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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일제가 조선인 과학교육을 막은 까닭은

중앙일보 2014.12.13 00:22 종합 25면 지면보기
뉴턴의 무정한 세계

정인경 지음

돌베개, 280쪽

1만4000원




“조선 사람에게 무엇보다 먼저 과학을 주어야 하겠어요. 지식을 주어야 하겠어요.” 이광수의 『무정』(1918) 에 나온 개화론자 형식의 다짐이다. 식민지 조선의 많은 지식인들은 억압적 제국주의와 봉건의 잔재 아래 피폐해진 민중의 삶을 구할 방법을 과학에서 찾았다. 서양의 압도적 화력에 청나라가 무릎 꿇는 것을 보며 조선인들은 과학의 무서움을 절감했다.



 하지만 당시 조선 땅에 살던 누구도 과학이 대체 뭔지 몰랐으니, 그게 조선인의 딜레마였다. 과학은 서구가 아시아를 침략하는 과정에서 강제로 이식됐지만 단번에 문명을 깨칠 묘약은 될 수 없었다. 과학은 그렇게 조선인과의 첫 만남부터 어그러졌다.



 제국주의 수탈이 최고조에 달했던 1910년대를 서양인은 ‘벨 에포크(좋은 시절)’라 부른다. 우리에게 그 시기는 암울했던 일제 치하로 들어가는 지옥의 문간이었다. 그러니 애초부터 과학을 바라보는 서양과 우리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계곡이 놓여 있는 셈이다.



 『뉴턴의 무정한 세계』는 우리 시각에서 과학사를 재구성한다. 뉴턴·다윈·에디슨·아인슈타인 등 서양 근대과학에 혁명적인 발전을 이룬 인물의 성취와 근대 한국의 풍경을 포갠다. 이광수·염상섭·박태원·이상 등 당시 일제 치하를 견뎠던 지식인이 서양 문명을 바라보면서 느낀 자괴감 섞인 고백은 절절하다. 이와 함께 서양 근대과학이 이룬 주요 성취가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도 꼼꼼히 따져나간다. 저자는 “과학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유럽의 역사와 사회 속에서 생산된 지식”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한 서구 과학 문명은 차곡차곡 쌓아올린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는 사실을 세밀하게 논증한다. 수학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동료 과학자들의 지원으로 전자기장을 발견한 패러데이나 미국 산업의 발전을 등에 업은 에디슨의 성공담은 과학의 발전이 인프라에 얼마나 크게 의존하는지를 보여준다.



 일본의 과학 발전도 서구의 뒤를 좇아 재빨리 다진 토양 위에 가능했다. 아시아 제국을 열망한 일본은 군수 산업의 발전을 위해 과학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인적 네트워크가 부족했기에 아인슈타인·보어·하이젠베르크 등 당대 최고의 과학자를 일본으로 초대했다. 동시에 수많은 젊은 과학자를 세계의 유수한 연구기관에 보냈다. 이런 노력은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일본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 성과로 나타났다.



 반면 과학 문명을 꿈꾼 일제 조선인들의 노력은 처참히 짓밟혔다. 일제는 조선인의 과학기술교육과 고등교육을 철저히 억눌렀다. 일제 시대 과학교육에 힘쓴 김용관은 일제의 탄압 속에 옥살이를 한 뒤 쓸쓸한 여생을 보냈다. 1946년 일본물리학회 창립 당시 등록 회원수는 2293명인 반면, 해방 전 물리학 논문을 발표한 조선인은 네 명에 불과했다. 과학은 적어도 조선인에겐 무정한 존재였다.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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