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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감시사회, 계약은 온당해야 한다

중앙선데이 2014.11.30 03:47 403호 31면 지면보기
카카오톡에 ‘새 친구’들이 등장했다. 며칠 새 벌써 여남은 명째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 A. 그는 지난달 “정부가 빤히 들여다보는 카카오톡을 다신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는 스마트폰에서 카톡을 삭제하는 걸로도 모자라 텔레그램 전도사가 됐다. 그런 그가 다시 돌아왔다. 이유를 물었다. “텔레그램에 ‘친구’들은 많은데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은 없더라고. 일상 대화는 카톡으로 하고 중요한 얘긴 텔레그램으로 할 거야.”

검찰이 서버에 저장된 카카오톡 대화내용을 감청영장을 통해 확보하는 게 적법하다고 판단(본지 11월 23일자 1면)한 것을 두고 다시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 25일에는 국제거버넌스혁신연구소(CIGI)가 전 세계 24개국 2만3376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안전과 신뢰’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인 응답자 1000명이 포함된 조사결과에는 국민의 분노와 불안이 고스란히 담겼다.

“경찰이나 다른 국가기관이 몰래 인터넷 활동을 감시하는 것을 우려하는가”라는 질문에 ‘우려한다’고 답한 한국인은 72%(‘매우 우려스럽다’ 29%, ‘다소 우려스럽다’ 43%)였다. 우리나라보다 높은 우려를 보인 나라는 멕시코와 인도, 그리고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던 홍콩뿐이었다.

카톡 감청논란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A처럼 카톡으로 돌아온 사람도 적지 않다. ‘돌아온 자들’의 항변은 대체로 비슷하다. ‘배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혹은 불안감’이다.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2013년 저서 『유동하는 감시(Liquid Surveillance)』(국내 출판명 『친애하는 빅브라더』)에서 “현대인들이 권력에 의한 감시를 인식하고 우려하지만 국가나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로부터 배제되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이를 용인한다”고 했다.

미셸 푸코의 ‘판옵티콘(원형감옥)’이 현대 사회에서 ‘반옵티콘’(‘배제하다’란 뜻의 ‘ban’과 판옵티콘을 합성한 조어)으로 변화한다고도 했다. 판옵티콘이 처벌을 무기로 대중을 훈육하는 감시라면 반옵티콘은 시스템에서 적대적인 사람들을 배제하고, 용인하는 사람만 포섭하는 감시장치다. ‘감시와 처벌’에 ‘당근’이 더해지면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배제적 감시동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영국인들이 사생활이 노출되는 폐쇄회로TV(CCTV)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지지를 보내는 것도, 우리가 기업 서비스의 개인정보 제공 동의란에 기계적으로 체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감시에 순응하면, 무감해지면 ‘배제’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국가와 자본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포기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최소한 ‘자발적 복종’의 계약은 공정해야 한다. 사법기관과 수사기관에 의해 범죄 혐의와 관련 없는 제3자의 개인정보가 ‘뭉텅이’로 제공되는 건 공정하지도 온당하지도 않다. 카카오톡 감청논란이 여전히 우려스러운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이동현 사회부문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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