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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 줄다리기? 세계선수권도 열려요

중앙일보 2014.12.12 00:17 종합 28면 지면보기
줄다리기 고수들은 오만상을 찌푸릴 힘조차도 아껴 줄을 당기는 데 쓴다고 한다. 지난 9일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아시아 교류전에서 한국 대표로 출전한 부안군 줄다리기연합회 선수들이 입을 꾹 다문 채 힘껏 줄을 당기고 있다. [사진 전국줄다리기연합회]


입을 꾹 다문 표정이 비장했다. 한국 줄다리기 국가대표로 출전한 전북 부안군 줄다리기연합회 남자 선수 8명이 나란히 섰다. 하얀 파우더를 바른 손으로 거칠고 굵은 줄을 꽉 잡았다. 맨 뒤에 선 선수가 줄을 어깨에 메고 자리를 잡았다.

생활체육 스마일 100 (13) 국제적 스포츠 줄다리기
80개국 즐겨 … 한때 올림픽 종목
국내 클럽 280개, 회원 1만1000명
한 팀 8명, 체중 합계로 체급 정해



 줄 가운데 선 심판이 “고!”를 외쳤다. 강풍에 누워버린 벼처럼 선수들이 일제히 몸을 뒤로 젖혔다. 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줄 하나를 놓고 그들은 사력을 다했다. 어떤 스포츠보다 치열했다. 줄다리기의 영어 표기(Tug of War)에도 ‘전쟁’이 들어 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하던 줄다리기가 스포츠로 정착하고 있다. 국민생활체육 전국줄다리기연합회에 등록된 클럽만 280개로 줄다리기 인구는 1만1000여 명에 달한다. 줄만 있으면 10대 청소년부터 60대 중년까지 실내외 어디서나 즐길 수 있다. 전국대회도 연간 4개 열린다.



줄다리기는 맨손으로 한다. 대만 선수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혀 두툼하다. [사진 전국줄다리기연합회]
 원래 줄다리기는 올림픽 종목이었다. 1900년 제2회 파리(프랑스) 대회부터 1920년 제7회 앤트워프(벨기에) 대회까지 정식 종목이었으나 이후 빠졌다. 현재는 세계 80개국이 국제줄다리기연맹(Tug of War International Federation)에 가입되어 있다. 이 중 25개국이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간다. 아시아에서는 21개국이 회원국이다. 지난 8~9일 타이페이에서 열린 아시아 교류전에는 한국을 비롯해 대만·마카오·일본·중국·태국·홍콩 등 7개국 남녀 선수 119명이 참가했다.



 스포츠 줄다리기는 ‘체급 경기’다. 개인의 몸무게가 아니라 출전 선수 8명의 체중을 합친 체급을 따진다. 이번 대회에는 남자 600㎏, 여자 520㎏급 경기가 열렸다. 경기 전 체중계에 한 명씩 올라가 몸무게를 잴 만큼 계체량이 엄격하다.



 3판2승제로 치러지는 줄다리기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은 맨손 사용이다. 장갑을 끼면 실격이다. 부상 때문에 붕대를 감아야 하는 선수는 주최측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손바닥이 까진 한 참가자는 붕대에 허가 도장을 받은 뒤에야 줄을 잡을 수 있었다. 맨손으로 거친 줄을 잡다 보니 굳은살이 생겨 손가락이 일반인보다 훨씬 굵다. 손바닥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딱하다. 6년째 줄다리기 선수로 뛰고 있는 오승헌(39)씨는 “굳은살이 더 박혀야 한다. 올해 세계 1등을 한 대만 징메이 여고생들은 손목까지 굳은살이 박혔더라”고 전했다.



 줄다리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힘 센 사람이 막 끌어당긴다고 이기는 경기가 아니다. 하체와 허리를 단련시켜 힘을 모은 뒤 순간적으로 폭발시켜야 한다. 또 두 팀의 파워와 기술이 막상막하라면 지구력에서 승부가 난다. 8명 모두 동시에 힘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에 팀워크도 중요하다. 가장 뒤에 서는 ‘앵커(anchor)’가 팀의 에이스다. 줄의 좌우 방향을 가늠하고 최후까지 버티는 역할을 맡는다. 힘도 좋고 경험이 많아야 한다. 남자 팀 앵커 임재훈(41)씨는 “힘든 역할이지만 내가 무너지면 팀이 진다는 생각을 한다. 이를 악물고 버티게 된다”고 말했다.



 줄다리기에 대한 이들의 열정은 대단했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자비를 들여 대만에 왔다. 한국 여자팀은 동메달을 땄다. 지난 7월 팀을 창단한 후 5개월 만에 이룬 쾌거다. 주부 백정림(45)씨는 “줄다리기는 내 생애 처음으로 제대로 하는 운동이다.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아도 땀이 나지 않는데, 줄다리기는 30초만 해도 땀이 난다”며 “처음에는 힘을 줄에 제대로 싣지 못해 계속 넘어졌다. 기술이 향상되면서 줄을 잘 끌게 됐다”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임씨는 아이들에게도 줄다리기를 시킬 생각이다. 그는 “줄다리기는 끈기와 협동심을 기를 수 있어 아이들에게 좋은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생활체육회는 줄다리기를 전통스포츠 보급 사업으로 지정해 지원하고 있다. 덕분에 성인들의 참여율은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학교에서는 ‘운동회 줄다리기’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허광평 전국줄다리기연합회 사무처장은 “스포츠 줄다리기 인구 200만 명인 대만은 2005년부터 초·중·고에서 줄다리기를 권장하고 있다. 학교에 줄다리기를 보급해 아이들의 체력을 끌어올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타이페이=박소영 기자  



◆스마일 100=‘스포츠를 마음껏 일상적으로 100세까지 즐기자’는 캠페인. 중앙일보와 국민생활체육회가 진행하는 생활 밀착형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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