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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자문했다, 재미있는 영화를 찍고 있는지

중앙일보 2014.12.12 05:00
영화 ‘호빗: 다섯 군대 전투’스틸컷



[매거진M] 피터 잭슨 감독 & 필리파 보옌스 프로듀서 인터뷰

피터 잭슨 감독은 ‘호빗’ 3부작만 아니라 ‘반지의 제왕’ 3부작부터 모두 두 여성 필리파 보옌스, 프랜 월시(피터 잭슨의 아내이기도 하다)와 함께 시나리오를 썼다. 세 사람은 ‘호빗’ 3부작의 공동 프로듀서를 맡았다. 그중 피터 잭슨 감독과 필리파 보옌스를 런던에서 따로 만났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장장 17년의 대장정을 완수한 두 사람은 마치 빌보나 프로도가 자신의 모험 이야기를 들려주듯, 유쾌하게 질문에 답했다.



-17년에 걸친 여정을 마무리한 소감이 어떤가.

피터 잭슨 “(웃으며) 바닷가로 당장 휴가를 떠날 수 있다! 거대한 책임감을 내려놓은 기분이다. 영화감독이라면 누구나 이런 책임감을 느낄 거다. 다른 사람의 돈을 투자 받아 영화를 찍는 데 대한 책임감, 돈을 내고 영화를 보러온 관객들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책임감 말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반지의 제왕’ 3부작과 ‘호빗’ 3부작을 좋아해줘서 감독으로서 정말 복 받은 기분이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두 시리즈를 만들면서 어떤 전작들보다 더 큰 책임감을 느꼈을 것 같은데.

피터 잭슨 “두 시리즈만이 아니라 영화를 만들 때마다 처음 촬영을 시작하고 나흘 동안은 악몽을 꾼다. 난 침대에 누워 있는데, 스태프들이 나를 둘러싸고 내가 어떤 영화를 찍을 건지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꿈이다(웃음).”







-‘호빗’ 3부작의 촬영장이 그립지는 않나.

피터 잭슨 “촬영장의 유쾌한 분위기가 그립다. ‘호빗’ 3부작의 촬영이 300일 넘게 진행됐는데, 아침에 일어나 촬영장에 가는 게 즐거웠다. 운 좋게도 성격 좋은 배우들과 함께했고, 촬영장에서 전부 가족처럼 지냈다. 그러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지옥 같았을 것이다.”



-이처럼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판타지 블록버스터를 찍을 때, 가장 신경써야 하는 점은 뭔가.

피터 잭슨 “온갖 것에 신경 써야 하지만, 그날 그날 촬영이 끝날 때마다 내 자신에게 이렇게 꼭 물었다. 내가 지금 재미있는 영화를 찍고 있냐고. 그게 아니라면 다른 모든 노력은 물 거품이 된다. 결국 내 직업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뭔가를 만드는 것이니까.”



필리파 보옌스 “맞다. 이런 시리즈 영화를 만들 때는 유머, 액션, 음악, 미술, 시각효과 등등 신경 쓸 게 많다. 하지만 모든 요소가 결국 감독이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문제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걸 제대로 하기 위해 피터는 매일같이 오전 5시에 일어나서 촬영장에 나왔다.”



피터 잭슨 “너무 피곤해서 침대에 못 올라가고 숙소 바닥에 쓰러져 자곤 했다(웃음). 스스로 즐기지 않았다면 결코 이 시리즈를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17년 전으로 돌아가 두 시리즈를 다시 만든다면 뭘 바꾸고 싶은가.

피터 잭슨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거다. 난 과거를 후회하기보다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다.”



필리파 보옌스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새로운 것들을 터득해가며 두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렇게 새로이 시도하고 터득한 것 중에서 가장 큰 도전은 뭐였나.



피터 잭슨 “톨킨이 소설에 써놓은 대규모 전투 장면을 영상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여러 가상 캐릭터들을 특수효과로 만들어낼 때마다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했는데, 기술은 이야기가 필요로 하는 바를 따라오게 마련인 것 같다. 만약 내가 17년 전 ‘반지의 제왕’ 3부작 대신 ‘피시 앤 칩스’를 파는 음식점이 배경인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다면, 특수효과 기술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난 컴맹이다. 심지어 이메일도 못 보낸다. 컴퓨터를 잘 다루는 전문가들과 함께 일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원작의 순서대로 ‘호빗’ 3부작을 ‘반지의 제왕’ 3부작보다 먼저 만들고 싶진 않나.

필리파 보옌스 “그랬다면 완전히 다른 시리즈가 나왔을 것이다. 아마 지금보다 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피터 잭슨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개봉한 이후 태어난 세대는 ‘호빗’ 3부작을 접한 뒤 ‘반지의 제왕’ 3부작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느낌이 전혀 다를 것 같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찍을 때만 해도 그런 생각은 못했는데, ‘호빗’ 시리즈를 만들 때는 이야기의 전체 맥락을 보려 노력했다.”



-특히 나이 어린 관객들이 이 시리즈를 어떻게 받아들이길 바라나.

피터 잭슨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건, 어렸을 때 ‘킹콩’(1933, 메리안 C 쿠퍼·어니스트 B 쇼드색 감독)을 보고 영화감독이 되길 꿈꿨기 때문이다. 그런 영화가 나를 흥분시키고 영감을 줬듯, 내 영화가 누군가에게 그런 대상이 된다면 정말 뿌듯할 것 같다.”



-중간계의 두 시리즈를 만든 감독으로서 더 할 일은. 피터 잭슨 “‘호빗3’의 확장판 DVD를 만들어야지(웃음).

신나게!”



-시리즈의 캐릭터들 중 한 명의 매력이나 능력을 훔칠 수 있다면 누가 되고 싶나.

피터 잭슨 “호빗. 마술을 부릴 줄은 모르지만 예의 바르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물 아닌가. 난 그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외모도 비슷한 것 같고(웃음).”



필리파 보옌스 “난 엘프인 갈라드리엘이 되고 싶다(웃음).”



피터 잭슨 “그런 생각하지 말고 체육관에 가서 운동부터 하세요(웃음).”



필리파 보옌스 “하하하하.”





런던에서 만난 ‘호빗’ 3부작 배우들



‘호빗’ 3부작의 주요 출연진과 피터 잭슨 감독은 다 함께 그러기라도 한 듯 아주 귀여운 걸음걸이로 기자회견장에 입장했다. 서로의 답변에 농담을 덧붙이는 모습만 봐도 3부작을 함께 촬영하며 이들이 얼마나 끈끈한 동지애를 나눴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기자회견은 12월 2일 영국 런던의 클라리지 호텔에서 열렸다. 기자회견과 개별 인터뷰로 만난 배우들의 말을 여기 전한다.



마틴 프리먼 (빌보 역)

“‘호빗’ 3부작을 찍으면서 내가 빌보는 도대체 언제 화를 내냐고, 변화된 모습은 언제 보여줄 거냐고 물을 때마다 피터 잭슨은 ‘그럴 때가 곧 올 테니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웃음). ‘호빗3’에서 바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샤이어를 떠날 때만 해도 빌보는 가까운 친구, 연인도 없는 외로운 존재였다. 험난한 모험 끝에 ‘호빗3’의 빌보에게는 친구가 많이 생긴다. 용기도 늘었다. 나는 극 후반의 빌보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삶의 위험과 불확실성을 감수할 줄 아는 쪽이니까. 한 장면을 여러 테이크로 찍을 때조차 똑같은 연기를 하고 싶진 않다. 살아있는 연기를 하려다 보면 변화가 생기게 마련이다. 살아 있는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연기를 잘 보고 듣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 순간에 진실해지는 것, 그것이 연기의 전부라

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연기가 아니면 재미없다.”



리처드 아미티지 (소린 역)

“소린은 선한 인물이지만, 아버지로부터 왕관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왕관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에 부딪힌다. 그가 황금에 눈이 머는 것도 왕권을 찾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황금에 대한 집착이 그를 집어삼키려는 순간, 소린은 주변 인물들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그 목소리들이 계속 울리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 후 소린은 아조그와 마지막 결투를 벌인다. 그 장면을 찍을 때, 소린이 자신의 이야기를 잘 마무리 짓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쓰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영화에는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싸우는 것으로 나오는데, 촬영 당시에는 플라스틱 판에 물을 뿌려가며 촬영했다. 정말 미끄러워서 고생을 많이 했다. ‘호빗’ 3부작을 찍으며 그린 스크린 앞에서 CG로 만들어질 캐릭터들을 상상하며 연기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피터 잭슨이 그 캐릭터들에 대해 정말 상세하게 설명해줘서 도움이 많이 됐다. 그 설명에 따라 내 상상력을 펼치려 노력했는데, 특히 스마우그의 모습을 상상하며 연기한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안 맥켈런 (간 달프 역)

“‘반지의 제왕’ 3부작의 촬영을 마치면서 2000년에 간달프와 첫작별 인사를 했는데, 그 뒤 영화가 차례로 개봉하고 ‘호빗’ 3부작이 또 만들어지면서 계속 작별하고 있다(웃음). 두 시리즈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고전이 됐다. 그런 작품에서 중간계를 활보하는 마법사를 연기한 건 정말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중간계에 사는 인물을 연기한 기분이 어땠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중간계는 여전히 내 마음 속에 살아 있다. 그 기분은 출연한 배우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카메라 뒤에서 배우들을 바라본 피터 잭슨도 모를 거다.”



루크 에반스 (바르 드 역)

“‘호빗’ 시리즈의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만 해도, 바르드는 영웅이 아니라 그저 뱃사람이자 밀수꾼이자 아내 없이 세 아이를 키우는 아빠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찍는 동안에는 호빗이나 난쟁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처럼 몇 시간씩 특수분장을 안 해도 돼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웃음). 이 시리즈의 주요 등장인물 중 인간은 나 혼자라서 특별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어제 ‘호빗3’ 시사회에서 바르드가 스마우그에게 활 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멋져 보이더라. 사실 그건 3년 전 뉴질랜드 촬영장에서 내가 처음으로 연기한 장면이었는데, 이제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바르드는 호수 마을의 새로운 왕이 되는 것보다 자녀들을 돌보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그는 운명적으로 사람들에게 새로운 해답을 주는 지도자가 된다.”



에반 젤린 릴리 (타우리엘 역)

“타우리엘이 겉으로는 두려움이 없는 인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그 반대다.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데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사랑에 대해서도 그렇다.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는 걸 두려워하던 타우리엘은 스란두일에게 어떤 자극을 받고서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리 페이스 (스란두일 역)

“스란두일은 오로지 자신의 어둠숲 왕국을 지키는 것만 신경 쓰는 이기적인 인물이지만 악당은 아니다. 위험하고 예측할 수 없으며, 세상에 자신을 내보이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다섯 군대 전투 장면에서 그는 결국 세상에 자신을 드러낸다. 그 부분에서 그가 왜 그렇게 냉혈한이 됐는지 알 수 있다.”



올랜도 블 룸 (레골라스 역)

“‘반지의 제왕’ 3부작에 캐스팅됐을 때 스물한 살이었는데, ‘호빗3’이 개봉하는 지금은 서른일곱 살이 됐다. 두 시리즈는 내게 아주 특별한 작품일 수밖에 없다. 특히 ‘반지의 제왕’ 3부작의 프리퀄인 ‘호빗’ 3부작에도 출연하게 되면서 앞서 레골라스를 연기하며 느꼈던, 캐릭터에 대한 궁금

증을 풀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기뻤다.”



런던=장성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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