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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소설 읽기] 지킬의 두 얼굴은 완벽주의에 짓눌린 무의식 탓

중앙선데이 2014.11.30 03:02 403호 24면 지면보기
날개 없이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고, 죽은 사람과 거리낌 없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과 비용의 제약 없이 세계 일주를 한다.

①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우리가 매일 밤 꿈에서 만나는 흔한 이미지들이다. 어떻게 이런 환상적이고 비논리적인 이미지들이 우리의 멀쩡한 의식과 양립하는 게 가능할까.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은 꿈이야말로 무의식의 메신저라고 보았다. 즉 ‘무의식’은 논리적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갖가지 열망과 감정을 꿈이라는 형태로 우리의 ‘의식’에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꿈의 아우성에 귀 기울이는 태도야말로 무의식과의 만남을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이다.

갖가지 현실적 제약 때문에 의식이 억누른 열망들은 무의식의 바다에 차곡차곡 가라앉아 꿈의 퇴적층을 이룬다. 그렇게 짓눌린 우리의 무의식은 의식을 향해 ‘조공’을 요구한다. 예컨대 당신이 체면이나 성공을 위해 오랫동안 가꿔온 꿈이나 사랑을 버렸다면 꿈은 무의식의 어떤 강력한 상징을 통해 ‘너는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이렇게 짓밟았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것은 때로 악몽으로, 때로는 낮에 꾸는 백일몽(daydream)의 형태로 나타난다.

물론 그 과정을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의식의 상징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은 날카로운 수식이 아니라 인문학적 감수성이다. 융은 의식과 무의식을 대립적인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의식’이 직접 나서서 ‘무의식’의 심해를 탐험해야만 자신도 깨닫지 못한 내면 세계의 비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의식’과 이해는 물론 포착 자체가 불가능한 ‘무의식’을 통합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일 뿐 아니라 인격의 완성에도 필수적인 과정이라 말한다. 무의식은 낙원처럼 달콤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무의식을 의식의 친구로 만들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아주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킬 박사는 무의식이 온갖 폭발물이 저장된 무시무시한 화약고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폭로한 최초의 과학자가 아닐까.

무의식 속 백일몽이 실제 상황으로
“나는 쾌락을 위해 범죄를 저지른 최초의 사람이다.” 언제 읽어도 섬뜩한 지킬 박사의 놀라운 고백이다. 지킬은 본래 바른 생활 사나이였다. 런던에서 이름난 자선가였고 훌륭한 과학자였으며 유명 인사이기도 했다. 한 점의 오류도 없이 오직 도덕적이고 모범적인 방향으로만 뻗어나갔던 그의 삶에는 감추고 싶은 치명적인 비밀이 있다. 헨리 지킬이 ‘선의 화신’이라면 그가 숨기고 있는 또 다른 자아 에드워드 하이드는 ‘악의 화신’이다.

지킬은 오랜 실험을 통해 자신의 모든 부정적인 성격을 완전히 분리해내는 데 성공하고, 본인이 직접 제조한 특수한 약물을 복용하면 고통스러운 변신의 과정을 통해 천하무적의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에드워드 하이드로 완전히 탈바꿈할 수 있게 됐다. 하이드에게는 죄책감이 없다. 아무 죄 없는 어린아이를 짓밟기도 하고, 걸핏하면 충동적인 범죄를 저지르더니 급기야 모두의 존경을 받는 국회의원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모범생 지킬이 숨기고 있던 무의식 속 광기의 발로가 하이드였던 것이다. 지킬은 자신의 무의식이 담긴 백일몽을 마침내 실제 상황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끔찍한 실험의 출발은 본래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적 탐구였다. 지킬은 성공과 명예만을 중시했던 자신의 극단적인 성격을 되돌아보며 인간의 근원적인 이중성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유명해지고 싶고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심 때문에 지킬은 자신의 또 다른 본성을 숨겨온 것이다.

만약 지킬이 건강한 보통 사람처럼 그때그때 스트레스를 풀고 주변 사람에게 완벽한 겉모습만이 아닌 풀어진 모습,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살았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완벽한 지킬’의 모습을 항상 유지하고 싶었던 그는 선한 본성과 악한 본성을 각각 두 개의 인격으로 분리시킬 수 있다면 인생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될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과학자로서 지킬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다면적이며 이율배반적인 별개의 인자들이 모여 이루어진 구성체라는 가설”을 내놓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그 가설을 잘못된 방식으로 활용한다. 억압된 무의식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고만 했을 뿐 무의식과의 진정한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선과 악, 그 양극의 교류가 구원의 길
하이드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게 된 지킬의 친구 어터슨 변호사는 지킬 못지않은 바른 생활 사나이였지만 하이드의 끔찍한 악행에 대해 알고 나서 기이한 호기심에 시달린다. 그는 꿈속에서 하이드의 환영을 본다. 의식이 확실히 깨어 있는 낮에는 어느 정도 통제 가능했던 호기심이 꿈에선 고삐가 풀려버린 것이다. “하이드의 실체를 보고 싶다는 바람이 통제 불능의 강한 욕구로 자란 것도 바로 꿈속에서였다.”

하이드의 악행이 끔찍한 이유는 누군가에게 적개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래 묵은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즉 아무 이유 없이 단지 타인을 괴롭히거나 공격하는 순간의 ‘쾌락’ 그 자체를 즐긴다는 점이다. 하이드는 소시오패스의 가장 전형적인 특징인 ‘자비심도 죄책감도 양심도 없는 상태’의 무차별적인 공격성을 구현하게 된다. 자비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자. 그가 하이드였고 어터슨은 그런 하이드에게 의문을 품게 된다. 타인의 그림자에 의문을 품는 순간 우리는 무의식의 세계에 입문한다.

어느 날 밤, 평화로이 헨리 지킬로 잠들었던 그는 깨어나 보니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하이드로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하이드의 얼굴을 한 지킬은 절망한다. 의식의 노력, 즉 과학적 실험으로 자기 무의식의 결정체인 하이드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그러나 이 통제 불가능성이야말로 무의식의 본질이다. 지킬이 출세가도를 달리면서 우아하게 선행을 베푸는 동안 하이드는 밤마다 어두운 런던 거리를 누비며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그는 이렇게 양극성을 철저히 분리함으로써 후회·굴욕·책임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지킬과 하이드라는 이율배반의 쌍둥이가 한 몸에 붙어 있는 것은 인류의 비극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융의 생각은 이와 정반대다. 바로 그 인간의 양극성, 화해할 수 없는 분열된 자아를 서로 대화하게 만들고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 믿었다.

지킬은 무의식과의 접촉에는 성공했지만 무의식과의 화해·통합, 그로 인한 치유와 성찰에는 이르지 못했다. 만약 융 박사가 지킬의 주치의였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당신의 하이드, 당신의 그림자, 당신의 무의식을 방치하거나 배제하거나 다락방에 숨겨두지 말게. ‘꿈’을 통해, 때로는 대낮의 얼토당토않은 몽상을 통해, 알 수 없는 신경증과 강박증을 통해, 당신의 의식에 말 걸고 싶어하는 무의식에게 발언권을 주게나. 의식과 무의식의 대화와 갈등, 협상과 통합을 통해 우리는 더 깊고 너른 자아의 우주에 다다를 수 있나니.”



정여울 서울대 국문학 박사. 최근 들어 심리학자 카를 융의 무의식 개념을 연구해 왔다. 이번 기획에서는 소설 속 주인공의 내면을 융 심리학 기법을 통해 탐구함으로써 고전 문학을 더 깊게 공감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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