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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향기 그윽한 디지털 신세계

중앙선데이 2014.11.29 02:41 403호 22면 지면보기
벨기에 기업 ‘머터리얼라이즈’는 1990년대부터 3D프린팅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제공해온 선도적 기업이다.
서울디자인위크2014(www.seouldesign.or.kr)가 11월 26일부터 30일까지 DDP와 COEX, 도심 곳곳에서 개최됐다. 이번 행사는 ▶서울의 디자인 명소를 길따라 여행하는 ‘서울디자인스팟 투어’ ▶디자인하우스의 ‘서울디자인페스티벌’ ▶헤럴드디자인포럼 등 주요 디자인 관련 행사를 묶어 시너지 효과를 노렸다. 또 생활 디자인 제품 및 웰빙푸드를 파는 ‘디자인 마켓’과 명사들이 서울의 디자인에 대해 담론을 나누는 ‘디자인 세미나’도 화제가 됐다. 이중 COEX 행사를 다녀왔다.

2014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을 가다

1, 2 ‘머터리얼라이즈’의 제품들. 3, 4 이탈리아의 3D프린팅 패션·인테리어 브랜드 ‘비쥬엣&엑스노보’의 조명기구들
5 이탈리아 액세서리 브랜드 maison203의 팔찌
3D 프린터 만능 시대에도 마무리는 ‘사람’
“3D프린터로 못 만드는 게 없다는데, 대체 어떻게 만든다는 거야?”

최근 ‘제 3의 산업혁명’이라는 3D프린팅 기술이 인구에 회자되면서 누구나 한번쯤 가져봤을 의문이다. 2014 서울디자인페스티벌(11월 26~30일 COEX)에 가면 그 의문을 풀 수 있다. 올해 13주년을 맞은 이 행사는 ‘균형 잡힌 삶을 위한 건강한 디자인’을 주제로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빛나는 아이디어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매년 가장 중요한 디자인 이슈로 꾸미는 ‘월간DESIGN 특별전’으로 선보인 것이 3D프린팅 디자인. 공업용으로 알려진 3D프린팅이 디자이너와 만나 어떤 생활제품을 만들 수 있는지 가깝게 보여줬다. 정교한 수공예품 같은 조명기구, 오트 쿠튀르 패션쇼에서나 볼 법한 레이스 드레스도 한땀 한땀 사람 손이 닿았을 것 같지만 모두 3D프린터로 단칼에 뽑아낸 것이란다.

믿기 어려웠지만 디자인 랩 카페에서 그 공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 기술력을 보유한 캐논코리아가 화장품 냉장고만한 크기의 개인용 데스크톱 3D프린터를 이용해 시범을 보였다. 3D모델링이 가능한 소프트웨어로 그래픽 파일을 만들어 프린터에 전송만 하면 끝.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국수가락 모양의 플라스틱 소재가 가는 튜브로 들어가 200℃의 노즐 입구를 지나 녹아나오면 바닥부터 얇은 층이 쌓여가며 조금씩 입체가 된다. 2분 예열 후 노즐이 한바퀴 왔다갔다 하니 바닥에 밑그림처럼 실루엣이 잡히더니 30분 만에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가 완성됐다.

누구라도 디자이너가, 제조업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설렘에 ‘디자인의 민주화’라는 말이 비로소 이해가 갔다. 캐논코리아 관계자도 “디자이너들이 프로토타입을 만들거나 건축설계사들이 모형을 만들 때 많이 사용해 왔지만 점차 개인 사업자들의 사용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편리해서 좋지만 공작시간에 서툴게 석고를 파고 찰흙을 뭉쳐보던 아날로그 감성이 무뎌지는 것 아닐까’ 싶은 순간, 완성은 반드시 인간의 손에서 이뤄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뉴욕 MoMA에서 판매중이라는 이탈리아 액세서리 브랜드 maison203은 깃털처럼 가벼운 나일론 소재를 써서 주물로는 도저히 찍어낼 수 없는 자유로운 디자인을 프린터로 뽑아내지만, 25년간 수작업으로 액세서리를 만들어온 장인이 마무리를 해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얘기에 왠지 마음이 놓였다.

6 잡화브랜드 ‘로우로우’ 7 ‘아이케이에스케이’의 어린이 디자인 제품 8 조명브랜드 ‘꼬마’의 1인가구를 위한 조명 9 ‘휴플레인’의 식탁 매트
약자를 위한 훈훈한 디자인이 대세
놀라운 디지털 기술에 긴장된 기분을 치유해주는 건 네덜란드 디자이너 10인을 초대한 글로벌 콘텐츠관의 ‘건강한 디자인’전이다. 100세 시대를 맞는 실버세대의 삶이 자칫 외롭고 불편해질까 배려하는 훈훈한 아이디어에 마음이 절로 누그러진다.

레몬향을 첨가한 600kg의 천일염을 바닥에 쏟아놓은 거대한 설치작품 ‘후각의 침대’가 공간을 압도한다. 누웠다 일어나면 옷에 향기가 스며들어 오랫동안 휴식의 기분을 유지시켜 준다. 관람객들도 직접 누워 볼 수 있다. 옷에 묻은 소금을 터는 브러쉬까지 준비한 디자이너 하름 렌싱크는 “도시에 사는 현대인에게 편안함을 주기 위한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요실금 기저귀를 대체하는 보호속옷도 눈길을 끈다. 고급스런 소재의 속옷에 특수섬유로 만든 앙증맞은 흡수패드의 탈부착이 가능하다. 디자이너 쥴리아 반 잔텐은 “성인이 기저귀를 착용할 때 느끼는 부정적인 정서와 심리적 고통을 덜어주는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스튜디오 투르의 움직이는 조명 ‘Vivid’는 구름 모양 쿠션처럼 푹신한 조명등을 툭 치면 부르르 몸을 떠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냈다. 내부의 자동제어장치가 움직임을 감지하면 조명등도 움직이는 원리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느낌을 주는 따뜻한 디자인이다.

매년 하나의 주제로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개성을 표현하는 ‘디자이너스 랩’은 ‘18세기 파리로의 타임 슬립’을 테마로 했다. 12월 3일부터 예술의전당에서 최초의 해외 투어를 갖는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 전시를 기념하는 특별전이다. 프랑스 명품 디자인의 기원이 되는 18세기 파리 귀족들의 예술과도 같은 일상을 18명의 우리 아티스트가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오브제들이 흥미롭다. 장응복 작가는 화조도 지장에 로코코 문양을 새겨 넣었고, 한복 디자이너 김영진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복을 주문한다면?’이라는 컨셉트로 베르사이유 궁전에 걸맞게 화려하게 튜닝된 한복을 선보였다.

한국문화콘텐트의 세계화를 위해 기획된 한국 콘텐츠관은 불교문화상품 브랜드 ‘본디나’가 꾸몄다. 공간디자이너 마영범이 ‘비움’의 불교정신을 토대로 디자인한 공간에 우리 사찰만이 가진 고유의 문양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생활문화상품이 빼곡하다. 용문사, 기림사 등 실제 사찰을 수놓은 단청과 꽃살문이 16가지 모던 패턴으로 재탄생해 세련미를 뽐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아이디어도 빛났다. 사회적 기업 ‘삼분의이’는 자폐아와 새터민, 다문화가정 등 특수환경 아동들의 미술치료를 사업으로 연결, 예술적 재능을 펼칠 기회로 활용한다. 교육받은 아이들의 작품을 토대로 제작한 디자인 상품을 팔아 수익금을 다시 교육에 투자하는 시스템. 서툰 솜씨지만 순수한 마음이 담겨 더 아름다운 문구류를 만든다.

소셜 벤처기업 ‘마리몬드’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심리치료를 받으며 만든 압화 작품을 패턴으로 이용해 제품을 만들었다. 수익금은 위안부 역사관 건립 기금으로 사용한다. 놀랄만큼 화사한 꽃무늬들이 할머니들의 어두운 과거까지 치유해주는 느낌이다. 또 잡화브랜드 ‘로우로우’는 노숙자들의 자립을 돕는 잡지 ‘빅이슈’ 판매자들이 ID카드와 단말기, 돈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유니폼과 택배기사들에게 최적화된 가방을 선보였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혼재된 첨단 디자인 아이디어의 향연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다양한 인간에 대한 배려’였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디자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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