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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정착민 가자지구 철수 … 팔레스타인 표정

중앙일보 2005.08.14 19:07 종합 8면 지면보기
"알라가 57년 만에 우리를 적의 총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었습니다."


서정민 특파원 가자시티 르포
"57년 만의 해방" 감격의 눈물

12일 가자시티에서 가장 오래된 알우마리 모스크의 이맘(예배인도자) 슈크리 압두(63)는 눈물을 글썽이며 설교했다. 운집한 5000여 팔레스타인인들 역시 울먹이는 함성으로 화답했다. "알라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압두의 설교는 이어졌다. "이날이 오길 우린 얼마나 기도했습니까. 우리는 적의 점령으로부터 드디어 해방되고 있습니다." 15일 해방의 날을 맞이하는 팔레스타인은 온통 축제의 물결이다.



가자지구를 강점해온 이스라엘 정착촌이 1차로 15~17일 사이 철거될 예정이다.



◆ 가자로 가는 길=이스라엘 남부 에레츠 국경을 넘어 1km의 긴 터널을 걸어가야 가자지구에 도착할 수 있다. 가자는 황량하다. 쓰레기만 바람에 날리는 사막이다. 관개시설로 과일나무나 야채를 키우는 이스라엘 쪽 초록색 평야와 대조적이다. 가자지구에 들어서자마자 장미 한 송이를 받았다. '평화의 사도'라는 시민단체가 가자지구에 들어오는 외국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해방의 기쁨을 함께 하자는 취지다. 가자지구 중심인 가자시티는 1987년 인티파타(민중봉기) 이후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다. 건물엔 총탄 자국이 역력하고 거리의 차들은 모두 폐차해야 할 정도다. 이스라엘군의 폭격이 남긴 폐허도 그대로다.



팔레스타인 청년이 13일 이스라엘 정착촌 철거를 자축하는 행사장으로 가는 버스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고 있다. 이날 금요예배를 마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자지구 곳곳에서 자축 파티를 열었다. [가자 AP=연합뉴스]

황량하고 버려진 땅이지만 해방의 기쁨은 넘쳐흘렀다. 거리마다 자축 인파로 북적거렸다. 외국인 기자를 보자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마브루크(축하한다)"라고 외쳤다. 축하받기 위해 먼저 축하의 말을 꺼냈다. 거리 곳곳에는 플래카드들이 나부꼈다. '해방된 민족, 번성할 민족' '오늘은 가자, 내일은 요르단강 서안과 예루살렘' '회복한 땅 영원히 우리는 지킬 것' 등등.



◆ PLO 정부의 자축 행사=저녁 무렵이 되자 사람들이 가자 항구의 모래밭 공터로 몰려갔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주류인 '파타운동'이 조직한 축하행사가 열렸다. 대형 애드벌룬에 붙은 마무드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의 사진이 해변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옷과 전통의상을 입은 주민들이 과자와 사탕을 바구니에 담고 다니며 나눠줬다. 흥얼거리는 듯 경쾌한 음악에 맞춰 젊은이들이 반원을 그리며 깡총거리는 전통춤을 추었다.



압바스 수반이 등장하자 환성이 울렸다. "여러분, 그동안 고생했습니다. 더 이상 이곳에 점령이란 단어는 없습니다. 평화로운 가자 철수 이후 앞으로 더욱 평화로운 나머지 땅 반환작업이 진행될 것입니다." 수반이 연설을 마치자 수천 개의 풍선이 하늘로 치솟았다. 파란 지중해변 모래사장에 파타운동의 상징인 노란색 깃발의 파도가 일었다.



◆ 무장단체의 자축 파티=가자지구 북부 바이트 라히야 지역의 풍경은 달랐다. 부촌인 가자 항구 지역과 달리 서민들이 모여 사는 이곳엔 검은색 행렬이 이어졌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중 가장 과격한 이슬람 지하드운동의 자축연이다. 엄숙하고 긴장이 흘렀다. 이스라엘 정부의 정착촌 철거 결정을 '항쟁의 승리'로 규정했다. 이어 지속적인 무장투쟁을 선언했다. 검은 색 깃발을 든 1만여 명의 주민들이 검은 복면의 무장대원들이 탄 차량을 뒤따랐다. 주민들은 '피로 우리는 승리를 썼다'는 아랍어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있었다. 10여 분마다 행렬이 멈춰지고 코란이 낭송되고, 이어 공중으로 소총이 수십 발씩 발사됐다. 작렬하는 총포 소리와 '알라 아크바르' 외침이 지역 전체를 뒤흔들었다.



행사 말미에 도착한 이슬람 지하드의 지도자 함드 일힌디(55)는 "적들의 그림자가 없어질 때까지,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전사가 순교할 때까지 지하드는 계속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다시 "알라"를 찾는 함성이 일었다. 연설이 끝나자 길 바닥에 미국의 대형 성조기가 놓여졌다. 차와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지나갔다.



전날에는 최대 무장단체 하마스의 녹색 물결이 가자지구 전체를 뒤덮었다고 한다. 이슬람 지하드보다는 온건하지만 현재까지 무장투쟁을 주도해온 하마스는 며칠 후 다시 축하 행사를 열 것이라고 발표했다. 해방된 가자지구에는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진 노란색.녹색.검은색 축하 물결이 흐르고 있다. 노선은 달라도 해방을 맞는 기쁨은 하나였다.



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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