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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로 가야 할 정부지원금, 좀비기업들이 가로채 연명

중앙일보 2014.12.12 01:28 종합 5면 지면보기
수도권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를 지은 건설업체 A사. 그런데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분양가가 30% 떨어지자 입주자들이 계약해지를 요청하면서 미분양이 속출했다. 하청업체들도 공사대금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러자 정책금융기관을 찾아가 보증을 받아냈다. 이 회사가 쓰러지면 하청업체까지 연쇄부도 사태를 맞을 게 우려되자 정책금융기관이 울며 겨자 먹기로 살려줬다. 그 덕에 시중은행 빚 1000억원을 가까스로 막았다. 그러나 여전히 생사는 불투명하다. 제지업을 하는 중소기업 B사도 정부의 정책자금을 노려 온갖 민원을 동원하고 있다. 부채비율이 400%나 되고 기술력이 낮아 문을 닫아야 할 처지이지만 정부 지원만 받으면 그럭저럭 꾸려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력 생존 힘든 한계기업 정리를"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을 지원해야 하는 정책금융기관과 시중은행의 재원이 ‘좀비기업’에 묶여 돌지 못하고 있다. 기술보증기금·신용보증기금은 기술력이나 성장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는 담보가 부족하고 신용이 낮아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창업기업들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정책금융기관이다. 그런데 문을 닫아야 할 좀비기업들이 몰려 들면서 벤처기업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 한계에 이를수록 집요하게 달려든다. 신보에서 보증이 거절됐는데 다시 심사해 달라며 접수한 민원은 2012년 42건에서 지난해 62건으로 늘었다. 올해도 11월 기준 64건이나 된다. 기보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형 국책은행인 산업은행도 좀비기업 지원으로 허리가 휜다. 산은은 지난해 퇴출 위기에 몰린 STX 등을 지원하느라 1조4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정책금융기관 관계자는 “정부도 재원이 한정돼 있는 만큼 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들을 지원해야 한다”며 “한계기업들이 정리돼야 새로운 기업을 발굴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돈이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가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력으론 생존이 어려운 좀비기업으로 돈이 흐르면 경제의 역동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대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좀비기업의 자산 비중이 10%포인트 높아질수록 정상 기업의 고용증가율과 투자율이 각각 0.53%포인트, 0.18%포인트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이같이 진작에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좀비기업의 자산은 지난해 전체 기업 자산 대비 15.6%에 달한다. 이들 기업의 자산 비중을 5.6%로 10%포인트 낮춘다면 정상 기업의 고용을 11만 명 이상 늘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 위원은 “금융 당국은 한계기업 선별 기준을 강화하고, 벤처캐피털과 사모투자펀드(PEF) 시장을 활성화해 한계기업 정리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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