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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서의 종횡고금 <30> "섣불리 새로 짓지 말고, 옛것을 …" 창조적 모방 설파한 『논어』

중앙일보 2014.12.13 00:21 종합 25면 지면보기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요즘 중년 이후 세대에는 고전 읽기가 붐이다. 인문학의 도래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이 들어 읽어야 체득하게 되는 고전의 깊은 맛 때문 아닌가 한다. 오늘도 지난 주에 이어 공자님의 말씀이다. 공자는 저술과 전통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그대로 서술하되 새로 짓지 않으며 옛 것을 믿고 좋아한다.(述而不作, 信而好古)”(『논어』 ‘술이(述而)’)



 공자의 이 간략한 언급이 이후 동아시아에선 마치 『성경』의 한 구절처럼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 말은 사상·역사 분야뿐 아니라 문학·예술에도 깊은 영향을 미쳐 새로운 창작보다 옛 것을 모방하는 풍조를 형성했다. 한(漢)나라 문인이자 사상가인 양웅(揚雄)은 공자의 이러한 취지를 적극적으로 실천한 사람이다. 그는 『논어』를 모방해 『법언(法言)』을 짓고 『주역』을 본 따 『태현(太玄)』을 짓는 등 모방의 대가로서, 이후 의고문학(擬古文學)의 길을 열어놓았다.



 당(唐)나라는 거지도 시를 지었다 할 정도로 시의 황금시대였다. 이러하니 이백·두보 등 그 엄청난 시의 유산을 눈앞에 둔 송(宋)나라의 시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이나 독창성을 표현하는 데 상당한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바로 블룸(Harold Bloom)이 말한 바, 훌륭한 선배 작가들로부터 비롯된 ‘영향의 불안’같은 것이었다. 송나라 시인들이 이러한 곤경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한 가지였는데 그것은 결국 창조적 모방이었다.



 송대 시단을 장악했던 강서시파(江西詩派)의 창립자 황정견(黃庭堅)은 이렇게 말했다. “그 뜻을 바꾸지 않고 말을 만드는 것을 환골법이라 하고, 그 뜻 속으로 몰래 들어가 그것을 묘사하는 것을 탈태법이라고 한다.(不易其意而造其語, 謂之換骨法. 窺入其意而形容之, 謂之奪胎法)”(석혜홍(釋惠洪), 『냉재야화(冷齋夜話)』) 환골탈태(換骨奪胎)란 원래 도교 용어로 수련을 통해 평범한 몸을 불로불사의 몸으로 변화시킨다는 의미를 지닌 말인데 황정견은 시학에서 선인들의 시상이나 시구를 세련되게 모방해 좋은 시를 짓자는 뜻으로 활용했다. 그러고 보니 엘리어트(T S Eliot)도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훌륭한 작가는 훔치고, 열등한 작가는 베낀다”고.



 우리는 창작·창조·창의 등 ‘창’자가 들어간 말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문학사에서도 이른바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은 고평(高評)하고 의고문학에 대해서는 폄하하곤 했다. 그러나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도 있듯 창작과 모방의 경계는 사실 애매하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초창기 우리 TV프로가 가까운 일본이나 미국의 그것을 거의 모방해 편성됐다는 것은 대부분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의 드라마가 이제는 전 세계에서 그 독특한 구성과 내용, 그리고 재미로 사랑받고 있는 것을 보면 모방의 과도적 유효성을 인정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괄목해야 할 것은 이른바 ‘짝퉁 대국’으로 전 세계에서 제품의 질과 수준을 무시당했던 중국의 무서운 부상이다. 당장 샤오미(小米)의 스마트폰이 삼성과 애플을 위협하고 있지 않은가. 섣부르게 창작하지 말라던 공자님의 말씀이 바야흐로 그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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