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장에서] 벼랑에 몰린 경남FC, 무기력한 프로연맹

중앙일보 2014.12.10 00:17 종합 28면 지면보기
송지훈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
한국 축구는 ‘시·도민구단’이라는 화두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프로팀 수를 늘리는 손쉬운 방법’으로 각광받으며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시·도민구단들이 근래 들어 일부 구단주의 정치적 행보를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프로구단의 관리·감독 책임을 지는 한국프로축구연맹(총재 권오갑)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화를 키웠다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정치인 구단주들 K리그 흔들기
위기관리 시스템 없어 속수무책

 프로축구는 최근 정치인 출신 지방자치단체장인 이재명(50) 성남시장과 홍준표(60) 경남도지사에게 잇달아 강펀치를 맞았다. 성남 FC 구단주 이 시장이 심판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판정에 대한 부정적 언급을 금지한 규약의 위법성을 함께 지적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뒤이어 경남 FC 구단주 홍 도지사가 “한 해 130억원을 쏟아부은 경남 구단이 2부리그로 떨어진 건 문제가 있다”면서 “구단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하고, 결과에 따라 해체까지도 고려하겠다”며 가세했다.



 프로연맹은 속수무책이다. 이재명 시장을 상대로는 솜방망이 처벌로 화를 자초했다. “상벌위원회에 회부해 징계 절차를 논의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더니 ‘경고’로 징계 수위를 크게 낮췄다. ‘이 시장이 성남과 축구계를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게 이유다. “앞으로 다른 사람이 똑같은 내용의 발언을 해도 경고에 그치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조남돈 프로연맹 상벌위원장은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이 시장은 상벌위원회 결과가 나오자마자 “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해 경징계로 화해의 손을 내밀려던 연맹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프로연맹은 홍준표 도지사의 ‘팀 해체 압박’에 대해서는 아예 대응을 포기한 모양새다. K리그 소속 구단의 파산·해체 등 비상 상황에 대비한 위기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놓지 않은 게 원인이다. 경남을 비롯해 인천·강원 등 시·도민구단들이 재정 악화로 선수들의 연봉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는 등 이상 징후가 감지됐지만, 연맹은 대비책을 만들지 않았다. 유럽 리그에서는 재정 안정성이 구단을 평가하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다. 선수들의 연봉을 체불한 팀이 하부리그로 강등되거나 승점이 깎이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시·도민구단이 정치인 구단주의 입김에 휘둘리는 프로축구의 현 상황은 울리 슈틸리케(60) 축구대표팀 감독에게도 근심거리였다. 9일 K리그 클래식 감독들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한 슈틸리케 감독은 “스포츠에 정치가 개입되는 건 안타까운 상황이다. 선수와 팀보다 정치가 우선시 되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용수(41) 서울 감독도 “최근 들어 축구에 정치가 너무 깊이 개입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입을 닫아버린 프로연맹을 대신해 축구대표팀의 외국인 지도자와 K리그 감독들이 목소리를 냈다.



 이번 시·도민구단 논란의 1차 책임은 스포츠를 통해 정치적 리더십을 과시하려는 정치인 구단주들에게 있다. 하지만 프로연맹의 주먹구구식 대응이 화를 키웠다는 지적 또한 매섭다. 프로연맹이 현실을 타개할 능력과 의지도, 미래를 향한 비전도 보여주지 못하면서 K리그는 점점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송지훈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