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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반도체가 있다

중앙일보 2014.12.12 00:29 경제 1면 지면보기
영동고속도로 호법 분기점을 지나 강원도 방면으로 달리다 보면 도로 왼편에 거대한 공사 현장이 나타난다. 타워 크레인 수십 대가 곳곳에서 올라가고 밤에도 낮처럼 불이 환하다. 올 상반기부터 시작한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D램 반도체 공장 신축공사 현장이다. 연면적 6만6000여㎡(약 2만 평) 규모의 이 공장은 현재 공정 진척률이 50%로, 내년 하반기에 완공될 예정이다. 한국 제조업계의 맏형 격인 삼성전자조차 스마트폰 실적이 급락하면서 온 나라가 경기 침체의 몸살을 겪고 있지만 적어도 이곳만큼은 불황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새로운 공장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기존 반도체 공장도 24시간, 365일 100% 가동되면서 SK하이닉스 주변 식당 등 상가들에는 밤늦게까지 손님들로 가득하다.


[이슈추적] 휴대폰·조선 위기 속 수출한국 버팀목
올 600억 달러 신기록 예상
2년 연속 전체 품목 중 1위
디지털기기 붐으로 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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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체 산업이 한국의 수출 1위 자리를 다시 굳히고 있다. 올 들어 11월까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의 반도체 수출 실적은 568억8300만 달러로, 전체 수출품목 중 10.9%를 차지하며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직 12월 한 달이 남긴 했지만 2위인 석유제품의 수출액(481억6100만 달러)과는 차이가 커 뒤집어질 가능성이 작다. 특히 연말까지 12개월치 수출액은 총 600억 달러를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돼 사상 최대의 반도체 수출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반도체 산업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수출 1위를 기록하게 된다.



 사실 반도체 산업은 그간 한국의 든든한 ‘달러 박스’였다. 반도체로 벌어들인 외화가 가전과 휴대전화, 통신장비 등 관련 산업을 일으키는 ‘밑천’이 됐다. 더구나 1992년부터 2007년까지 16년 동안은 부동(不動)의 수출품목 1위를 지켜왔다. 하지만 이듬해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8년 반도체 수출은 327억9300만 달러로, 전체 품목 중 7.8%를 차지하며 6위로 뚝 떨어졌다. 반도체는 2년 뒤인 2010년 조선과 자동차 등을 누르고 반짝 1위에 오르긴 했지만 이듬해부터 다시 2, 3위로 물러앉아야 했다. 업체 간 설비투자 경쟁이 과열된 데다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세계 경제불황으로 반도체 경기도 동반 하락한 탓이었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다시 살아난 것은 2년 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반도체기업 간 피 말리는 ‘치킨게임’을 딛고 일어선 덕분이다. 삼성전자는 마이크론과 NEC 등 미국과 일본의 선진 업체를 90년대부터 일찌감치 제치고 메모리반도체 산업의 1위가 됐다. SK하이닉스도 2000년대 후반 마지막 치킨게임에서 승자 편에 서게 돼 확고한 세계 2위에 올라섰다. 여기에 2010년 전후부터 불기 시작한 스마트폰 등 디지털기기 붐으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한 것도 결정적 도움이 됐다. 당분간 업계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적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 반도체 미세공정 기술이 후발주자들이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앞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최근 중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올 6월 ‘국가 IC산업 발전 추진 지침’을 공표하고, 내년 중국 반도체 산업의 매출 목표를 3500억 위안(약 62조3000억원)으로 잡았다. 또 총 1200억 위안 규모의 ‘국가산업투자기금’을 조성하는 등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더군다나 중국은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취약한 비메모리 분야에서 최근 한국의 기술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KAIST 경종민(전기전자공학) 교수는 “한국 기업들이 비메모리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나마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도 옛날 얘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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