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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삶 느린 생각] ‘논리의 올가미’에 갇혀 이상적 가치 도달 못한 고르비

중앙선데이 2014.11.30 03:31 403호 2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강일구
지난 8일 독일 베를린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을 기념하는 강연회가 열렸다. 행사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독일의 통일과 공산주의 블록의 와해 과정에서 커다란 고비가 된 사건이었다. 이러한 세계사적 전환의 핵심에 서 있던 사람이 고르바초프였다. 이 행사에서 그의 연설은 당시 자신의 심정과 오늘의 세계정세에 대한 진단을 살필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것은 우리에게 정치 행위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한다.

정치 현실과 이상

위에 말한 두 개의 사건, 베를린 장벽 붕괴나 공산 블록의 와해는 여러 가지 일이 누적됨에 따라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연설에서 독일 통일의 경과를 말하면서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예상치 못했던 역사적 전환도 나중에 보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예정됐던 일로 보일 수 있다”며 자신을 비롯한 소련 지도부의 결정이 일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 갔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역사는 무력 충돌과 유혈을 동반한 방향으로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상황에 대한 “현실적이고 책임 있는 판단”과 “결정”이 있었던 것이다.

“독일 통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
전환의 기초가 된 것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였다. 고르바초프와 소련 지도부는 이 정책 지침의 연장으로, 공산권 여러 나라의 내부 문제에 대한 소련의 간여를 정당화하는 브레즈네프 선언을 파기하고 독자적인 결정과 책임을 인정했고 나아가 독일 통일의 문제에서도 독일 국민의 자결권(自決權) 행사를 받아들였다. 독일 통일 협의에서 더 많은 유보를 가졌던 것은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나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었고 자기는 더 적극적이었다고 고르바초프는 말한다.

물론 새로운 체제의 성립을 구상함에 있어 그가 서방 세력의 일방적 팽창을 허용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생각은 러시아의 안보를 고려하는 새로운 체제가 중부 유럽에 들어서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통일 독일의 군사력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주둔군의 감축, 그리고 적절한 기간의 소련군의 독일 주둔 등을 요구했고 궁극적으로는 중부 유럽이 비군사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럽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군사적 대결이 아니라 외교적 조정과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가 적어도 연설문에서 말한 바로는 유럽이 “탄탄한 상호 보완적 안보체제가 되고… 세계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지도적 역할을 맡게 되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현실이 되지 못했고 지금 서방과 러시아의 관계는 다시 새로운 냉전에 들어가기 직전에 와 있다고 그는 진단한다. 그 원인은 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당초의 약속-호혜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 있다고 한다. 공산주의 국가 블록의 해체 이후에 서방은 러시아의 약화로 대항 세력이 없어지게 됐다. 그에 따라 서방 국가들은 일방적인 승리를 선언하고 모든 일에서 자기들의 일방적인 의지를 강제하려는 자세를 취하게 됐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코소보 전쟁, 미사일 확대 배치, 이라크·리비아·시리아의 무력 분쟁 문제 등이 이러한 ‘일방적 의지를 강요’하려는 서방의 자세에서 연유한다고 말한다.

악화되는 유럽의 안보 정세를 바로잡는 데 필요한 것은 다시 “정치적 의지를 굳히고 사안의 완급(緩急)을 분명히 파악해” 협의 체제를 회복하는 일이다. 냉전이 끝난 다음에 원래 기대했던 호혜적 관계 중단의 결과로 유럽은 그가 희망했던 바와 달리 “지구 전체의 변화를 위한 세계적 선도 체제가 되지 못하고 정치 분규, 영향력 경쟁 그리고 군사적 분쟁 지역”이 되었다. 이렇게 가면 유럽은 다른 세력과 영향력의 중심들이 부상하는 시점에서 세계적 상황에 발언권이 없는 힘 없는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유럽에 중요한 것은 호혜적 협동 관계를 회복해 그 존재를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힘의 대결은 목적 달성 위한 수단
위에 간추려본 것은 인터넷에 실린 고르바초프의 연설 내용이다. 그 내용 자체를 소개하거나 따져보려는 것이 아니라 내용에 들어 있는 정치 행위의 특징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정치는 좋든 나쁘든 권력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서로 대결하는 세력이 있을 때 정치 행위의 중심은 힘을 겨루는 일에 놓인다. 이 대결 관계가 국제적인 것일 때, 특히 힘의 대결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힘의 균형’이 그것을 완화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 정치는 명분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 관점에서는 힘의 대결은 결국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다.(물론 정치 투쟁이 단순한 권력 투쟁이 되는 것은 너무나 많이 보는 일이다. 그러한 경우 명분은 선전의 수단이 된다.) 정치 목적의 하나로서의 독립 또는 발전은 집단 동원을 정당화한다.

정의는 정치에서 또 하나의 목적 또는 목표다. 정의는 반드시 힘을 가진 것이 아닌 추상적인 이념이다. 그리하여 정치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려면, 그것은 정의로울 수만 없는 힘의 관계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모순은 인도주의적이고 보편적인 윤리의 실현이 그 목표가 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정의는 플라톤이 말한 바와 같이 분격하는 마음에 관계돼 있다. 그러나 자비나 인자함 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부드러운 마음에 관계돼 있다. 힘 없는 것- 또는 도덕과 윤리도 길게 볼 때 힘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달리 말해 그것을 약력(弱力)이라고 한다면 이것을 힘에 연결하는 것은 쉬운 일일 수 없다. 그런 경우 그것은 자기모순에 떨어지는 것이 된다. 정치를 통해 정의 또는 보편적 인간 윤리를 구현하는 것은 심히 어렵거나 복잡한 일일 수밖에 없다.

고르바초프의 연설을 접하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정치 행위에 들어 있는 모순된 계기들이다. 냉전의 종식은 인류를 전쟁과 분쟁과 적대적 긴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세계적인 사건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이것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수행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물론 공산권의 해체와 냉전의 종식은 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의 결단에 관계없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가 독일의 통일에 찬성하고 냉전의 종식에 동조한 것은 불가피한 사실을 수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 이러한 정치 결단은 패배를 인정하고 영토와 국익의 패권(覇權)을 내어 놓는 일로 간주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조국의 이익을 배반한다는 혐의가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열려 있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었을 수 없다.

냉전종식을 평화적으로 이끈 고르비
물론 고르바초프의 경우에도 힘의 논리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다. 냉전이 끝나면서 유연한 협의 관계가 성립하지 못한 것이 나토 회원국만의 책임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또 엄청난 살해와 방화(放火) 행위 그리고 여러 고통을 가져온 코소보 전쟁, 핵무기가 폐기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방어적 미사일 배치, 또는 아랍권의 여러 분규 등을 서방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는 것인가. 또는 유럽이 새로이 부상하는 “다른 세력과 영향력의 중심들”에-여기에는 동아시아가 포함될 것이다- 맞설 수 있는 중심으로 결속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희망은 참으로 인류의 보편적 관점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지적하는 것은 소련과 러시아의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그것을 초월해 인류의 보편적 스승이 될 것을 그에게서 기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위에서 비친 바와 같이 정치 행동의 장(場)을 벗어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정치행위의 어려움을 또 하나 지적할 수 있다. 그가 동유럽에 대한 소련의 패권을 포기하면서 그 빈자리에 서방 세력이 밀려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국제정치의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그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그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악마의 올가미’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정의와 보편적 인간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가를 더 심각하게 연구했어야 한다는 말이다.(‘악마의 올가미’는 정치는 ‘악마와의 협약’을 요구한다는 막스 베버의 관찰을 고쳐본 것이다.) 그런데 정치가 정의와 인간적 가치 실현의 수단이 될 수 있는가.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다.

현실과 이상 조화시키기엔 난관 많아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 정치를 통하지 않고 어디에서 그 수단을 찾을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여기에 대한 간단한 답이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답을 시도해본다면 그것은 언제나 현실 속에서 움직이면서 그때그때의 문제에 대해 현실적 해결 방식을 찾고자 하는 것이 정치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정치를 저울질하는 것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서 비추고 있는 보편적 가치의 별이다. 현실과 보편적 이상이 결국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 것이 참으로 의미 있는 정치다. 그리고 역사 속에 빛나는 정치 지도자는 현실과 이상의 합일을 위해 순교자가 되는 것도 사양하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되풀이하건대 현실 상황, 현실 문제에 대한 일단의 해결, 그리고 멀리 있는 인간의 이상, 이 셋 사이에 연결을 놓고자 진력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의 의미다.

이러한 것들을 고려할 때 고르바초프는 현실과 이상의 사이에서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낸 정치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가장 넓고 높은 보편적 인간 가치의 이상에 연결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의 발상의 틀이 단순한 현실 정치의 논리를 넘어 가면서도 동시에 그 논리의 올가미를 충분히-현실과 이상 양면으로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 오늘의 총체적 상황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 이후 『지상의 척도』 『심미적 이성의 탐구』 『자유와 인간적인 삶』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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