
유리 건물이 어두운 극장으로 변신
센다이 공공도서관. 공식 명칭은 센다이 미디어테크(Sendai Mediatheque)인데, 이 도서관은 도시를 닮아있다. 도서관 건축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기도 한데, 7개의 층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 마치 오래된 나무의 기둥 같다.

공원에서 보면 건물 전체를 감싸는 유리벽 너머 1층부터 7층까지 굵게 솟은 튜브는 유리면에 반사되는 나무들과 섞여 숲의 한 부분처럼 보인다. 약간씩 비틀거리며 1층부터 7층까지 상승하는 13개의 철골 튜브는 각각 엘리베이터, 계단, 설비통로, 빛을 들이는 천장 등의 역할을 갖고 있다.

커다란 건물의 규모에 비해 위압감을 느끼지 않도록 만든 작은 입구로 들어서면 밖에서는 나무 기둥 같던 철골 튜브가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높고 넓은 로비가 펼쳐진다.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했다는 빨간 안내 데스크가 눈길을 끈다.

방문하던 날 1층 로비에서는 마침 시민들의 그림 전시를 준비중이었다. 7~8m 정도 되어보이는 높은 천장에 움직이는 가벽들이 매달려있고 이 벽을 움직여 전시 영역을 구획했다. 입구 반대편에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고정된 흰 벽이 서 있고 맞은편 천장에는 대형 프로젝터가 달려있다. 역시 움직이는 가벽을 둘러치면 극장으로 쓸 수 있다고 한다. 유리 건물이어서 날씨가 화창하면 많은 빛이 건물 내부로 들어오는데, 벽을 움직이면 어두운 극장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같다.

이리저리 공간이 변하고, 소란스런 전시도 일어나는 이 곳은 전형적인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시민들의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센터에 가깝다. 가벼운 금속과 강철로 만들어진 도서관의 이미지는 유연한 도서관의 프로그램과 더불어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관습적인 건축, 공간과 멀리 떨어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도서관 전체 공간을 떠받치는 강철 기둥과 부유하듯 떠있는 천장, 바닥의 골조는 모두 배를 만들던 기술자들이 시공했다는 점이다. 큰 항구로도 유명한 센다이니만큼 혁신적 건축을 만들어내기 위해 선박 용접공들이 모여들었던 것이다.

3층의 중앙 열람실은 넓은 바닥이 서가로 가득하다. 직부조명 없이 도서관 사람들이 UFO라고 부르는 간접 조명으로 모든 빛을 천정으로 반사시켜 은은한 인공 빛환경을 만들어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 위를 보면 꼭대기까지 뻥 뚫린 튜브를 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래 뱃속이 이럴까. 강철 프레임으로 이루어진 수직 이동공간은 도서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천장을 뚫고 치솟아 올라가는 짜릿함
서양 건축의 역사를 들여다 보면 건축 재료의 발전이 구축 방식의 진화를 유발하면서 건축의 외형과 내부 공간의 변화를 만들어 냈음을 알 수 있다. 산업혁명을 거치며 성능이 진화된 콘크리트, 철, 유리는 건축의 모습을 이전과 완전히 다르게 바꾸어 놓았다. 자연에서 채취한 돌을 작게 잘라 쌓은 석조 건물이나 나무로 지어진 건물은 높게 올라가기도 힘들었고 두꺼운 외벽 때문에 내외부 공간의 시각적인 소통도 불가능했던데 반해 철근으로 보강된 콘크리트는 건물을 얇은 기둥과 보, 바닥만으로 버틸 수 있게 했다.

외벽이 더 이상 건물의 무게를 떠받치는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 구축 모델을 르 코르뷔지에는 ‘Dom-inno’(Domus Innovation·주택의 혁신 혹은 혁신적 주택)라고 불렀다. 그런데 센다이 미디어테크를 설계한 이토 도요는 현대 건축의 혁신적인 구축 모델인 ‘Dom-inno’에서 한발 더 나아가 기둥의 역할을 재해석했다. 단순히 떠받치는 기둥이 아니라, 기둥을 튜브의 형태로 만들어 그 속을 각종 수직 동선과 기계설비 공간으로 활용한 것이다. 이로 인해 튜브의 나머지 공간은 부유하듯 자유롭게 구획해 쓸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

엘리베이터를 품고 있는 튜브를 타고 맨 윗층까지 올라가다보면 7개의 바닥과 천장을 뚫고 상승하는 느낌을 받는다. 위로 상승하면서 펼쳐지는 각층의 도서관 풍경을 보는 것은 센다이 미디어테크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거의 모든 층이 고정된 벽을 최소화하고 각 층을 모두 개방해 쓰고 있어 정말 판을 뚫고 올라가는 느낌이 난다. 바닥과 튜브로만 이루어진 건축물은 그렇게 현대 건축의 관습적 구축방식에 질문을 던지며 이전 세대의 건축과 구별되는 작지만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구축 방식의 독창성과 함께 이 도서관은 단순히 공공 도서관으로 불리기를 거부한다. 미디어테크라는 말은 책을 보관하는 도서관, 즉 ‘비블리오테크(Bibliotheque)’로부터 진화된 도서관을 의미한다. 책을 너머 변화된 모든 미디어를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공공시설인 것이다.

꼭대기 층으로부터 다시 계단을 통해 한층 한층 둘러보며 로비로 내려간다. 계단실 튜브에는 벤야민과 르페브르 미셸 세토르의 유명한 문장들이 적혀있다. 아마도 ‘일상성’을 주제로 한 인용문 전시인 것 같다. 첨단의 미디어를 담은 첨단의 건축 속에 아날로그적 감성의 작은 전시였다. ‘다양한 미디어의 집’으로서 센다이 미디어테크는 그 기술적 성취를 넘어 시민의 지성과 감성을 자극하는 숲으로 서 있다.


강예린·이치훈 건축가 부부.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SOA)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도서관 산책자』『세도시 이야기(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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