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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닮은 두 여인 그늘진 곳 향해 ‘동행’

중앙선데이 2014.11.29 02:03 403호 8면 지면보기
김씨가 영화 속 의상을 입고 인터뷰에 나섰다. 이씨가 부잣집 노부인 역에 맞춰 제작한 11벌 중 일부다. 그는 “선생님이 가장 우아하게 보이는 옷만 골랐다”며 웃었다.
배우 김혜자(74)와 패션 디자이너 이광희(62). 그들이 영화로 손을 잡았다. 내달 개봉하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감독 김성호)’에서다. 김씨가 맡은 역할은 부잣집 미망인. 그 영화 의상을 이씨가 맡았다. 대통령 영부인부터 대기업 안주인까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사모님 룩’을 만들어 온 그다. 하여 두 사람을 만나기 전부터 큰 줄기가 그려졌다. ‘국민 엄마’에서 우아한 여인으로 파격 변신한 스토리, 거기에 뒷받침된 귀부인 의상을 자연스레 엮는다는.

영화로도 인연 맺은 배우 김혜자와 디자이너 이광희

한데 막상 만나 보니 두 사람에겐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이번 영화를 하게 된 계기는 물론이고 각자 일에 대한 생각과 삶의 태도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을 고백했다. 인터뷰 내내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드러냈고, 대목대목 ‘너무 잘 맞는다’라는 표현이 나왔다. 두 시간 가까이 이뤄진 인터뷰는 물 흐르듯 흘러갔다. 패션과 연기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그들이었지만 일부러 제 3자가 나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없었다. ‘영혼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소울 메이트’가 바로 두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영화 ‘개를 훔치는…’에서 괴팍스런 미망인 역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가장의 실직으로 승합차에서 생활하게 된 한 소녀가 집을 얻기 위해 부잣집 개를 훔치는 이야기다. 여기서 김씨는 개의 주인인 노부인을 연기했다. 촬영이 열흘뿐이었던 조연이지만 김씨의 출연 자체는 화제가 됐다. 워낙 영화 출연이 손에 꼽히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연기 인생 45년 중 스크린 진출은 ‘만추’‘마요네즈’‘마더’ 그리고 이번 작품이 네 번째다.

심사숙고한 작품일 텐데, 어떤 점이 끌렸나요.
“제가 역할이 좀 미운 사람이죠. 괴팍스럽고 아무도 믿지 않아요. 그런데 전 그 여자 편을 들어주고 싶었죠. 마음을 닫았을 땐 그럴 법한 이유가 있겠구나, 라고요. 남편도 없고, 아들도 엄마와 싸우고 집을 나간 설정이에요. 그러다 어느 날 아들이 죽었다고 해서 가보니 그 옆에 개가 있어서 데려와 키우게 되죠. 아, 이 여자를 이해하게 되는 대사가 있어요.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조카가 일을 보는데 하도 잔소리를 하니까 그래요. ‘개가 사람보다 나은 게 뭔지 아니? 말을 안 해 말을.’ 다른 사람들 말에 상처 입은 여자의 마음을 표현한 건데, 사실 그 여자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 거예요. 말하자면 이 여자가 딱 우리들 같더라고요. 자기만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그런 깊이가 요새 나오는 영화들하고 좀 달랐어요.”

감독이 어떻게 러브콜을 보냈나요(영화 ‘마더’의 출연을 놓고 봉준호 감독이 4년간 구애와 설득을 했던 사연은 유명하다).
“지난 연말에 연극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하고 있었는데 감독님하고 제작자가 여러 번 왔어요. 그걸 보고 캐스팅을 했는지, 캐스팅하려고 찾아왔는지는 모르지만 그 연극과 이번 작품이 통하는 게 많다고 하더라고요. 일단 아이들이 주인공이고, 가난이든 죽음이든 어려운 상황에서 끝이 아닌 희망을 갖는 모습이 그려지죠. 11월에 대본을 받아두고 결정을 미루면서도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죠.”

왜 망설였나요.
“감독님이 맘대로 하면 된다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만날 서민 역할만 하다 상류사회를 하려니까. 까칠한 연기도 잘 못할 거 같고. 그런데 이광희씨가 ‘선생님, 할 수 있어요. 내가 옷으로 지원할 게’ 이러더라고요. 이 말도 해줬어요. ‘선생님 가끔 사람 말갛게 쳐다볼 때 얼마나 쌀쌀맞은 지 모르죠?’ 원래 광희씨가 (고객들에 관해) 입이 무거운 사람인데 ‘사모님들은 꼿꼿해요’라는 실질적인 조언도 해주고.”

엄마라는 역할을 벗어났네요.
“아뇨. 결국 그 여자도 엄마예요. 아들과 갈등을 겪고 상처 받는 엄마. 다른 형태를 보여줄 뿐이죠. 제가 엄마 아님 뭘 하겠어요. 왜 영화를 네 번 밖에 안 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것도 결국 같은 이유예요. TV에서 이미 웬만한 엄마를 다 보여줬는데, 뭐가 더 있나 싶은 거죠. 엄마로서 다른 접근을 할 수 있는 작품만 영화에서 하는 거예요.”

‘전원일기’ 때문에 엄마만 하니까 불만이 없었나요.
“저는 드라마 ‘전원일기’를 하면서 모든 걸 배웠어요. 사람에 대한 도리까지도요. 전원일기를 사람들은 농촌 드라마라고 하는데 아니에요. 시골 촌부지만 곳간에 가서 혼자 소주 먹으며 심리극 같은 독백을 하는 장면도 있었고, 전화 새로 들어온 날에 죽은 엄마랑 수화기 들고 통화하는 장면도 기억나요. 정말 형이상학적 이야기죠. 그걸 하고 나니 ‘모래성’ ‘겨울 안개’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같은 작품도 할 수 있었죠. 지금껏 연기 인생에서 역할이 모자라 못한 건 없어요.”

연기에 대해 ‘복잡한 인간의 심리를 단순하게 표현하기를 갈망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밥 먹고 화장실 가고 그런 걸 그대로 하는 게 사실적 연기가 아니에요. 손이 아니고 발로 밥을 먹어도 공감이 가면 사실적인 거죠.”
김씨가 잠시 뜸을 들이자 이씨가 대신 말을 이었다. “현실적인 걸 축적시키고 그걸 뛰어 넘어야 사실적인 연기가 된다, 그런 의미예요.” 김씨가 여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그런데 잘하지 못한 거 같아 사실 쫄아 있어요. 저는요, 누구하고 시사회도 안 가요. 혼자서 봐야 내가 뭘 잘하고 못했는지 정확하게 느껴요.”

지금껏 수많은 배역 중 가장 실제와 비슷한 역할은 뭐였나요.
“기자들은 참 이 질문을 좋아해요. 모든 역할이 다 나예요. 다 나한테 있는 걸 크게 해서 보여준 거죠. 인기가 있었던 것도 죽을 쑨 것도 최선을 다했으니 그뿐이에요. 누가 안 물어봐서 그렇지 작품 하나하나가 다 기억에 남아요.”

어두운 색감의 옷에 세련미 살리려 일일이 수작업
이씨는 이번 영화를 위해 11벌을 제작했다. 드라마 ‘사랑과 진실(1984)’에서 효선(원미경 역)의 옷을 제작하며 디자이너로서 처음 극중 의상을 협찬했던 이력을 30년 만에 되살린 것. 김씨가 대본을 받아들고 올 때부터 의상을 고민했다고 했다. “욕심이 났어요. 지금껏 알려진 엄마의 모습 말고 좀더 여성적인 모습을 만들어드리고 싶었죠. 배우로서 이미지를 확 바꾸는 계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배역을 어떻게 해석하고 디자인했나요.
“선생님과 얘기를 많이 했죠. 도도하고 냉정하지만 속 깊이엔 따뜻함이 있는 여자라는데 공감을 했어요.”
듣고 있던 김씨가 “이번 작품에서 의상 덕을 많이 봤다”고 한 마디를 보탰다. 극중에서 여자가 강아지가 없어진 걸 알고 슬퍼하는 장면이 특히 그랬단다. “베이지색에 금자수를 놓은 옷인데, 모든 걸 잃어버렸다고 상심하는 연기에 참 감정 몰입이 됐죠. 예쁜 옷이 아니라 왠지 나이 들어 보이고 힘이 빠져 보이는 옷을 만들어줬어요.” 그러면서 몸을 뒤로 돌려 옷감을 길게 늘어뜨린 등판을 보여줬다. 창가에서 뒷모습을 비추는 장면에 입는 옷인데, 그걸 염두에 두고 이걸 만들었단다. “디자이너 머리가 다 빠졌겠다 했어요.”

의상 제작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영화 얘기를 너무 일찍 들었다는 게 심란한 일이었죠(웃음). 역할 자체가 미망인이고 노부인이라 우울한 느낌을 주려면 색깔이 제한적이었어요. 감독님도 딱 검정색을 원했고요. 그러니까 검정으로 우아하면서도 카리스마를 살려야 하는데, 사실 이 색깔이 화면상에서 디테일이 살아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더 많이 하나하나 손바느질을 해서 비즈를 달고 신경을 썼죠. 완성까지 두 달 정도 애를 썼어요.”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은요.
“다 맘에 들어요. 다 노력해서 만든 거니까. 노력했는데 반응이 안 좋았다 뿐이지 장면에 따라 최선을 다했어요. 이런 게 참 선생님하고 비슷해요. 다른 사람 평가는 별 관심 없어요. 일이 끝나고 나서 죽을 듯이 고갈되면 잘 한 거고, 아직 힘이 남으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거죠.”
“맞아요. 뭘 하면 거기에 빠져서 끝나고 나면 앓아야 해요.” 김씨가 얼른 말을 받았다.

8년 전 첫 만남 …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하는 사이로
하루에도 몇 번씩 문자와 통화를 주고 받는다는 두 사람은 8년 전 처음 만났다. 어느 날 김씨가 전화를 걸어 와 “저 (매장에) 가도 돼요?”라고 물어온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김씨는 이전까지 경기여고 동창인 이신우 디자이너에게만 옷을 해오다 ‘전향’을 했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니 통하는 게 많았다. 종교(기독교)는 물론이고, 생활 습관이나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비슷했다.
특히 ‘잔가지 없는 삶’이 똑같았다. 둘 다 일과 봉사, 딱 두 가지로 살았다. 김씨는 1991년부터 구호단체 ‘월드비전’의 홍보대사를 맡아 나눔을 전하고 있고, 이씨는 2011년 ‘희망의 망고나무(희망고)’를 설립, 남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에 3만여 그루의 망고나무를 심었다. 2012년에는 ‘희망고빌리지’를 열어 농업교육, 재봉교육 등으로 남수단 주민들의 교육과 자립을 돕고 있다. 이씨가 나눔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2009년 김씨의 아프리카 일정에 함께하면서부터. 처음엔 ‘두 번 다시 올 데가 아니구나’ 했지만 돌아와서는 뭔가 해야할 곳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우연한 동행에서 일이 커졌네요.
“남수단이 당시만 해도 상상하는 아프리카 그 이상으로 낙후됐죠. 선생님이 월드비전팀이랑 경비행기로 가는데 딱 한 자리가 남았다기에 제가 간다고 했어요. 거기서 뭐하시나 궁금하기도 했고요(이씨).”
“사실 우연이 아닐 수도 있어요. 그때 제가 가자고 해놓고 두 번이나 연기를 했거든요. 원래 1, 2월에 가려고 했던 걸 3월 중순이 돼서야 떠났어요. 디자이너 입장에선 성수기에 일을 놓고 가는 건데도 광희씨가 아무 소리 없이 따라갔어요. 약속 지키는 걸 보고 저 사람 참 대단하구나 했죠.(김씨)”

봉사활동으로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저는 그게 봉사라고 생각 안 해요. 가서 보면 그런 애들을 어떻게 모른 척해요. 내 재산을 다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전 그들을 모르고 산 게 죄인처럼 느껴졌어요. 그니까 봉사가 아니라 도리죠. 처음엔 한 달은 밥도 안 넘어가고 예쁜 가방을 봐도 못 샀죠. 이 돈이면 몇 명을 살리겠나 싶어서. 나도 얻는 게 많아요. 거기 가면 서울에서의 고민이 참 쓰레기구나, 참 웃기는구나 그래요. 영혼이 맑아져요. 그러니까 가는 거지, 내가 무슨 천사라고. 눈 감고 누우면 천장에서 애들이 빙글빙글 돌아요. 가서 심장에 사진을 찍고 오니까. 그래야 내가 더 설명을 잘 해줄 수 있으니까요.”
김씨 얘기를 듣고 있던 이씨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또 운다’는 김씨의 핀잔을 듣고 눈물을 훔친 그가 한 마디를 더했다. “저도 이건 봉사가 아니라 사람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봐요. 마음에 와서 박힌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는 거죠.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책임이기도 하고요. 나이 들면 좀 느슨해지는 게 인지상정인데 그래서 선생님이나 저나 더 열심히 일하게 돼요. 본업에 충실해야 저희의 다른 활동도 더 관심을 가져줄 테니까.”

실제로 이번 영화를 통해 각자의 재능을 쏟은 두 사람은 ‘도리’를 위한 또 다른 일을 도모한다. 김씨의 영화 러닝 개런티 수익을 희망고 사업에 쓰기로 한 것. 남수단 현지에 현지 영어 성경학교를 세울 계획이라고 했다. 어느새 소울 메이트에서 러닝 메이트가 되려는 그들이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올댓시네마 촬영협조: 정샘물 인스피레이션(메이크업·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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