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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사랑 거절할 권리, 400년 전에 외친 세르반테스

중앙선데이 2014.11.30 03:05 403호 24면 지면보기
얼마 전 서울시의 한 남성 공무원이 동료 여성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애정 고백 문자 공세와 스토킹을 지속하다가 징계를 받은 사건이 화제가 됐다. 조사에 착수한 인권보호관은 “피해자의 신체적·정신적 안녕을 위협하는 가해 행위”였다고 결론지었다. 그런데 조사 당시 남성 공무원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을 믿었다.”

문학 속 스토킹

아마도 ‘열 번 찍어…’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와 더불어 가장 위험한 속담일 것이다.(스토킹 피해자들과 허위 루머 피해자들의 극심한 고통을 생각해보자.) 다행히 최근 몇 년간 일방적인 사랑으로 스토킹을 하는 게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됐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열 번 찍어…’는 우리나라에서 옳게 여겨진 속담이었다. 한국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일방적인 사랑을 미화하고 그 대상인 여성의 주체적 감정과 결정권은 무시하던 씁쓸한 과거의 흔적이 서구 문학작품에도 남아 있다.

부셰의 그림 ‘베르툼누스와 포모나’.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의 집대성인 『메타모르포세이스』의 베르툼누스와 포모나 이야기를 보자. 숲의 님프 포모나는 정원과 과수원 돌보기에 여념이 없어 구혼자들을 물리치곤 했다. 그녀에게 반해 주위를 맴도는 남자 중 계절의 신 베르툼누스가 있었는데, 그는 변신이 특기였다. 어느 날 베르툼누스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변신해 포모나에게 접근한 뒤 (음흉하게)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옛날에 아낙사레테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어떤 남자의 사랑 고백을 무참히 거절했는데, 결국 그가 자살하자 사랑의 여신 베누스(비너스)가 그녀에게 저주를 내려 돌로 만들어 버렸다고. 그러니 신들의 순리를 따라 남성을 받아들이되 구혼자 중에는 베르툼누스가 최고라고.

이야기를 마친 베르툼누스는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포모나가 계속 거절하면 힘으로라도 굴복시킬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 없이 포모나가 그에게 반했다”는 게 이야기의 결말이다. 포모나의 마음이 돌아섰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범죄 스토리가 될 판이었다.

일방적인 사랑을 미화하는 사고방식은 르네상스 시대까지 이어졌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1351)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나스타조라는 청년이 아름답고 부유한 여인 파올라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후 상심해 숲을 거닐다가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다. 낯선 여인이 말 탄 기사와 사냥개들에게 쫓겨 다니다 결국 쓰러져 개들에게 물어뜯기는 것이다. 기사는 나스타조에게 놀라지 말라면서 자신들은 이미 죽은 혼령들이라고 말한다. 생전에 기사는 여인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후 자살했고 여인도 얼마 뒤 죽었는데 그것이 저주가 되어 두 사람의 혼령이 이렇게 쫓고 쫓기기를 영원히 계속한다는 것이었다. 나스타조는 파올라에게 이 유령들을 보여주고 겁이 난 파올라는 나스타조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이게 과연 해피엔딩일까?

하지만 과거에도 여성의 주체적 결정권을 존중한 진보적인 소설이 있었다. 바로 현대인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는 고전 중 하나인 『돈키호테(Don Quixote)』(1605)다. 돈키호테와 산초가 방랑하다 어느 양치기 청년의 장례와 맞닥뜨린다. 그는 아름답고 부유한 독신주의 여성 마르셀라 때문에 상사병을 앓다 숨을 거둔 청년이었다. 그 말고도 많은 남자가 마르셀라에게 반해 상사병을 앓고 있었다. 이때 마르셀라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비난한다. 앞서 로마신화의 논리대로라면 그녀는 베누스 여신의 저주를 받아 돌이 되어도 마땅할 터. 그러나 마르셀라는 당당하고 논리정연하게 항변한다. “나는 죽은 청년에게 아무런 희망도 준 적이 없으므로 내가 아니라 그 자신의 집착이 그를 죽인 것입니다. 나는 자유롭게 태어났고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고독을 선택했습니다.” 그러자 돈키호테는 엄숙한 목소리로 그녀의 말이 옳다고 선언하고 원치 않는 구애로 그녀를 괴롭히는 자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돈키호테는 놀라운 ‘현대성’을 갖춘 소설로 연구되고 있는데, 그 현대성에는 이것도 포함될 것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400년 전 세르반테스의 생각보다도 더 케케묵은 생각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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