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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혁신 주도” 강박 벗어나 시민 의견에 귀 기울여야

중앙선데이 2014.11.30 00:42 403호 6면 지면보기
전문가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국가관에서 높게 평가한 측면은 ‘원칙’을 지키려는 의지와 실행력이다. 김의영 서울대 교수는 “정치인은 표가 떨어질까봐 위험한 개혁은 하지 않는다. 인기가 있는 이익 국면에선 더욱 그렇다. 박 대통령은 현재 지지율이 50% 내외라 이익 국면에 있는데도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당장의 인기 대신 미래를 내다보고 행동에 옮기는 실행력도 평가할 만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국가 혁신 성공하려면

“다른 정치인에겐 없는 박 대통령 결기”
양승태 이화여대 교수도 “박 대통령에겐 다른 정치인에게 보기 힘든 결기가 있다”고 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결여된 공인 의식을 가진 점도 박 대통령에 대해 평가할 점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연금 개혁에서 보여지듯 사적 이익을 공적 이익으로 전환시키려는 대통령의 의지를 보좌진이 전략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하지만 국가 혁신(개조)의 방법론에 있어선 우려의 목소리가 강했다.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서 보듯 특정 집단(관료)을 낙인찍거나 모멸감을 주는 식의 국가 개조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저항이 거셀 뿐 아니라 설사 개혁안이 통과돼도 후유증이 크다는 것이다. 개조 대상 집단의 양보를 얻으려면 그들 편에서 얘기를 찬찬히 듣고 설득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현진 서울대 교수도 “국가 개조는 늘 연속선상에 이뤄진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이뤄지면 사학·군인 연금도 손대야 한다”며 “향후 30년간 국가연금 조정안을 마련해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다른 국가 개조 사안들도 30년 시나리오를 제시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원론적인 측면에서 박 대통령의 국가관과 국가 개조를 환영했던 이필상 전 총장은 각론에선 “국가 개조의 내용이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일자리 창출과 금리 인하로 경제를 활성화한 뒤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게 국가 개조 순서”라며 “그런데 박 대통령 정부는 복지를 띄우고 창조경제를 강조하다가 잘 안 되니 돈풀기로 전환했다. 순서가 부적절하고 인기영합적”이라고 말했다.

한칼에 해결되는 건 없다
박근혜 정부 1기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일했던 A씨는 이런 에피소드를 전했다. “지난해 8월 말쯤으로 기억한다. 수석비서관회의 끝 무렵에 대통령이 ‘여러분이 이렇게 고생하는데 저 역시 편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돌이켜보니 지난 6개월간 이틀만 쉬었더군요. 조금 더 분투해 주시기 바랍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열정만큼은 존경했지만 숨이 턱 막혔다.”

박 대통령이 사리사욕을 취하지 않고, 진정성을 갖고 있는 스타일이란 점에는 전문가도 대체로 동의했다. 초대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냈던 김광웅 명지전문대 총장은 “청와대에서 권력의 최정점에 있다 18년간 고독한 시간을 보낸 극과 극의 삶이 박 대통령의 내면을 단단히 다져놓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국민을 어떻게 하면 모두 잘살게 하느냐는 생각 외에는 다 번뇌”라고 밝힌 대통령의 심경을 레토릭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의욕이 부작용이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이재열 서울대 교수는 “세상은 글로벌화됐고, 개인의 자율성은 높아졌다. 모든 문제는 고질적이며 구조적이다. 한칼에 해결되는 건 이젠 하나도 없다”고 강조했다. “수도 이전, 대운하, 무상복지는 표를 따낼 수 있는 깜짝 공약이다. 달콤하지만 몸에는 안 좋다. 반면 국가 혁신은 쓴 약이다. 긴 호흡을 갖고 방향을 정하고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광웅 총장도 “정부가 무엇인가 해줄 수 있다는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셸 푸코의 말을 인용해 “범죄자를 잡아 넣기 위해 교도소가 생긴 게 아니라 교도소 때문에 범죄자가 생긴다”고 했다. “조직이 생기면 문제가 풀린다는 건 착각이다. 조직원들은 자신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집착하는 게 생리다. 그런데도 국가 개조의 해답으로 인원이 1만 명에 달하는 공룡조직 국민안전처를 만든 건 관료주의에 함몰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필상 교수는 더 신랄했다. “관피아 척결을 외치면서 국민안전처·인사혁신처를 신설하는 등 관료주의에 포위돼 있으면서 관료를 과연 혁신할 수 있겠나. 말만 거창하고 국가 혁신의 추진 주제가 불명확하다. 대통령의 국가 혁신 의지마저 의심스럽다”고 했다.

임현진 서울대 교수는 “최근 박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암덩어리, 원흉에 이어 단두대란 말까지 나왔다. 표현이 거칠어지는 건 어젠다가 진척이 안 돼 조급해졌다는 증거”라며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임기 내 국가 개조의 기반만 다져도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좌승희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박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대를 참조할 것을 제언했다. “1960~70년대 한국은 고도 경제성장과 계층 간 동반 성장이 함께 달성된 이례적 시기였다. 박 전 대통령이 좋은 성과를 우대하고 나쁜 성과를 깎아내리는, 신상필벌의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개인은 무조건 악도, 무조건 선도 아니다. 경기 규칙을 따를 뿐이다. 불평등의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위험이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며 “박정희 시대 이후 30여 년간 나쁜 성과를 내도 감싸는 온정주의가 국가 시스템을 멍들게 했다. 국가 개조란 인센티브 구조를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 내용 없이 혁신 화두 던져 아쉬움
좌 교수는 “어떤 것을 개조할 것인지 구체성이 떨어지면 포퓰리즘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양승태 교수 역시 “구체적 내용이 완비되지 않은 채 국가 개조란 화두부터 던진 건 아쉽다”고 했다.

최근 이슈로 부상된 정규직-비정규직 문제에 김병준 교수는 “정규직은 안정성이 보장돼 적게 가져가도 되지만 비정규직은 불안하니 더 가져가야 하는 게 상식”이라고 전제했다. “하지만 한국에선 강성노조로 인해 정규직이 10중 7~8을 가져간다. 정규직이 자기 몫을 내놓는 게 싫으니 ‘비정규직을 없애라’고 기업과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안정성만큼 유연성도 필요한 게 노동시장이다. 시장의 왜곡된 분배를 바로잡는 게 국가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론 정부 일방향이 아닌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협치)를 통해 국가 혁신의 내용을 채워가야 한다는 조언이다. 김의영 교수는 “식견 있는 시민은 이제 투표만으론 만족하지 못한다. 그들을 촛불집회에 나가게 방치하지 말고 끌어안을 때”라며 “과도하게 정치화된 시민단체는 거리를 둬야 하지만, 위에서 지시하기보다 보통 시민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는 상향식 리더십으로 국가 개조를 재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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