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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망국 패배자'냐 '항일 애국자'냐 … 영국 학자가 본 풍운아 장제스

중앙일보 2014.12.13 00:33 종합 24면 지면보기
1943년 11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카이로 회담에 참석한 중국의 장제스 총통,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 처칠 수상(왼쪽부터). [사진 민음사]


장제스 평전

조너선 펜비 지음

노만수 옮김, 민음사

734쪽, 3만8000원




청(淸)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가 퇴위한 뒤 중화인민공화국의 ‘새로운 황제’ 마오쩌둥(毛澤東)이 등장할 때까지 중국 역사의 한복판을 질주한 인물이 있다. 1887년 시월의 마지막 날 저장(浙江)성에서 소금 장수의 아들로 태어난 장제스(蔣介石)가 주인공이다. 할아버지는 그에게 상서로운 시작이란 뜻의 루이위안(瑞元)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어머니는 그를 공명정대한 정의라는 의미의 중정(中正)이라 부르기를 좋아했다.



 쑨원(孫文)의 후계자를 자처했던 장제스는 쑨원의 사후 국민당을 장악하고 중국 통일에 나섰다. 자신의 이름과도 같이 대륙에 공명정대한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야망에 불탔다. 이를 위해 그는 바깥으론 일제(日帝)와 안으로는 공산당과 싸웠다. 그때 장제스가 채택한 전략이 양외선안내(攘外先安內)다. 바깥의 적을 물리치기(攘外)에 앞서 국내의 적부터 평정하겠다(安內)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침은 1936년 12월 장제스가 시안(西安)에서 부하 장쉐량(張學良)에게 납치돼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을 통한 항일 투쟁을 강요받으며 깨지고 만다. 이 책은 바로 장제스의 운명은 물론 중국의 명운, 나아가 세계의 역사까지 바꿔버리고만 시안 사변을 시작으로 유장하게 펼쳐진다.



 이때 기사회생한 마오쩌둥이 13년 후 장제스를 대륙에서 불과 160㎞ 떨어진 대만으로 밀어내고 대륙의 패권을 쥐게 되면서 장은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졌다. ‘포악한 독재자’ ‘무능력한 행정가’ ‘경제 문외한’ 등 갖은 부정적인 수식어가 따랐다. 그러나 그를 가장 가슴 아프게 한 건 ‘중국을 잃은 패배자’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영국의 동아시아 전문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 조너선 펜비는 그런 장제스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시도하고 있다. 장제스의 일기와 세계 각지의 연구 결과, 그리고 언론인 출신답게 당대의 언론 보도는 물론 꼼꼼한 현장 취재 등을 통해 강대한 중국 건설을 위해 한평생을 투쟁했던 그의 일생을 생동감 있게 그리고 있다.



 장제스와 마오쩌둥을 비교한 대목은 꽤 흥미롭다. 둘 다 끈기 있고 잔인하고 매우 야심찼으며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과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안고 살았다. 두 사람 모두 당과 국가, 군대를 자신의 통치 아래 두었으며 목표 추구를 위한 인명 희생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둘 다 부모의 강요로 어릴 적 결혼했다가 이내 본처를 버리고 정치적 야망에 따라 훨씬 더 어린 여자와 재혼했으며 고향 말투를 고치지 못했고 변비에 걸려 고생하기도 마찬가지였다. 돈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권력은 그들의 유일한 꿈이자 야망이었다.



 장제스에 대한 재평가는 최근 중국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과거 마오에 의해 ‘독재와 내전, 매국의 삼위일체’로 비난을 받았던 그가 ‘항일 애국자’나 ‘중국 통일의 선지자’ 등으로 복권되고 있다. 그의 업적으로는 북벌 단행과 항일전쟁 주도, 그리고 ‘하나의 중국’ 원칙 고수 등이 거론되기도 한다. 항일에서 정통성을 찾고 있으며 또 대만이 중국에서 떨어져 나갈 것을 걱정하는 중국 공산당의 속내가 작용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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