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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강박증의 실체

중앙선데이 2014.11.30 02:42 403호 22면 지면보기
“하루에도 두 시간씩 청소하는 데 몰두합니다. 그래도 집안이 더럽다고 느껴져요.”

강박증 환자들의 호소다. 불필요한 일이라도 그 행동을 반복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수시로 횟수를 확인하고 몇 시간 동안 몸을 씻는다. 쓸 데 없는 물건도 버리지 못하고 모으며, 아침에 일어나 정해진 순서대로 먹고 씻지 않으면 외출을 못한다. 이러니 생활이 어렵다. 요새 갑자기 강박증상이 병적(病的)으로 심해진 사람이 부쩍 늘었다.

강박증상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실은 모두 갖고 있는 행동들이다.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평균 이상으로 깔끔할 수 있다. 반대로 지저분하게 지내도 별로 힘들어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정확하고 깔끔하며 완벽하게 처리하는 사람은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이와 같이 우리 모두는 커다란 스펙트럼 안에 있다.

강박증상이라 할 만한 수준이 되는 것은 그것이 정상범위에서 용납할 수 있는 수준 밖에까지 뻗어 나가버린 상태다. 왜 저렇게 심할 정도로 강박적인 행동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일까. 나는 전반적 사회 불안 수준의 상승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러스트 강일구
강박증상 자체를 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을 갖고 있다. 씻기·확인하기·모으기·정돈하기가 모두 우리의 ‘안전’과 관련한 행동이란 것이다. 만약 하지 않으면 더러움, 정돈이 안 됨, 흐트러짐, 순서를 알 수 없게 됨 등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병원에선 감염예방과 진료의 프로토콜(protocol·규칙)을 강박적으로 중시하고 군대에선 위계질서와 정리정돈을 신병 때부터 각인시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강박증상이 심해진다는 것은 ‘알 수 없지만 뭔가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신호를 받아들인 뇌가 어떻게든 안전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과잉반응을 보이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로 더럽고 지저분한 상황이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은 행동과는 다른 삶의 스트레스나 존재의 방향 상실과 같은 큰 덩어리가 내재돼 있다. 그건 차마 보지 못한 채 전혀 다른 쪽에서 부질없는 대응을 하는 것이 강박행동이다. 불은 명동에서 났는데 소방차는 강남역으로 가 물바다를 만든 격이다.

만성적이고 일상적인 스트레스 수준이 높아져 무의식적으로 위험하다고 여길 만한 상황이 우리 삶에 쏟아져 들어온다. 더욱이 현대인들은 왜 사는지 모른 채 허우적거리며 휩쓸려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직접적 원인을 감히 직면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지는 못하니 깨끗하게 하고 정돈하는 대응으로 안전해지기를 바라는 부질없는 노력만 하게 되는 것이 강박증의 핵심이다. 이런 과잉 대응은 내가 ‘일단은 안전하다’고 여기게 해준다. 이는 마치 단단한 갑각류 껍데기 속에 연하디 연한 부드러운 속살이 있는 것과 같다. 갑각류의 껍데기가 두껍고 강해질수록 속살은 더욱 부드러워진다. 하지만 자체 무게가 무거워지고 움직임이 둔해져 포획될 위험은 도리어 높아진다. 그리고 삶에 부딪혀 굳은살이 박이고 근육이 탄탄해질 기회를 잃는다. 어느 날 강박에 사로잡힐 때 그 증상을 없애려 하기보다는 실제 내가 무의식적으로 회피하려는 불안의 근원을 찾고자 노력해야 한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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