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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찌라시' 공화국

중앙일보 2014.12.01 00:03 종합 28면 지면보기
정재숙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대학 생활을 하면서 처음 듣게 된 단어 가운데 하나가 ‘찌라시’였다. 도시락을 뜻하는 ‘벤또’와 나무젓가락 ‘와리바시’가 뇌리에서 잊힐 무렵 새롭게 들려 온 단어 찌라시. 처음 들을 때부터 좀 지질한 느낌인 것이 어감이 썩 좋지 않았다. 잠시 귓전에 어른거리다 사라질 줄 알았던 이 찌라시의 생명력은 의외로 질겼다. 앞으로도 사라지긴 어려울 듯하다. 증권시장이 없어지지 않는 한.



 훨씬 오래전부터 익히 들어왔던 단어로 ‘삐라’도 있다. 이젠 아련한 향수마저 느끼게 하는 6·25의 한 소품인 삐라가 정전 60년을 넘긴 남북 관계에 화염병이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하나같이 하잘것없는 느낌인 이 찌라시와 삐라는 우리나라에서 아직 힘이 세다. 21세기 하고도 두 번째 10년의 한복판에 한국 정치판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들로 떠올랐다.



 대통령기록물로 봉인돼 있는 문서 내용이 토씨 하나 틀림없이 그대로 다 까발려져도 그 연원은 찌라시다. 다른 곳도 아닌 청와대의 행정관이 작성한 문서도 역시 찌라시를 짜깁기한 느낌일 뿐이다. 한때 유명했던 ‘개인적 일탈’은 이제 그 위세를 찌라시에 온전히 내어준 것인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는 개인적 찌라시의 일탈이 세상을 뒤엎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찌라시가 뭐 어쨌단 것인가. 앞의 두 가지만 놓고 보면 찌라시는 100% 맞기도 하고 한편으론 완전 엉터리이기도 하다는 것이니 어떤 단일한 이미지를 그릴 수 없다. 맞아도 찌라시, 틀려도 찌라시라니….



 증권가 찌라시의 지배는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유명한 구문(舊聞)을 확인해준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자존심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권력의 핵심에서 ‘찌라시 운운’ 하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어도 찌라시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다. 찌라시는 곧 ‘밑도 끝도 없고 틀려도 그만이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그런 풍문을 말할 터이다. 과문인지 모르지만 검찰에서 찌라시의 내용을 최초로 발설한 사람을 찾아 나섰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증권맨들이 국어 순화에 나서서 찌라시를 ‘전단’이라고 고쳐 부른다고 상상해보면 웃음부터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이 찌라시를 줄곧 찌라시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이 일본말 자체에 어떤 경멸적이며 자조적인 뉘앙스가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찌라시를 정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온 국민 앞에서 공식적으로 발설할 때, 권부(權府)와 국민 모두가 한꺼번에 지질한 존재로 곤두박질치듯 아찔한 현기증이 들지 않는가.



 다 제쳐놓는다 하더라도 한껏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에 일본말에서 온 그다지 품격 있어 보이지 않는 어감의 단어를 집권당의 책임 있는 인물과 청와대 대변인이 다투듯 사용하는 모습은 안쓰럽고 무안하다. 국격(國格)이 땅에 떨어지는 굉음이 귓가를 울린다.



 국가기관의 명예가 훼손된다 하여 크게 문제시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그 명예들은 누가 훼손하기보다는 스스로 망가뜨리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꼭 명예만 중요한가. 명예를 훼손당하지 않겠다며 앙앙불락하더라도, 그렇게 해서 격조와 위신과 체통과 신뢰가 자동으로 덩달아 확보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 와중에 막상 국가의 명예는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면 그건 어떡할 것인가.



 한국 사회의 현재 모습은 항아리 속에서 끊임없이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형국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근친혼(近親婚)을 거듭하다가 활력을 잃어버린 종족과 같다고나 할까. 민족과 사회의 에너지가 하릴없이 허비되면서 퇴영과 쇠잔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렇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섬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섬나라 치고도 갑갑하기 짝이 없는 섬나라 아닌가. 북쪽으로는 배도 못 띄우니 바다도 아닌 철벽(鐵壁)이며 다른 삼면(三面) 또한 바다라 한들 비좁기 짝이 없다. 이토록 협착한 상태에서는 그 어떤 대국적인 견지도 자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통일 아니면 통일 비슷한 거라도 해야지 않을까. 헛소리와 헛물의 삼각파도에서 벗어나려면.



정재숙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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