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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카트에 탄 장그래의 운명

중앙일보 2014.12.12 00:05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규연
논설위원
가끔 찾는 할인점이 있습니다. 카트에 물건을 싣고 카운터로 가면 아주머니들이 계산해 주는, 전형적인 대형마트입니다. 최근 그곳 아주머니들의 처우를 알아봤습니다. 올해 최저임금 기준(시간당 5210원)을 약간 넘는 5300원이더군요. 6~7시간씩 일하니까, 하루에 3만5000원씩, 최대 월 80만원이었습니다. 쉬는 시간은 하루에 20분 정도….



 이런 관심이 생긴 것은 영화 ‘카트’ 때문이었습니다. 사회성 짙은 영화의 관객 수가 개봉 한 달 만에 8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한 대형마트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집단해고 사태를 소재로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고졸 계약직 사원 장그래의 고군분투기를 다룬 ‘미생’이 국민드라마로 등극했습니다. 종영을 3~4회 앞두고 장그래의 운명을 놓고 사이버 토론이 한창입니다. 정규직이 될까요. 그냥 잘리게 될까요. 아니면 제3의 선택을 할까요.



 ‘카트에 탄 장그래’ 신드롬의 토양은 비정규직 확산입니다. 그 규모가 600만 명, 많게는 8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이런 드라마나 영화가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만 합니다. 여야, 보혁 모두 비정규직 확산을 우려합니다. 하지만 해법은 제각각입니다. 크게 보면 고용의 유연성을 높이자는 주장과, 비정규직을 더 보호하자는 주장이 충돌합니다. 정말 ‘고용 형태’가 문제일까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법을 바꿨지만, 결과는 지금 보는 바와 같습니다.



 최근 대통령과 경제부총리는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성공사례로 독일을 언급했습니다. 독일은 고용의 유연성을 높여 8년 동안 100만 개가량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독일의 고용 형태를 따라 하면 우리도 그렇게 될까요? 단순한 ‘경로 의존성’은 아닐까요?



 6년 전에 유럽을 방문했다가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독일 분원에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세 가지 낯선 경험을 했습니다. 첫째 낯섦은 ‘두더지 굴’이었습니다. 당시 분원에는 공사가 중단된 빈터가 있었습니다. 땅을 파다 ‘임신’한 두더지가 사는 굴이 발견됐는데 ‘출산’후 ‘산후조리’까지 마치는 기간(6개월)까지 공사 중지명령을 받았다는 겁니다.



 둘째 낯섦은 학력 대우였습니다. 현지 근로자 중 나이가 같은 고졸, 대졸이 있었습니다. 대졸은 명문 하이델베르크대학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고졸이 대졸보다 10% 정도 더 받고 있었습니다. 사회경력이 더 길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겁니다. 마지막 낯섦은 정규직과 파트파임의 임금 차이였습니다. 파트타임이 정규직의 85% 정도를 받고 있었습니다. 대통령과 부총리가 말하는 독일에 이런 독일도 포함돼 있겠지요?



 저는 ‘카트 탄 장그래’가 단순히 고용 형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사정에 따라 파트타임을 더 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차별입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50%밖에 못 받습니다. 유럽은 정규직의 80% 정도를 받습니다. 노동개혁의 실패사례로 꼽히는 일본도 60%대는 받습니다. 우리는 이대로 두면 조만간 50% 밑으로 떨어질지 모릅니다. 그러니 차이가 차별을 낳고, 차별이 분노를 낳는 겁니다.



 과도한 이기심과 경쟁심이 판을 칩니다. 잘나가는 대기업·공기업·금융기관의 대졸 정규직 초임은 4000만원대입니다. 기업은 제대로 써보지 않고 이 같은 임금을 책정합니다. 하청업체나 비정규직, 고졸은 눈 밖입니다. 경영자는 기업의 이미지만 생각하고, 노조는 자신들만 잘 먹으면 그만입니다.



 정부가 곧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놓을 모양입니다. 비정규직 보호나 고용유연성만으로는 지금의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임금시장에 천당과 지옥이 있는 한, ‘카트 탄 장그래’의 운명은 뻔합니다. 학력보다 능력, 직급보다 성과가 더 인정받지 않는 한, 임금체계를 확 바꾸지 않는 한, 상황은 더 나쁜 쪽으로 흐를 겁니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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