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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말하던 무용수들 입으로 예술을 들려주다

중앙선데이 2014.12.13 03:46 405호 30면 지면보기
춤은 말이 없다. 몸의 움직임만으로 이야기를 건다. 그래서 조금은 지루하고 어려운 게 무용공연이다. 무용수들이 입을 열면 어떨까. 늘 입을 굳게 다문 채 현란한 테크닉 또는 우아한 곡선만으로 우리를 홀리는 저들의 몸은 대체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었는지 직접 들어본다면.

국립현대무용단 ‘2014 춤이 말하다’19일~25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국립현대무용단의 송년공연 ‘춤이 말하다’에서 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지난해 안애순 예술감독의 취임과 함께 시작된 국립현대무용단만의 레퍼토리로, 최초의 ‘렉처 퍼포먼스’라는 독특한 형태의 공연으로 화제가 됐다. 지난해에는 발레·현대무용·한국무용·스트릿댄스 각 분야를 대표하는 최고의 무용수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동시대의 춤, 즉 현대무용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자신의 춤에 대해 보여주고 들려줬었다.

‘2014 춤이 말하다’는 무용수의 몸에 말을 건넨다. ‘직업 무용수들의 몸’을 주제로 삼은 것. 국립현대무용단의 2014년 시즌 주제 ‘역사와 기억’을 개인에게로 소환해 무용수의 신체와 거기에 기록된 춤에 관한 내밀한 이야기를 촘촘하게 그려낸다는 의도다.

춤추는 몸은 일상의 몸과는 차원이 다르다. 무용수의 몸은 현실로부터 벗어난 환상을 연출하고, 우리는 그 아름답고 특별한 몸을 바라보며 쾌감을 얻는다. 하지만 춤을 업으로 살아가는 이에게 몸이란 현실이다. 밥벌이의 도구인 동시에 다치고 늙어가는 평범한 신체로서의 몸이기도 하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 뒤에서 어떻게 심리적 불안과 공포를 다스리고 있을까. 그들도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실까. 건강관리를 위해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제작진은 독특한 접근방법을 취했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를 초대해 무용수들의 몸을 의학적으로 진단하고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한 계원예대 서동진 교수가 무용수 개개인과 사전 인터뷰를 진행했다. 안애순 예술감독은 연출을 맡아 이 모든 과정을 엮어 ‘무용과 몸을 에워싼 환상과 실제’를 드러내는 공연을 구성했다.

올해도 발레와 현대무용, 한국무용과 스트릿댄스 4개 분야를 대표하는 최고의 무용수 6인을 무대에 세운다. 올해 ‘댄싱9’ MVP로 화제를 모은 벨기에 피핑톰 무용단의 김설진, 영국 호페쉬 쉑터 무용단 출신 현대무용수이자 탁월한 안무가 차진엽, ‘대한민국 비보이 1 VS 1 대회’ 챔피언 디퍼 김기헌이 출연한다. 또 파리오페라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동했던 발레리노 김용걸과 국립발레단의 프리마돈나 김지영, 동래한량무와 승무로 유명한 한국전통춤의 오철주가 출연해 각각 부상과 정신적 스트레스, 외모 콤플렉스 등을 테마로 마냥 아름다워 보이는 무용수의 몸이 어떤 고통을 품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김설진은 “연습도중 ‘저 조그만한 애 빼’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많다”며 키 크는 수술을 받을 병원을 알아볼 정도로 고민이 많았단다. 깔창을 깔고 뒷꿈치를 들어보기도 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용걸은 ‘귀족예술’ 발레를 위한 몸매가 그냥 타고나거나 운동만으로 갖출 수 있는 게 아님을 이야기한다. 여자 무용수를 받쳐주기 위해 근육을 키워야 하지만 근육이 자신의 움직임을 방해하기 때문에 필요 최소한의 근육만 키워야 하는 아이러니를 이야기한다.

차진엽은 한때 현대무용의 트렌드였던 남성적인 파워풀한 춤을 추려고 무리해서 몸을 혹사시켰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기 몸의 상태에 맞는 춤을 찾아가고 있단다. 최고의 발레리나 김지영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시절 머리색과 생김새 때문에 역할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동양인의 신체에 대한 자각과 한때 부상으로 좌절했던 2년간의 회복 과정에 대해 들려준다.

디퍼 김기헌은 격렬한 배틀 위주인 스트릿댄서라는 직업 때문에 보험에도 못 들고 있단다. 보호장비도 없이 훈련하고, 숱하게 부상을 입어도 병원에 가지 않고 견디다 보니 고질병들이 많이 생겼다며 화려한 무대 뒤의 고통을 생생히 들려준다.

상대적으로 편해 보이는 한국무용이라고 해서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비춤인 한량무를 추기 위해서도 도포 끈을 묶은 상체 품새 하나를 위해 푸시업도 하고 기마자세로 역기도 들어야 하며 하체근력 운동도 해야 한다는 것이 한국무용가 오철주의 얘기다.

무용수의 몸은 무대 위에서 아름다움이라는 환상을 구현하지만, 무대를 내려오면 다치지 않고 더 아름답게 단련해야 할 현실일 뿐이다. 최고의 무용수들이 건강과 부상 등 자신의 경험을 재료 삼아 몸에 대해 들려주는 자전적 이야기는 무용을 에워싼 막연한 환상을 벗어나 춤에 이르는 무용수들의 헌신을 보게 한다. 이 ‘말하는 춤’을 보고나면 무용 공연이 달리 보일 것 같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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