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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이제는 요우커 관광의 품질을 고민할 때

중앙일보 2014.12.04 00:02 종합 32면 지면보기
채인택
논설위원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중국에서 6·25전쟁을 부르는 말)은 남조선의 북침으로 시작된 전쟁이다. 중국이 도와 침략자를 격퇴한 덕분에 미국의 북조선(북한) 점령을 막을 수 있었다.”



 “고구려는 중국의 변방정권으로 중화 역사의 일부가 분명한데 한국인들은 자기 역사라고 우기고 있다. 한국인은 전 세계에서 가장 역사왜곡을 잘하는 민족이다.”



 무슨 역사왜곡단체나 혐한모임에서나 들을 법한 망언이 서울 한복판에서 버젓이 들린다. 중국어로 하는 말이라 한국인은 바로 옆에 서 있어도 알 수 없다는 점이 다행이다.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을 딴 뒤 여행사에서 견습으로 일하던 A씨(28)는 최근 요우커(游客·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이런 말을 하던 같은 회사 소속 중국계 무자격 가이드에게 “역사 왜곡이다”고 항의하며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하지만 “중국 손님들 비위를 잘 맞춰야 나중에 쇼핑을 데리고 갔을 때 하나라도 더 잘 사줄 수 있다. 네가 여기서 손님을 상대로 역사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냐”는 중국계 가이드를 이길 수는 없었다. A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새 일을 알아보고 있다.



 A씨는 “더 큰 문제는 한국어·중국어 이중언어를 쓰는 중국계 무자격 가이드들이 요우커들에게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거짓 소개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진상을 모르는 요우커들이 중국에 돌아가 “한국에 갔더니 한국인들도 6·25전쟁이 북침이라고 실토하더라”라든지 “한국인도 고구려가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인정하더라”고 말하고 다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요우커는 이제 한국은 물론 전 세계 관광산업의 큰손이다. 지난해 방한한 요우커는 392만 명으로 1961년 출입국 통계를 작성한 이래 줄곧 방한 외국인 1위였던 일본인(271만6461명)과 자리를 바꿨을 정도다. 하지만 문제는 관광의 품질이다. 관광은 돈만 버는 산업이 아니다. 문화·인적 교류를 통한 상호이해 증진 등 경제 외적인 파급효과도 크다. 살아 있는 외교활동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우커의 서울 관광이 일부에서 최근 보도한 엉터리 안내 수준을 넘어 역사왜곡의 현장으로까지 변질되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 경복궁 앞. 길가에 늘어선 버스 행렬의 맨 뒤에 막 주차한 버스에서 요우커들이 우르르 내렸다. 동행한 가이드가 중국말로 뭔가를 설명한다. 경복궁의 내력을 소개하는 것 같았지만 중국어에 능통한 가이드 출신 B씨(35)에게 통역을 부탁했더니 완전히 딴 소리다.



 “서울의 경복궁은 베이징의 자금성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작고 초라해 볼 것이라곤 전혀 없다. 그러니 후다닥 돌아보고 나와서 다음 코스로 옮기자.”



 B씨는 “저 단체 관광객들은 곧 신촌에 있는 요우커 전용 상가로 옮겨 건강식품·고려인삼·화장품 등을 쇼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이드는 요우커 전용 상가에서 쇼핑을 하는 액수에 비례해 수당을 받기 때문에 관광은 대충대충 하고 쇼핑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일부 무자격 가이드는 처음 한국에 온 요우커들을 상대로 “물건을 사지 않으려면 버스에서 내려라” “이걸 10개 이상 사지 않으면 나는 집에 가겠다. 알아서 해라”며 압박도 서슴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관계를 중시하는 중국인은 며칠간 함께 다니며 애써준 가이드의 안면을 생각해서 물건은 사주지만 대개는 다시는 한국을 찾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 관광객의 경우 64%에 이르는 한국 재방문율이 요우커는 29.7%에 불과한 이유가 바로 이것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여행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C씨(47)는 “흔히 요우커들은 역사·문화 관광은 외면하고 쇼핑만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이야기를 나눠 보면 사실은 문화에 관심이 상당하다”며 “여행사들이 제대로 된 프로그램과 이를 운영할 자격 있는 가이드를 갖추도록 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한국의 역사와 사회제도 등에 대한 정확한 안내를 위한 매뉴얼부터 만들고 이를 교육해야 한다. 관광 품질 향상은 국격과도 연결이 되는 중요한 문제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때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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