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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탐사] 어느 대형교회 목사의 기도

중앙선데이 2014.11.30 03:44 403호 31면 지면보기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거룩하신 하나님 성전에서 무릎 꿇어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감사하나이다.
이 거룩하신 하나님 성전에 하루하루 벽돌 하나라도 더 쌓아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날이 커지고, 그 벽돌 하나하나를 빛나는 대리석으로 바꿔 하나님의 뜻이 만방에 비추게 하는 게 제 소임입니다.
하나님 굽어살피소서.
그런 고귀하고 성스러운 소명을 하찮은 노동으로 폄하하고 폄훼하는 악의 무리들이 있나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따르는 저희에게 세속의 권력이 차지한 제단에 세금을 바치라 이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일해서 번 만큼 평등하게 세금을 내고 있으니 너희들도 그 법에 따르라 핍박하고 있습니다. 물경 마흔여섯 해 동안이나 하나님을 섬기는 종들인 저희들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오 주여.
사악한 무리들은 자신들 주장의 근거로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 망령되이 일컫고 있나이다. 하지만 예수님 말씀이 어찌 그들이 어지러이 입 놀리는 뜻과 같겠나이까. 그것은 죄 많은 바리새인들이 우리 예수님을 위험에 빠뜨리고자 던진 올무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러한 함정을 간파하신 예수님께서 진정 하시고자 한 말씀은 그 다음이라는 것을 어찌 모른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것은 하나님께”라고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게 무엇보다 먼저란 말입니다. 할렐루야!
나의 아버지 하나님.
악의 무리들은 꿀 바른 말로 세상을 기롱하고 있나이다. 이리저리 세목을 바꾸어 현혹하고, 원천징수다 자진납세다 같은 말을 달리 포장해 눈을 속이며, 저소득 종교인들한테 세제 혜택을 준다는 감언으로 우매한 양들을 그릇된 길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 말에 넘어가 천주교에서 이미 소득세를 세속 권력의 재단에 바치고 있으며 불교와 일부 개신교에서 세금을 내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고 있나이다.
주여 저희를 가엾게 여기소서.
그것이 모두 악한 무리들이 파놓은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첫걸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나이까. 오늘 내미는 동전 한 닢이 내일 온몸을 벌거벗기게 될 전조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오늘의 사례금 신고가 내일의 소득세와 법인세, 재산세, 나아가 세무조사의 칼날로 날아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종들을 노예로 끌고 가리라는 것을 누가 모른단 말입니까.
오 전능하신 주님.
하나님의 장부를 감히 누가 열어 본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영적 사업을 어찌 세속의 잣대로 잴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저들에게 이런 호소를 하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말이 돌아옵니다. 세금을 안 내려면 건강보험도 하나님한테 받고, 교통사고 위자료도 하나님한테 청구하라는 외람된 망언을 서슴없이 지껄입니다. 저희의 뒤를 이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외국에서 공부하는 저희 아들들의 학자금까지 하나님께 손 벌리라고 망발하기까지 합니다.
저들의 불경을 바로잡지 못하는 힘없는 저희를 용서하소서. 그리고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저들을 무지로부터 구하소서. 목회자들의 사례비를 근로소득으로 규정하면 부목사나 관리직원들 모두 노동자 신분이 돼 노동조합 결성으로 이어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성소인 교회가 갈등과 대결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저들을 일깨워 주소서.
자애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다행히 저희들을 악의 무리로부터 구할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있나이다. 저희들의 진심 어린 호소를 들을 줄 아는 유일한 집단인 국회의원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받드는 종들은 아닐지라도 선거에서 나타날 하나님의 심판을 크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과거 대통령 선거에서 “사탄의 세력이 정권을 잡지 못하도록 목숨 걸고 기도해야 한다”는 저희들의 설교가 얼마나 힘을 발휘했는지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하나님.
우리의 국회의원 친구들에게 용기를 주소서. 그들이 사악한 무리들의 힘에 굴복해 지금의 제 뜻을 철회하지 않도록 보살펴 주소서. 하나님께 경외심을 품고 있는 그들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소서. 몇 번이고 당선돼 종교인 과세라는 망령이 다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전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그들을 축복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나이다. 아멘.


이훈범 중앙일보 국제부장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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