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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혁신 성공 조건은 대처 같은 혁명적 지도자의 출현

중앙선데이 2014.11.30 00:50 403호 8면 지면보기
영국의 국가 개혁을 주도했던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1989년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당원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편집장 존 미클레스웨이트는 어젠다를 설정하는 기자다. 국제정치·경제 관련 소식과 학술 연구, 통계를 종합해 하나의 아이디어를 생산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뉴욕타임스는 그에게 ‘아스펜(Aspen)맨’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아스펜전략그룹·다보스포럼·테드(TED) 같은 국제 모임의 단골 초청 연사로 세계 정·재계 인사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에게 국가란] 이코노미스트 편집장이 말하는 국가와 혁신

그가 올 초 『제4의 혁명:국가개조를 향한 글로벌 경쟁』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지난 세기 서양이 세계를 이끌었던 건 효율적인 정부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날 서구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은 모두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정부를 개혁(reinvent)하는 것이 그 어떤 사회 현안보다 시급하다”며 “혁명적인 개혁을 통해 정부를 효율적으로 만들고, 자유와 창의에 입각한 확고한 국정철학을 세우지 못하면 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존폐 위기에 놓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관료·정치인 제 역할 못해 국가 위기
-왜 국가 혁신, 정부 개혁이 가장 시급한 사안인가.
“미국·유럽·일본 등 서구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이른바 선진국들은 지금 모두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정부·관료·정치인이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 나라들의 불행한 국민은 ‘정부를 어떻게 바꿀 수가 있겠느냐’며 체념하고 있다. 국가에 대해 국민이 체념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고,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국가의 존폐가 갈릴 수 있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정부를 ‘국민의 하인’이라고 했다. 국민 뒤치다꺼리를 하라고 시청 직원·관료·국회의원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국민 생활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관심사에 매몰돼 있다. 그러다 보니 중국 같은 권위주의 국가가 ‘우리 모델이 더 낫다’고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서구 민주주의에서 국가의 개념은 세 번의 혁명과 혁명에 근접한 절반의 시도로 진화돼 왔다. ▶17세기 유럽 근대국가의 탄생 ▶18~19세기 자유방임주의 ▶20세기 초반 복지국가, 그리고 그것의 역작용을 막으려 한 대처·레이건의 신자유주의다. 그래서 내 책 제목이 『제4의 혁명』이다. 지금도 이 같은 혁명적인 국가개조가 가능하다.”

미클레스웨이트의 정부 개혁 해법은 크게 ‘효율성’과 ‘국정 철학’으로 나뉜다. 과세체계와 연금 개혁, 적재적소의 민영화 등을 통해 정부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는 최고 수준으로 제공하되, 못하는 것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민간에 넘기라는 것이다. 또 서구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은 시스템만 잘 작동하면 개혁과 궤도 수정이 용이하기 때문에 자유·창의·투명성 등의 가치를 정책적으로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좌파 평등과 우파 효율엔 상당한 교집합
-정부의 효율만 강조하면 날로 심화하는 양극화·불평등 문제는 어떡하나.
“불평등의 문제는 공정성의 문제로 귀결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세금 내기를 꺼려 해외에 법인을 세우는 기업들을 비판했다. 프랑스의 부유세, 영국의 저택세가 시행된 후 그 나라 부자들의 행태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도 아무것도 안 하고 부자가 된 ‘태자당’에 대해 국민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그래서 공정성이 중요하다. 흔히 평등의 문제를 좌파와, 효율의 문제를 우파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둘 사이엔 상당한 교집합이 있다. 불평등의 근원을 찾아 들어가면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있다. 그러니 공교육·건강보험 등에 집중하고 효율적으로 만들어 강화하면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 정실 자본주의는 결국 정부의 자원을 잘못 배분하는 것이다. 미국에선 최상위층 5%의 모기지 세금 공제가 하위 50%를 위한 공공주택 예산보다 많다. 비효율과 불평등의 전형이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공정성이 충돌한다는 것은 매우 좋은 지적이다. 하지만 넘어서지 못할 갈등이 아니다. 효율적인 정부는 결국 평등한 사회를 만든다고 나는 생각한다.”

-혁명적인 국가개조는 어떻게 일어날까.
“첫 번째는 혁명적인 지도자의 출현이다. 사회와 정부 내에 충격을 주고, 위험과 비판을 무릅쓰고 기존 시스템을 확 바꿔버릴 수 있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같은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정부가 파산 지경에 이를 때다. 1990년대 스웨덴이 좋은 사례다. 아무 생각 없이 하던 대로 복지에 예산을 들이붓다 위기에 봉착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67%까지 올라갔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온 나라와 좌우 정치권이 힘을 합쳤다. 여전히 가난한 사람을 중시하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민간 참여를 독려하는 등 복지의 조달 방식에 대해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됐다. 세 번째는 다른 사례를 통해서다. 시카고의 인프라 투자, 인재를 빨아들이는 런던, 세계 최고라는 싱가포르의 공공서비스 등 여러 도시들을 보면 창의적인 국가의 역할이 보인다. 80년대 내가 미국에 처음 갔을 때 공항에선 미국산 렌터카를 줬다. 하지만 미국 차는 고장이 잘 나서 그 다음부턴 일본 차를 달라고 했다. 지금은 차종 간의 차이가 없어서 아무거나 달라고 한다. 차이가 경쟁을 통해 사라진 것이다. 공공부문을 보자. 각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비슷한 인구 분포와 비슷한 자산을 보유하고도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낳는다. 그런 국가 간 차이가 정보 공개 등을 통해 더 도드라지고 사람들이 그걸 빨리 보고 느낄 수 있다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혁명적인 변화의 여론을 조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쟁은 정부 사이에도 일어나고 있다.”

민주주의와 개방 이룩한 한국 흥미로워
-당신은 책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할애하며 ‘대안 모델’로 치켜세웠다. 중국 정부가 좋은 정부인가.
“중국의 부패와 인권 문제 등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다. 그리고 ‘아시아 모델’은 거의 모든 부문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는 싱가포르에 더 중심을 두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나 중국은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몇 가지를 잘했다. 예를 들어 권위주의 정권이지만 10년에 한 번씩 주기적이고 상당히 안정적으로 리더를 바꿔 책임을 강화했다. 이게 그냥 독재와는 다른 점이다. 능력을 기반으로 정부 최고위층을 선출한다는 얘기다. 중국엔 정말 많은 문제가 있고 어떻게 보면 그 많은 문제가 이제야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서구 민주주의가 지금처럼 죽을 쑤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하나의 통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서양이나 서양 식민지가 아니었던 나라 중 서구식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경제발전도 이룬 나라는 일본과 한국 정도다.
“민주주의와 개방경제에 대한 한국의 자세는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바뀌게 됐는데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국민이 정부의 비효율과 비민주성을 못 참게 된다는 측면에서 한국의 사례는 중국에 있어선 큰 도전이다. 일본의 정치는 매우 무기력하다. 변화하기가 너무 어려운 구조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가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서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결국엔 해결해보자고 나서는데 그게 아베 총리라고 생각한다. 권위주의 중국과 싱가포르가 효율적인 정부를 외칠 때 한국과 일본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통해 더 좋은 정부를 만든다면 세계의 모범이 될 것이다.”



존 미클레스웨이트(John Micklethwait) 196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 맥덜린 칼리지에서 역사학 전공. 졸업 후 2년간 체이스맨해튼은행에서 일한 뒤 87년 이코노미스트에 입사. 경제 에디터, 미주 총국장 등을 거쳐 2006년 편집장 취임. 2010년 영국잡지편집장협회 ‘최고의 편집장’상 수상. 세계 지도자들의 비밀 모임 ‘빌더버그 회의’ 참석. 저서 『The Right Nation:Conservative Power in America』 등 다수.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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