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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지도자는 천년, 기업인은 백년을 설계”

중앙선데이 2014.11.30 01:36 403호 12면 지면보기
김재열 SK 부회장은 “지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최종현 회장의 말에 영향을 받아 고려대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춘식 기자
한국고등교육재단(kfas.or.kr·이하 재단·사무총장 박인국)이 26일 설립 40주년을 맞았다. 고(故) 최종현 SK 선대 회장이 설립한 장학·연구 후원 재단이다. 재단 장학금으로 하버드·시카고·스탠퍼드 등 아이비리그급 대학에서 620명의 박사가 배출됐다. 그중 노벨상에 접근하고 있는 학자들도 있다. 재단의 초대 사무총장으로 현재 SK 부회장인 동반성장위원회 김재열(68) 위원장을 27일 인터뷰했다.

한국고등교육재단 초대 사무총장 김재열 SK 부회장

-어떤 경위로 입사한 것인지.
“지도교수가 ‘최 회장이 장학·연구 지원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참여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당시 취직이 쉬운 일이 아니라 무조건 ‘네’ 하고 면접 보러 갔다. 이미 사업에 동참할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셨기 때문에 면접이라기보다는 구상을 설명해주시는 자리였다. 이런 말씀이었다. ‘우리나라가 기술·자원·경험이 부족해 이래 가지고는 후진국을 면하지 못한다. 고도 지식사회로 전환하면 세계적인 1등국가가 될 수 있다. 원래 5000년 문명 국가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이 되려면 세계적인 학자들을 양성해야 한다. 일생을 다 바쳐야 하는 일인데 하겠느냐.’ 저는 백년은 잘 모르겠고 당장 취직해야 했기에 ‘네,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회장께서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하셨다.”

-최 선대 회장이 입버릇처럼 한 말은.
“국가와 기업과 국민은 한 몸이다’라는 것이다. 또 ‘국가 지도자는 천년을 설계하지만 기업인은 한번에 백년씩 설계한다’고 하셨다.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예로 들었다. 유대민족이 전 세계 정치·경제·문화·사회 모든 영역에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비결은 고도의 지식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결코 유대민족보다 못한 민족이 아니기에 우리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맨땅에 헤딩’하는 작업은 아니었는지.
“지시가 굉장히 구체적이었기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항상 회장의 아이디어에 감탄하고 감동으로 배우고 지시대로 따라 하면 됐다. 기업보다 나라를 생각했기에 재단 이름도 SK장학재단이 아니고 ‘한국고등교육재단(Korea Foundation for Advanced Studies)’이다. 아인슈타인·촘스키·케넌 등의 연구 근거지였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The Institute for Advanced Study)’에서 영감을 받아 작명했다. 인류의 이상적인 미래를 위한 담론을 토론하는 집합소를 만들려고 한 것이다.”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구상이다.
“최 회장은 지속 가능한 연구 지원을 위해 땅을 사 나무를 심었다. 평소 ‘사람과 나무는 정성을 들이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수익성 높은 나무를 심고 30년마다 100만 평씩 벌목을 하면 영원히 연구비를 댈 수 있다는 구상이었다. 기업 사정이 어려우면 땅을 팔 수도 있기 때문에 일부러 깊은 산 속 5부 능선 이상에 땅을 사서 식수했다. 원래 계획인 3000만 평까지는 못 사고 1300만 평 정도의 땅을 샀다. 우리나라에서 최대 규모였지만 명동 땅 200평 가격도 안 됐다. 재벌의 부동산 투기라는 엄청난 비난을 샀기 때문에 정부에서 ‘오해받을 수 있으니 그만 사라’고 할 정도였다. 최 회장은 ‘산은 밭이다’라고 봤다. 서울대 임학과에 연구 용역을 주어 ‘잘 자라고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나무가 뭐냐’고 연구하게 했더니 결론은 블랙월넛(black walnut)이라는 호두나무였다. 직선으로 쭉쭉 성장하는 고급 가구재다. 당시 산림청 정책이 나무를 심는 게 급선무라 나무를 베고 고수익 나무를 심는 것을 못하게 했다. 최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취지를 말씀드렸더니 ‘정말 훌륭한 생각이다’며 산림청에 지시해 수종 교체 허가가 났다. 지금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다. 한데 우리나라 인건비가 올라 호두를 딸 수 없게 됐다. 대신 우리나라 다람쥐와 청설모의 본거지가 됐다.”

-최장집 교수가 재단 박사 1호인가.
“최장집 선생은 일종의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유학을 갔다. 정규 프로그램 박사 1호는 서울대 사회학과 정진성 교수다. 84년 정 교수가 시카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자 회장께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재단에 오셔서 논문 발표회를 직접 들었다.”

-가까이서 본 최 선대 회장은.
“굉장한 이상주의자이자 실천주의자다. ‘과학 경영’을 실천했다. 이론과 논리를 중시했다. 전통을 중시해 반려자 박계희 여사에게는 사서오경을 독파하도록 독려했다.”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1년간 연수를 받게 했는데. 최 회장이 직접 지시했는가.
“그렇다. 상세하게 지침을 줬다. 우리나라의 비교 우위가 뭔지 알려면 전통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유학을 떠나기 전에 한문을 공부하게 했다. 미국 대학 강의계획서에 나오는 책과 논문제출자격시험 문제를 재단 도서관에 비치해 예습하게 했다. 문화적 차이 등의 이유로 ‘그래도 모자란다’는 게 최 회장의 생각이었다.”

-재단이 없었더라면 아이비리그급 대학에 우리나라 학생들이 입학 허가를 받는 게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렇다. 재단 설립 초창기에는 하버드대에 한국 학생이 거의 없었다. 재단 유학생들을 1, 2명 받다 보니 모두 우수하니까 한국 학생을 더 많이 받게 됐다.”

-지금 하는 일은.
“선대 회장에 이어 최태원 회장의 경영 철학을 구현하고 있다. 특히 미래 자본주의 사회가 필연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 특히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재단은 최태원 회장의 구상에 따라 활동 영역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향하고 있다. 동서문명의 화해와 교류, 인류 공동 번영을 모색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최 선대 회장은 우리 문화를 보이지 않게 바꾸었다. 최 회장이 화장을 선택한 것은 당시 신선한 충격이었다. 최태원 회장의 둘째 딸이 해군에 입대했다. 항상 자신의 회사 이전에 인간과 국민을 우선시한 최 선대 회장의 유지가 실천되고 있는 것이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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