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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의 음악 읽기] 숭고한 미학과 쾌락적 감각의 이중주

중앙선데이 2014.11.30 03:24 403호 27면 지면보기
모차르트의 삶을 그린 영화 ‘아마데우스’의 한 장면. 경박한 인물로 그려지지만 음악은 순수·숭고하다.
왜 굳이 클래식 음악을 들어야 하지? 예술애호가 아닌 소위 ‘일반 동네’에서 항상 따라 붙는 의문이다. 한가한 저녁 나절 텔레비전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영화 보러 극장을 찾을 때 왜 이걸? 하지 않는다. 유행가요를 흥얼거리거나 춤추는 장소에서도 마찬가지다. ‘왜 이걸?’ 하는 의문은 클래식 음악을 들어야 하거나 그림 보러 전시장을 찾을 때 항상 대두된다. 세태와 기호의 변화 탓이기만 할까.

왜 클래식인가 ①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K377

며칠 전 한밤중에 잠시 넋을 놓았다. ‘멀어져 가는 저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아직도 이 순간을 이별이라 하지 않겠네….’ 정리되지 않은 LP박스에 어디서 굴러들어 왔는지 옛가수 나미의 음반이 있었다. 별 생각없이 턴테이블에 얹었다가 온몸에 소름이 좍 돋았다. 서로 사랑하나 만나기만 하면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하는 연인의 서사였다. ‘슬픈 인연’을 노래하는 나미의 허스키한 보이스는 겹겹의 색채를 갖고 있어 화자의 복잡한 심경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계속 만날 수도 영영 이별하기도 괴로워 잠정적 거리를 두는 연인들의 인생 삼막극이 어째 이리도 실감이 날까. 델라 리즈, 셜리 벳시, 다미타 조 등이 떠올랐다. 나미는 그녀들 이상의 대가수였다. 저 촉촉하게 젖어드는 가요 감성 앞에서 슈베르트나 말러의 리트가 어떤 위력을 지닐까. ‘슬픈 인연’ 못지않게 뛰어난 곡과 가수도 많다. 가요나 팝송으로도 충분한데 왜 굳이 예술가곡을 들어야 하지? 교향곡이나 피아노 소나타는 왜?

책을 내면 부록처럼 강연 요청이 따라온다. 최근 출간한 클래식 에세이집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번엔 이상하게 전국구다. 밀양이나 정선, 제주시청의 아주머니 청중 앞에서 나는 계속 같은 요지의 견해를 변주했다. “경제성장 30년 후 우리들의 삶은 오히려 너무 행복하지 못하다. 세상이 우리들에게 행복을 선사해 주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자구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건 이익이 아닌 의미 있는 행위에 일정 부분 자기 생을 투자하는 것이다. 그 첫 번째 관건은 ‘대중문화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여기에 달려있다….”

우리는 모두 대중문화에 포위되어 산다. 텔레비전에서 SNS까지 잠시도 그 그물망을 벗어나 살 도리가 없다. 도시화와 더불어 생성된 대중문화는 태생부터 최종 목적지까지 소비재로서 기능한다. 노동 과정의 피로와 생의 고난을 위로하고 감싸준다. 이런 매혹적인 위안 수단 없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의 행적을 자기 일과처럼 꿰고 살아간다. 노래하고 춤추고 막장 드라마를 욕하며 즐긴다. 그런데 인간이란 게 참…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가슴 속을 분할하는 심방 속에 ‘숭고’라는 영역이 부재한 경우는 없다.

대중문화는 숭고의 대척점에서 작용하는 쾌락적 소비재다. 그것이 삶의 일정 부분을 점유할 때는 유쾌한 놀잇감이 되지만 오늘날처럼 전면적이고 압도적인 지배 상황이 되면 허무감, 무상감이라는 함정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상당한 집중과 자기 헌신, 노력을 통해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숭고의 대상물인데 오늘 우리들의 삶에서는 그 영역이 텅 비어 있다. 그래서 삶이 허망하고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이 대중문화와 구분하여 부르는 예술 분야, 이른바 순수예술 혹은 본격예술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바로 숭고의 영역이다. 그곳은 깊은 탐구심과 노력을 통해서야 간신히 도달할 수 있다.

숭고와 쾌락은 서로 대척점에 서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윤리적 범주가 아닌 미학적 범주에서의 숭고는 궁극적으로 쾌락에 닿아 있다. 다만 무게와 깊이에서 특유의 존재감이 있다. 가요를 즐기듯이 쾌락적이면서 숭고 한가운데에 자리하는 클래식 음악은 없을까. 사실 숙련된 애호가 입장에서 보자면 클래식 음악 역시도 즐기는 방식은 쾌락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느 결엔가 그것은 너무나 부담스러운 것으로 인지된다.

클래식 가운데 숭고미학이 충만하면서 좀 더 쉽고 빠르게 쾌락 반응이 올 수 있는 곡은 무엇인가. 주관적이지만 얼른 떠오르는 음반이 있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연주집으로 잉글리드 헤블러의 피아노, 헨리크 셰링의 바이올린이 주거니 받거니 한다. K377, 378이 담긴 이 음반(작은 사진)은 클라라 하스킬, 아르트루 그루미오 조의 합주와 더불어 역사상 가장 많이 애청되었을 것이다. 헤블러의 피아노는 레가토 같은 기교를 전혀 부리지 않기로 작정한 듯 순행하고 좀 애절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선수인 셰링이 이 연주에서만은 담백하기 그지없게 활을 긋는다. 평온한 온기. 잠시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이 연주에 귀 기울인다면 장담컨대 ‘왜 클래식 음악을 들어야 하지?’ 하는 의문은 씻은 듯이 사라질 것이라고 본다.


김갑수 시인·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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