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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 깨 봅시다" 과학기술계 첫발 뗐다

중앙일보 2014.12.08 00:16 경제 6면 지면보기
한선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장은 5일 .과학기술계의 유리천장을 깨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WISET]
“왜 여성 과학기술인이 적느냐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과학계는 10년째 ‘과학기술 특성상 (여성)인력이 부족하다’는 답변뿐이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WISET, 성별 격차 개선 간담회
"분야 특수해 채용 힘들다, 말 안 돼
여성보직자보다 연구책임자 늘려야"

 5일 오후 천안 상록리조트. 여성공학기술인 대상을 수상한 경험이 있는 한선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이 질문을 던졌다. 질문의 대상은 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과 연구회 산하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동료 기관장들이었다. ‘함께 생각해보자’며 던진 화두였다. 하지만 이상천 이사장은 “국정감사 때 (비슷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원장님들이 ‘우리 분야는 특수해서 (여성 채용이) 힘들다’고 답변하던데 솔직히 실망했다”고 한 원장의 화두를 진지하게 받았다.



 이날 모임은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가 주최한 ‘젠더(gender·성별)격차 개선을 위한 리더 간담회’였다. 기관장들은 과학기술계의 오랜 숙제인 남녀 인력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댔다.



 주제 발표를 맡은 한 원장은 ‘유리 천장(glass ceiling, 여성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전체 여성 연구원 숫자가 적기도 하지만(공공연구기관 정규직 기준 9%) 고위직으로 갈수록 여성이 급감(4.9%)하는 게 더 문제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날 참석한 25개 기관장 가운데 여성은 한 원장과 정광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이혜정 한국한의학연구원장 등 3명 뿐이었다. 그나마 한 원장과 이 원장은 현 정부 들어 새로 임명됐다. 직전까지는 정 원장 한 명밖에 없었다. 한 원장은 "성취욕이 높은 고학력 여성들이 유리천장을 뚫지 못해 좌절하고 직장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원장도 “경력단절이 가장 큰 문제”라고 거들었다.



 다른 기관장들은 이런 주장에 ‘큰 틀’에서 공감했다. “딸 가진 아빠로서 개인적으로도 큰 걱정”이라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원인과 해법에 대해선 조금씩 시각차를 보였다. 강대임 한국표준연구원장과 성창모 녹색기술센터 소장은 “여성 과학기술인들 스스로 더 적극적으로 리더십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여자 선배가 적어 경험 전수가 힘든 만큼 체계적인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김종경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은 “연구자에겐 보직보다 ‘자기 연구’가 더 중요하지 않느냐”며 “여성 보직자를 늘리기보다 여성 연구책임자 숫자를 늘리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여성 연구원의 육아휴직 공백을 해결하기 위한 시간선택제 도입 계획도 제시했다. 연구원 각자의 필요에 따라 근무시간의 70%, 80%만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분야와 달리 과학기술계에선 ‘연구 단절’을 우려해 아직 도입된 적 없는 근무형태다.



 이상천 국과연 이사장은 “국가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여성인력을 활용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간담회를 기획한 이혜숙 WISET 소장 은 “정부 출연연구기관장들이 한 자리에서 모여 여성인력 문제를 논의한 것 자체가 처음”이라며 “의미 있는 첫 발을 뗀 만큼 차차 개선책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WISET은 9일 산업계, 18일 학계 리더들과도 같은 주제로 릴레이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천안=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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