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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2014년판 우상과 이성

중앙일보 2014.12.12 00:03 종합 35면 지면보기
1980년 『우상과 이성』 수정증보판을 내면서 리영희 선생은 이렇게 썼다. “나의 글들이 이 사회에서 하루속히, 읽힐 필요가 없는 구문이거나 넋두리가 되어버리면 싶은 마음 간절하다.”



 이 세상에 가면을 쓴 많은 우상들이 사라지고 합리적인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길 염원하는 표현이었다. 선생은 바라던 세상을 보지 못하고 떠났고, 그 글이 씌어진 지 35년째가 되는 지금도 우리는 곳곳에서 수많은 우상들을 목격한다. 오늘 이 사회를 헛되이 달구고 있는 ‘땅콩 회항’ 사건이나 ‘십상시’ 사건도 여전히 볼썽사납게 버티고 선 우상들에 우리가 딴죽 걸려 넘어진 것과 다름 아니다.



 ‘기업=오너’라는 우상과 ‘국가=대통령’이라는 우상이 그것이다. ‘회사의 주인은 오너 일가’라는 기업문화가 없었다면 딸 부사장이 그런 기고만장을 부릴 수 있었을까. 그의 말 한마디에 기장이 비행기를 돌릴 수 있었을까. 직급 더 높은 월급쟁이 사장이 그럴 수 있었을까. 요금 다 내고 탄 승객들의 편의는 나 몰라라 사무장을 끌어내릴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국가의 주인은 대통령’이라는 인식이 없었다면 어떻게 ‘문고리 권력’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었을까. 대통령의 전·현직 비서들이 주인의 눈에 더 들고자 서로 물어뜯기를 할 수 있었을까. 주인집에서 만들어진 문서가 분명한데도 당연히 할 일을 한 기자들을 닥치는 대로 고소할 수 있었을까. 7년 야인이라는 사람이 실세보다 더 실세처럼 검찰에 출두할 수 있었을까.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모두 머슴들이 자기를 부리는 상머슴을 주인으로 착각한 데서 빚어지는 우상들이다.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듯, 기업의 주인은 소비자여야 한다는 진리가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게 그래서다. 권력 쥔 자만 두려워하고 그 권력을 빌려준 진짜 주인은 우습게 보기 때문이다. 봉급 주는 자만 겁내고 그 돈을 마련해주는 진짜 주인은 봉으로 보는 까닭이다.



 우상은 결코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다.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 경제학자 조지 스티글러의 패러디가 그 얘기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타락할 뿐 아니라 터무니없이 연장된다.” 그 꼴 보지 않으려면 너와 나, 우리가 나서야 한다. 쉽게 잠드는 이성의 눈을 흔들어 깨워 사회 곳곳에 서있는 우상들을 깨뜨려야 한다. 리영희 선생 때처럼 이런 글 쓴다고 끌려가서 쥐어터지는 시대도 아니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훈범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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