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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김구와 이승만이란 무엇인가

중앙선데이 2014.11.30 03:38 403호 30면 지면보기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헬릿 카의 주장은 독일의 역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의 ‘역사란 오직 사실만을 서술하는 것’이라는 실증주의 사관과 더불어 현대인의 주요한 역사 통찰로 자리 잡았다. 특히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독재의 고통이 극심했던 이 사회에서의 실천적 진보사관으로서 이제는 대중적 공의로 인정된 느낌마저 든다. 한데 건국 대통령 우남(雩南) 이승만과 민족지도자 백범(白凡) 김구 사이에 ‘대한민국’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내려놓은 채 벌어지고 있는 진흙탕 싸움을 가만히 지켜보노라면 대체 무엇이 역사에 대한 실증이고 과연 무엇이 역사와의 대화인지 참담해진다.

소위 좌파에게는 백범 김구가 자신들의 영웅이자 신화이고 소위 우파에게는 이승만이 그러한 듯싶다. 동시에 양쪽은 서로의 영웅과 신화를 저주하면서 자신의 강퍅한 정체성을 공고히 한다. 가령 좌파에게 이승만은 친일파를 기용한 외교지상주의 3류 독립투사이자 국민에게 쫓겨난 양민 학살의 독재자일 뿐이고, 우파에게 김구는 김일성에게 속아 좌우 합작을 도모한 나머지 대한민국의 건국을 반대한 총칼만 아는 무식하고 철딱서니 없는 노인네일 뿐이다. 와중에 우남과 백범의 저 찬란한 공적은 차라리 무시당하는 편이 낫겠다 싶게 기어코 강간된다. 모든 역사적 인물은 거대하고도 오묘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공적과 과오가 훗날 공정히 셈해지고 융숭하게 해석돼야 함에도 말이다.

상해임시정부는 김구와 이승만이 공히 공산주의를 혐오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했기에 국제공산주의로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으며 이에 대한민국 헌법은 임정의 법통을 이어받고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다. 백범 말년의 정세 판단은 사실상 상식에 가까운 것이었다. 오히려 우남의 국제정치학과 반공사상이 초인적이었을 뿐이지 백범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가 백범의 열등과 불온의 소치가 아니었다는 소리다. 심지어 『백범일지』는 친일작가 이광수가 대신 써준 것이라고 백범을 폄훼하는 것은 그 사실의 정도가 얼마만큼인가를 떠나 비열하고 멍청한 짓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백범일지』가 이 민족의 자랑이 아니라 가짜이거나 이광수의 어둠이 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한·미동맹을 이끌어내고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남한에 이식한 것을 비롯한 우남의 업적이 과소평가돼서는 안 된다.

백범과 우남을 모욕하는 그 ‘실증들’의 내면에서 우리는 그것들이 해석까지 이어질 자격이 없는 무지와 증오의 혼합물임을 자주 적발한다. 좌파와 우파는 자신이 좋아하는 물고기 한 마리를 살린다며 호수에 독을 풀어 넣는다. 그러면 그 호수가 죽음의 늪이 된 후에야 자신이 살리고자 했던 그 한 마리의 물고기는 아주 먼 과거의 물고기로서 애초에 호수에는 존재하지도 않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이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적과 과오를 정돈했던 그 지혜의 방식이 절실한 시점이다. 또한 카가 실은 외무부 관료이자 국제정치학 교수였다는 사실은 그의 역사학적 유연함을 숙고하게 한다. “중용(中庸)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 노력이라는 것과 체념 사이의 균형에 관계가 있다”고 러셀은 『행복의 정복』에 썼다.

무엇보다, 특정 정파가 김구와 이승만의 대리인처럼 구는 것은 가증스러운 일이다. 그들은 자신의 어두운 정의(Justice)를 위해 ‘역사와의 대화’조차 멋대로 참칭하고 ‘실증’도 버젓이 조작한다. 우남을 복권하기 위해 백범을 더럽히고, 백범을 추앙한다면서 우남을 난도질한다. 만약 백범이 부활해 지금의 북한과 남한을 본다면 자신이 그토록 소망했던 문화의 힘을 세계에 뽐내는 자유의 나라가 과연 어느 쪽에서 실현됐다고 말할까? 백범을 이용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가치를 멸시하는 것은 백범의 참된 애국애족을 똥통에 처박는 짓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칠십 년 전 우리에게 백범이 아니라 호찌민이 있어 베트남처럼 통일이 됐다고 한들 이후 그 사회주의국가 안에서 우리가 결코 행복할 수 없었을 것은 자명하다.

백범과 우남을 두고 우리의 절반이 죽어 없어지기 전에는 절대 끝나지 않을 오욕의 쟁투를 일삼는 것은 역사에서 실증과 해석 중 오직 하나만을 고집하는 만행과 다를 바 없다. 우리의 역사가 부정해야 할 대상은 김구도 이승만도 아니라 김일성이라는 인류 최악의 샤머니즘적 파시즘일 뿐이다. 이제 우리가 나아갈 길은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하는 백범을 통해 위대한 통일 대한민국을 완성하는 길이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일 뿐만이 아니라 미래와의 대화이기도 한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판도라의 상자 속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백범과 우남이 통일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두 개의 강철 무지개가 될 때 그것은 곧 우리의 사랑에 대한 실증, 희망에 대한 해석이 될 것이다.



이응준 1990년 계간 문학과 비평에 ‘깨달음은 갑자기 찾아온다’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 『국가의 사생활』과 시집 『애인』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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