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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정말 이런 사회를 원하십니까?

중앙일보 2014.12.13 00:05 종합 32면 지면보기
김연수
소설가
손가락으로 글자를 짚어가며 하나하나 한글을 읽어가던 아이 시절부터 나는 신문을 읽었다. 대단한 천재여서가 아니라 읽는 법을 막 배워가던 그 무렵, 신문 지면이야말로 가장 손쉽게 글자들을 구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한자와 뜻 모를 단어들 때문에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면서 나는 글자를 읽었다. 매일 아침마다 새로운 글자들이 집까지 배달된 덕분에 나는 한글을 깨쳤다.



 비로소 내용을 읽기 시작한 건 맨 뒷장의 방송편성표부터다. 편성표에는 프로그램 방영순서뿐만 아니라 그날의 방영분이 “최재벌은 전여사에게 위자료를 받지 않고 이혼을 하겠다고 말을 하고 전여사는 풀이 죽어…”라거나 “혜빈은 세손에게 후궁의 몸에서 난 왕자 얘기나 측실 소생에 관한 얘기를 함부로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한편 김귀주 일파는…”처럼 요약됐다. 중요한 건 말하지 않아야만 한다는 이치를 그 말줄임표들로 터득했다고나 할까.



 그 다음에는 네칸만화를 읽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앞쪽에 실리는 만평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뒤쪽의 네칸만화는 대개 무력하나 냉소적인 소시민이 주인공으로 나와 한심한 세태나 정치상황에 직면하고는 한심해서 자빠지거나 비웃는 내용이라 어쩐지 마음이 갔다.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이던 1980년에는 나도 네칸만화를 하나 그린 적이 있다. 고바우 영감 비슷한 사람이 아이에게 한자를 가르치는데 다른 단어는 하나도 모르면서 ‘引上(인상)’은 금방 알아맞혀서 그 사람을 넘어지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나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겨가며 신문을 읽었다. 방송편성표에서 시작해서 네칸만화가 실린 사회면과 문화면을 거쳐 최종적으로 정치면에 이르는 순서다. 가로쓰기로 된 교과서로 배웠던 터라 내게는 그런 배치가 맞았다. 물론 편집 의도대로 읽으려면 그 반대 순서, 즉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펼쳐야 옳았지만. 그 덕분에 나와는 반대 순서로 신문을 읽으시던 아버지의 신문과 나의 신문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다.



 이따금 그렇게 신문을 왼쪽으로 넘기다보면 군데군데 잘려나간 부분들이 있었다. 스크랩하느라 아버지가 가위로 오린 기사들이 있던 곳이었다. 오렸으니 무슨 기사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건 지금도 궁금하다. 그때 아버지는 어떤 기사를 읽다가 무슨 까닭에 오려서 따로 간직할 마음까지 먹었던 것인지. 그렇게 나는 신문 스크랩의 세계에 입문해 1979년 늦가을부터 80년 초여름까지, 그 격변기의 기사들을 수집했고, 80년대 내내 그 기사들 사이에 숨은 행간을 해석하면서 보냈다.



 그 기사들을 스크랩하면서 알게 된 것, 그러니까 보이는 세계 이면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그 숨은 세계는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한다는 것, 그게 내 문학의 기원이었다. 애초부터 내게 이 세계란 누군가가 편집한 세계였다. 그게 누굴까 늘 궁금했는데 최근에야 나는 이런 세계를 편집한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 세계는 보인다. 마치 신문에서 오려낸 기사들을 따로 모아둔 스크랩북처럼. 아마도 나의 스크랩북과 아버지의 스크랩북은 꽤 달랐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이 세계는 저마다에게 하나씩이다.



 종이신문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니 기사를 가위로 오려서 따로 모아두는 사람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지면을 앞뒤로 넘겨가면서 읽어야지, 그날 따로 보관할 기사가 뭔지를 알 수 있을 텐데, 스마트폰은 내게 아무런 선택권도 주지 않고 속보, 혹은 단독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기사를 쏟아낸다. 그러면서 이 세계는 점점 몇 개의 세계로 단순해지고 있다. 포털 사이트의 기사로 보자면, 딱 두 개의 세계가 남은 것 같다. 어떤 사안에 찬성하는 세계와 반대하는 세계.



 최근 손석희 앵커의 인터뷰를 인상적으로 읽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예로 들며 가장 인도주의적인 사안에서조차 사회가 양극으로 갈라지는 현상을 지적했다. 정치 집단의 의도에 따라 편집된 세계를 사람들이 자신의 세계로 받아들이면서 사회는 양극으로 단순해지고 있다. 사회가 단순해졌다면, 질문도 단순해야만 하리라. 나는 정말 이런 사회를 원하는가? 가위를 들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신문을 넘겨가며 스크랩할 기사를 찾던 중학생처럼, 나는 이 양극화된 세계에 맞서 나만의 대답을 구하고 싶다.



김연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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