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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따뜻한 로봇, 우리가 만들었죠

중앙일보 2014.12.12 05:00
디즈니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 (원제 Big Hero 6, 2015년 1월 22일 개봉, 돈 홀·크리스 윌리엄스 감독)는 11월 초 미국 개봉에서 첫 주말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터스텔라’(11월 6일 개봉)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다. 개봉 한 달 반 만에 북미 지역 흥행 수입이 1억7754만 달러를 넘어섰다. 주인공은 열네 살 천재 소년 히로(라이언 포터·목소리 출연). 사랑하는 형을 잃고 외로움에 빠져 있던 히로는 형이 남긴 헬스케어 로봇 베이맥스(스콧 애짓·목소리 출연)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위로를 얻고, 이들과 힘을 합쳐 형의 죽음 뒤에 감춰진 배후를 찾기 위한 모험에 나선다.


[매거진M] ‘빅 히어로’로 애니어워즈 후보 오른 한국인 아티스트 김상진·김시윤

친구들의 도움 속에 외톨이 반항아에서 영웅으로 성장해가는 주인공 히로는 물론, 거부할 수 없는 귀여움을 지닌 로봇 베이맥스, 각자 개성이 톡톡 튀는 친구들 캐릭터의 매력이 백미다. 특히 왈가닥 고고, 겁쟁이 와사비, 노랑 공주 허니 레몬 등 히로의 친구들이 각자의 개성에 따라 알록달록한 수트를 입고 활약하는 모습은 할리우드 수퍼 히어로물 못지 않은 재미도 선사한다. 이 애니메이션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 디자인 작업을 주도한 한국계 아티스트 두 사람을 만났다. 캐릭터 디자인 수퍼바이저 김상진(55), 리드 캐릭터 디자이너 김시윤(31). 이 두 사람은 ‘빅 히어로’로 내년 1월 열리는 제42회 애니어워즈의 최우수 캐릭터 디자인 부문 후보로도 지명됐다. 애니메이션계의 아카데미라 불리는 상이다.



‘빅 히어로’로 애니어워즈 후보 오른 한국인 아티스트 김시윤




-‘빅 히어로’에서 각자가 맡은 역할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김시윤(이하 시윤) 각 캐릭터의 컨셉트 디자인과 전체적인 스타일을 담당했다. ‘라푼젤’(2011, 네이슨 그레노·바이론 하워드 감독)에서도 캐릭터 디자이너로 일한 적이 있지만, 이번엔 리드 캐릭터 디자이너라는 큰 책임을 지게 돼 적잖은 부담도 있었다. 서로 힘을 합쳐 일하는 분위기, 든든히 뒤를 받쳐주는 팀이 있어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물을 내는 게 가능했다.



김상진(이하 상진) 나중에 투입돼서 캐릭터 디자인과 컴퓨터그래픽(CG) 파트를 연결하는 작업을 총괄했다. 중간에 스토리가 조금씩 바뀌면서 캐릭터들의 모습도 좀 달라졌다. 그때마다 각 캐릭터들이 처음에 갖고 있던 매력을 잃지 않도록 유지하면서 작업을 이어나가는 과정이 힘들긴 했다. 결과적으로 참 굉장한 작업을 마쳤다는 뿌듯함이 있다.



-캐릭터 디자인 작업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시윤 좋은 캐릭터 디자인은 결국 작품이 지닌 이야기와 감독의 비전을 잘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토리보드를 보면서 늘 감독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있을까 상상하며 같은 방향을 향해 가고자 노력했다. 캐릭터의 외모를 만들기 위해 디즈니와 마블, 일본 애니메이션의 스타일을 적절히 아우르면서도 독창적인 디자인을 하는 데 공들였다.



상진 2D 드로잉을 CG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디자이너들이 만든 캐릭터의 장점을 그대로 옮겨내는 데 힘을 많이 쏟았다. 아주 복잡한 배경과 지극히 단순한 캐릭터의 대비가 감독의 의도대로 잘 드러날 수 있게 표현하는 데도 많이 신경 썼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로봇 베이맥스 캐릭터가 압권인데.



시윤 감독과 함께 카네기 멜론 대학 연구소를 방문해 조사를 많이 했다. 부풀어 오르는 로봇을 거기서 처음 보고 많은 영감을 얻었다. 베이맥스는 헬스케어 로봇이기 때문에 무섭거나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고 디자인했다. 전체적인 모습은 전기 밥솥도 참고했다. 움직임은 펭귄이나 기저귀를 찬 갓난 아기의 모습에서 따 왔다.



상진 목탁이나 일본식 종도 참조했다. 사실 단순한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다. 애플 제품들의 디자인을 봐도 그렇지 않나. 어떤 면에서는 단순함이야말로 궁극의 정교함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베이맥스는 정말 잘 만들어진 캐릭터라고 자부한다. 골격이나 질감 부분에선 캐릭터 디자인 다음 단계인 리깅(Rigging, 캐릭터가 적절히 움직일 수 있도록 골격 구조를 만들어 넣는 작업), 서피싱(Surfacing, 캐릭터의 피부나 머리칼 등의 텍스처와 느낌을 처음 디자인대로 3D로 구현해내는 작업) 파트의 아티스트들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준 덕에 캐릭터의 장점이 한층 살아날 수 있었다.



-다양한 피부색을 지닌 캐릭터들도 인상적이다.



시윤 내가 ‘빅 히어로’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몰입해서 작업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나에게도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이 많다. 이 작품을 보는 관객들도, 더 나아가 이 세상도 인종에 상관 없이 모두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특히 고고 캐릭터는 내가 처음부터 한국인으로 설정해서 디자인했다. 한국인으로서 이 작품을 통해 아시아의 문화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도 자랑스러웠다.



상진 진작부터 다양성의 메시지를 품고 있는 작품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이번에 그 바람을 상당 부분 이룬 것 같아 아주 즐거웠다. 캐릭터뿐 아니라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을 샌프란소쿄(샌프란시스코+도쿄)라는 가상 도시로 설정한 것 역시 전 세계가 하나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은 것이다.



‘빅 히어로’로 애니어워즈 후보 오른 한국인 아티스트 김상진




-한국의 인기 스타인 다니엘 헤니가 히로의 형 역할을 맡아 목소리 연기를 했는데.



시윤 아주 자랑스러웠다. 내 아내가 다니엘 헤니의 열혈 팬이라 다 함께 사진을 찍는 등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상진 다니엘 헤니의 목소리 연기는 디즈니·픽사를 이끄는 존 래스터가 직접 나서서 극찬할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를 비롯해 모든 배우들이 한두 줄의 짧은 대사를 위해 수십 번 연습을 하고 녹음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존경스러웠다.



-중책을 맡은 아티스트로서 전작 ‘겨울왕국’(1월 16일 개봉, 크리스 벅·제니퍼 리 감독)으로 디즈니가 거둔 엄청난 성공이 부담되진 않았나.



시윤 오히려 자극이 됐다. ‘겨울왕국’의 성공이 우리의 기준을 한껏 높여줬다. 디즈니의 아티스트 모두 ‘겨울왕국’보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상진 ‘겨울왕국’의 큰 성공을 의식하지 않을 순 없었겠지만, 작품 자체가 많이 다르다. 그저 최고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했던 것 같다. 디즈니가 꼭 ‘겨울왕국’ 같은 스타일의 작품만이 아니라 ‘주먹왕 랄프’(2012, 리치 무어 감독)나 ‘빅 히어로’처럼 여러 가지 다양한 스타일과 이야기를 시도하는 곳이란 점이 자랑스럽다. ‘빅 히어로’의 흥행은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라 신경을 끄려 한다.



-다른 대작 애니메이션과 비교해 ‘빅 히어로’만이 가진 경쟁력이 뭐라고 보나.



시윤 이 작품의 핵심은 형을 잃은 소년이 친구들을 통해 그 아픔을 치유하고 극복해나가는 과정이다. 나도 최근에 형처럼 따르던 친구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는 일을 겪었다. 그 슬픔을 작품에 녹이기도 했고, 반대로 작품을 통해 내가 위로를 받기도 했다. 아마도 관객들 모두가 ‘빅 히어로’를 보며 한 번씩은 ‘나도 저런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었지’ ‘나에게도 저런 좋은 친구들이 있었지’ 하는 생각과 함께 가슴 따뜻한 공감대를 느끼리라 생각한다.



상진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빅 액션 어드벤처 코미디’ 장르라고들 이야기하는데, 사실 ‘빅 히어로’는 이를 넘어서는 굉장한 드라마가 있는 작품이다. 아주 웃기기도 하면서 남자인 나조차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힘 또한 가지고 있다. 감성적으로 관객들과 소통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아주 훌륭하다.







LA중앙일보 이경민 기자 , 사진=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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